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면도를 멈춘 후

by 권씀

며칠째 손을 대지 않은 코 밑과 턱에

검은 수풀들이 자라 무성하다

⠀⠀⠀⠀⠀⠀⠀⠀⠀⠀⠀⠀

잡초제거를 해야하건만

그래야 겨우 사람 꼬라지가 되건만

보는 이, 만날 이 하나 없기에

그저 무심한 듯 내버려 둔다

⠀⠀⠀⠀⠀⠀⠀⠀⠀⠀⠀⠀

홀로 방 안에 있은지도 며칠째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을 잊었고

웃음기 또한 사라졌다

⠀⠀⠀⠀⠀⠀⠀⠀⠀⠀⠀⠀

야생에서 혹은 외딴 곳에 홀로 지내다

혹여나 인기척이라도 나면

그저 겁이 나서 도망가는 한마리의 짐승이 된 것마냥

⠀⠀⠀⠀⠀⠀⠀⠀⠀⠀⠀⠀

이렇게 저렇게 살 궁리로 골머리를 앓고

또 풀리지 않는 숙제를 가지고 며칠째 밤을 지샌다

⠀⠀⠀⠀⠀⠀⠀⠀⠀⠀⠀⠀

여름이면 어슴프레한 새벽에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를 벗삼아

빨갛게 뜬 눈을 감을 수 있으련만

차디찬 얼음장같은 송곳이 가득한 겨울이라

그저 눈을 뜨고 있을 뿐이다

⠀⠀⠀⠀⠀⠀⠀⠀⠀⠀⠀⠀

거짓웃음으로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면 좀 나아지려나 하면서

또 하릴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난쟁이의 그림자는 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