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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Dec 28. 2023

달빛 사냥꾼 #1

1화 : 만남 그리고 회상


"휴, 오늘도 허탕이군."     


  사냥꾼 오씨는 오늘도 사냥에 실패했다. 조금만 더 비거리가 길면 좋으련만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아버지가 쓰던 낡은 엽총 한 자루뿐이다. 그마저도 격발이 되지 않기에 녀석을 잡으려면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했다. 전리품으로 녀석의 일부를 의기양양하게 드러내 놓고 다니는 다른 이들을 볼 때면 마음 한쪽이 시렸다.


  허허벌판에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녀석의 몸을 노리기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보는 눈이 많아질수록 부담감도 더해지고, 이때다 싶으면 빌딩이 눈앞을 가로막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건물주의 자식들 중에 사냥을 취미로 하는 이들은 맘 편히 빌딩의 꼭대기에 서서 경호원이 알려주는 대로 총구를 위로 향하면 될 일이었다.     


"쳇, 네놈들처럼 잘난 애비를 둔 집구석이었으면 나도 달의 조각쯤은 금방이라고. 빌어먹을 새끼들."     


  오씨는 엽총에 돼지기름을 바르며 읊조리고 있었다. 신세한탄도 아닌 욕지거리도 아닌 그 무언가를 껌처럼 질겅질겅 입으로 한창 씹고 있을 때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저, 오정근 선생님……?"





"뭐.. 뭐요? 당신 누구요?"


  몸에 딱 달라붙는 수트 차림의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까만 명함에는 금색 글씨로 F그룹의 로고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오정근 선생님, 말도 없이 찾아와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정 회장님 부탁으로 찾아왔습니다."     


  오씨는 수트 차림의 사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매서운 시선을 뒤로하고 미처 못 닦은 엽총을 다시 집어 들었다.


"회장은 무슨....... 그놈이 내게 무슨 부탁이 있어서.. 거 난 들을 생각 없으니 가시오. 대가리에 지 살 궁리만 하는 새끼가 어딜 감히 말이야... 썩 나가쇼. 뒤지기 싫으면"     


  수트 차림의 사내는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오씨의 거처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 말을 남기고.


"오늘은 정 회장님 체면 생각해서 그냥 돌아가지만, 다음에 찾아올 땐 저도 가만히 있진 않겠습니다."     


  오씨는 그 말을 듣고서 아무런 기척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한참을 총포에 돼지기름을 바르던 그가 일어난 것은 초승달이 저만치 기울고 나서였다.     


"흠, 정춘기 그놈이 무슨 볼 일이었을까……."     


  약 30여 년 전 지리산의 동굴. 그때만 하더라도 달빛을 사냥하는 이들은 꽤 있었다. 젊은 시절의 사냥꾼 오씨와 정 회장은 그 동굴에서 만났다.     


"어이, 당신 이름은 뭐요? 이틀 밤 동안이지만 동지 아니요. 난 오정근이오. 편하게 오씨라고 부르면 됩니다. 으하하핫!"     


  뭔지 모를 민망함을 감추려 오씨는 헛헛한 웃음을 보이며 구석에 홀로 있는 정 회장, 춘기에게 투박한 손을 내밀며 다가갔다.     


"네, 저는 정춘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춘기는 어색한 웃음을 슬며시 지으며 두 손으로 오씨의 악수를 받았다. 그런 춘기를 오씨가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어허이, 사내가 뭐 이리 목소리가 기어들어가. 고라니도 못 잡겠어. 이리 오슈, 구석에 있으면 처녀 귀신이 옳다구나 하고 덮쳐요. 취향이 그쪽이라면 뭐 그대로 계시던가. 으하하하하핫!!"     


"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씨가 춘기를 끌어당기니 자연스레 다른 사냥꾼들도 자리를 내어주었다. 사냥꾼의 삶이란 게 그리 좋지는 않은지라, 빨래터의 아낙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그들은 동굴 안 모닥불 주변에서 한탄이 섞인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은 대대로 달빛을 사냥하는 집안이기는 하지만 장비도 좋지 않고 간수하기도 힘들어 곁다리로 산짐승들을 잡아다가 가죽을 파는 이들이기에 금세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오씨는 가죽 쟁이를 하다가 마진을 더 남겨야겠다 싶어 직접 사냥도 하는 터였다. 달빛 한 줌이라도 건진다면 하루하루 입에 풀칠을 하는 신세를 바꿀 수 있기에 달이 차오를 즈음이면 산을 타는 것이다. 사냥꾼의 명맥은 희미해져 갔지만 일확천금을 노리고서 산을 타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사냥이 거의 본업이 되다시피 한 오씨는 그런 이들이 탐탁지 않았다. 탁배기가 두어 차례 돌고 모닥불의 불길이 사그라들 때 즈음 통성명도 하고 자연스레 형님 동생이라 부르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덧 춘기에게 사냥꾼들의 시선이 가 있었다.     


"춘기 자넨 어떻게 사냥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     


"그러게 말여, 여즉 여그서 사냥을 해왔는디 자넨 오늘 처음 보는 거 같은디? 싸게 이야기해보소. 말투도 매끈허니 폼나는디."      


"어서 말해보그라, 딴 사람들 이바구 듣기만 하고 니는 말 안하믄 고마 이바구 한 사람들 섭해진다."     


"네, 저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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