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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시선

자아는 퇴고되는 문장이다

by 권씀

사람들은 자아를 흔히 하나의 응집된 덩어리로 여긴다. 생각, 감정, 태도, 언어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어떤 단단한 중심처럼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곁에서 들여다보면, 자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공성의 존재임을 알게 된다. 어쩌면 자아는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균열과 틈 사이로 스며드는 타인의 흔적들에 의해 천천히 빚어지는 잔물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타인의 말투를 닮고, 그 사람의 고개 숙임이나 웃음의 방식까지도 흡수한다. 사랑, 갈등, 오해, 용서 같은 관계의 무늬들은 우리 안에 스며들고, 기존의 자아와 뒤섞이며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낸다. 겉으로는 분명 내가 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너로 인해 생긴 나’가 이미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


사람 사이의 시선과 침묵, 스치는 말과 다정한 제스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숙이 들어온다. 그 작은 접촉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나라는 사람의 결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종종 그 변화를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문득 돌아보면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님을 깨닫는다. 누군가와의 시간이, 혹은 그로 인한 상처나 울림이 나의 내면을 조용히 재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 어떤 만남은 자아의 균열을 만들어낸다. 내가 나일 수 없게 만드는 순간, 이전의 나로는 감당할 수 없는 파장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단지 혼란만을 남기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가 단단한 껍질이 아니라, 부유하는 경계 위에 놓인 존재임을 일깨운다. 경계는 언제나 흔들리고, 때로 무너지지만, 그 불안정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더 정직하게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내게 거울처럼 작용한다. 나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내 안의 빈틈이나 어둠을 그 사람의 존재가 조용히 비추어준다. 그 빛이 때론 아프고, 낯설고, 외면하고 싶을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나를 다시 써 내려간다.


그래서 자아는 완성된 문장이 아니다. 끊임없이 퇴고되고, 덧쓰여지는 문장이다. 매번 달라지는 하루의 감정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자신을 새로 쓰고, 또 고쳐간다.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타자인지 명확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타인의 그림자에 기대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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