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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Jan 04. 2024

달빛 사냥꾼 #11

11화 : 진우

수사를 서둘러 끝낸 경찰들이 사라진 후 노인은 달빛 조각들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내사마 식겁했네. 우리 영식이 어디 갔누. 영식아, 할애비왔다. 니 줄라꼬 멋진거 갖고 왔다!"     


  노인의 손자인 영식, 어린 시절의 진우가 잠을 자고 있다 깨어났다.     


"할배, 어디 갔다 왔노, 이기 뭐꼬?"     


"쉿!!니는 이거 못본기다. 쪼매만 참으면 이걸로 니캉 내캉 고기 묵으면서 살 수 있는기다. 알겠제?     


"알았다. 할배."     


  5살의 영식은 영문도 모른 채 여느 때보다 무거운 얼굴을 한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산주 박씨의 등쌀에 떠밀려 원래 살던 골짜기에서 어귀로 쫓긴 노인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냥꾼들이 지리산에 돌아다니면서 그가 얻은 것이라곤 아들의 죽음과 며느리의 가출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상 아닌 보상으로 산 어귀에서 뜨내기 사냥꾼들에게 사냥용품을 팔며 살 수 있었지만, 달빛 조각을 파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달빛 조각을 보상으로 줄 테니 거짓 증언을 해달라는 춘기의 제안은 꽤나 흡족한 조건이었다. 춘기가 건넨 달빛 조각은 크기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노인의 여생뿐만 아니라 손자 영식의 평생을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행여나 달빛 조각이 없어질까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던 노인에게 나타난 건 검은 정장의 덩치와 춘기였다. 맹렬하게 저항한다 해도 노인의 힘으로 버틸 수가 없었고 마침 꺼내놓은 달빛 조각들은 모조리 춘기의 손에 들어갔다. 노인이 그리도 아끼며 키우던 손자 영식도.     


"네 이름은 이제 최진우다. 할아버지는 널 키우기 힘들어서 널 버렸으니 잊고 살아라."     


  쉽사리 울음을 멈추지 못하던 영식은 그 후로 30여 년간을 정회장의 수족으로 키워졌다. 영식이 아닌 진우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정회장은 모르고 있었다. 30년 전의 그 밤, 노인의 목을 조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던 게 진우라는 것을.




"회장님, 키워주신 건 감사하지만....참 힘들었어요. 당신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말이죠..적당한 때에 당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게 이제야 왔네요. 저에게 오 선생님을 찾게 한 건 당신의 큰 실수입니다."


  재갈이 채워진 정회장은 몸부림을 칠 뿐. 그마저도 진우에게 제압을 당했다.


"춘기. 자네의 욕심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엉뚱하게 벌을 받고 자네도 이렇게 되고. 원망하지 말게나."     

"읍읍!!!!!큽!!!"     


"진우가 보낸...종이쪽지가 아니었으면 난 이미 처리됐겠지? 자네는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거야. 그래 하고픈 말은 많을 테니 재갈은 풀어주겠네."     


"푸하..!!! 진우 너.......이 새끼들.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 바뀔까? 머저리 같은 새끼들.......크흡!!!"     


  순간 정회장은 혀를 깨물었고, 진우는 재빨리 정회장의 입을 벌려 재갈을 물렸다.     


"자넬 그리 쉽게 가게 두진 않아. 너도 벌을 받아야지. 진우가 내 부탁했던 것 좀 가져오게."     


"네. 오 선생님."     


  진우가 가져온 것은 펜과 종이 그리고 인주였다.     


"기회를 주겠네. 마음 같아선 자넬 죽이고 싶지만 지난 세월이 그 독한 마음을 조금 무디게 한 것 같아. 자네가 저지른 모든 짓들을 여기에다 쓰게. 그리고 진우에게 저지른 짓에 대한 보상을 주겠다는 각서도 쓰고, 나도 사람을 죽인 내 죗값은 받을테니. 이봐, 저 사람 손이랑 발 좀 풀어줘."     


  포박된 몸이 풀리자 정회장은 털썩 주저앉았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정회장은 종이에 자신의 재산 일부를 진우에게 양도한다는 각서를 쓰고 엄지손가락으로 지장을 찍었다. 이제 저지른 일들을 쓸 차례였다. 핏발이 선 정회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달빛에 비치는 칼 한 자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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