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자아의 투과성과 관계성

by 권씀

사람들은 자아를 하나의 단단한 중심으로 생각하곤 한다. 흔들리지 않는 생각과 감정, 늘 일관된 태도와 말투 같은 것들. 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더 들여 들여다보면, 자아는 생각보다 훨씬 다공성의 존재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타인의 말투를 닮아가고, 그 사람의 고개 숙임이나 웃음의 방식까지도 스며든다. 사랑, 갈등, 용서, 혹은 아주 미세한 오해조차도 우리 안에 남아 이전의 나를 갱신시킨다. 자아는 단일한 고정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쓰이고 지워지는 관계의 잔물결 속에 존재한다.


이런 흐름 안에서 종종 우리는 ‘열린 자아’와 ‘닫힌 자아’에 대해 말한다. 열린 자아는 다름을 위협이 아닌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고, 닫힌 자아는 상처를 막기 위해 자기 내부로 움츠러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열림과 닫힘이란 개념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향한 태도다. 그 무언가는 대개 ‘타자’다.


문이 열린다는 것은 누군가가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닫힌다는 것은 누군가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다. 타자의 부재 속에서는 열림도, 닫힘도 무의미해진다. 관계가 없는 자아는 단지 정지된 상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조차도 타인의 언어, 목소리, 감정을 흉내 내며 살아간다. ‘내’가 말하는 방식은 이미 수많은 타자의 잔향 위에서 길들여진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관계 없는 자아’는 결국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화된 그림일지도 모른다.


자아는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며, 닫힌 채로 조금씩 열리고, 열린 채로 천천히 닫힌다.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흐르는 과정, 혹은 관계에 따라 주름지는 감응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보다는 ‘내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조금씩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닫혀 있으나 열려 있고, 열려 있으나 닫혀 있는 이 상태. 그 어딘가에서 우리는 여전히, 타인을 통해 나를 배우고, 나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려 애쓴다.


닫혔다고 해서 끝이 아니고, 열렸다고 해서 다 들어온 것도 아니다. 자아는 그렇게, 문 하나쯤 비껴 선 채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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