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굳은 자리에 피어난 것들

by 권씀

한쪽 뿔은 번개처럼 날카롭고

다른 한쪽은 숲의 뿌리처럼 뻗어 있었다

그 끝의 잎사귀들은

이름도 없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사이를 스친 바람은

먼 강물의 숨을 품고 와

내 안의 오래된 돌을 훑었다


사슴의 눈 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숲이 있었다

햇살도 비도 서리도 닿지 못하는

깊고 고요한 숲이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사슴

발을 들이기 전의 생

수백 번 마음속에서만 걸어온 길 위의 생


굳은 상처 위로 가지가 돋고

끝마다 새 잎이 피었다

그 잎들은 언젠가 속삭일 것이다


살아 있었다고

여기 있었다고

너를 기억한다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만 나는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