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운동화는 늘 바깥쪽이 닳아 있었다

by 권씀

아버지의 운동화는 늘 바깥쪽이 닳아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 다른 사람들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 닳는지 단순한 걸음걸이의 습관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은 아버지의 삶이 남긴 자취라는 것을.


오랜 세월 집과 현장을 오가던 발걸음. 무거운 짐을 짊어진 어깨와 불균형을 이겨내던 몸. 운동화의 바깥쪽은 그 무게를 받아내며 조금씩 닳아갔다. 때로는 사고처럼 들이닥친 시련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운동화 밑창이 갈라져도 새것을 쉽게 들이지 않았고 닳은 채로 끝까지 신어내며 하루하루를 걸었다. 그것은 마치 밑창이야말로 자기 삶을 증명하는 기록인 듯 보였다.


바깥이 헤진 운동화는 더 이상 닳지 않는다. 아버지의 걸음이 느려지고 지팡이를 짚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빨리 닳던 운동화는 제 삶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있다. 닳아 있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더 이상 깊어지지 않고, 정지된 듯한 자국으로만 남아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세월이 한 고비를 넘어섰다는 조용한 증언이었다.


오늘 나는 내 운동화를 들여다본다. 닳은 자국 속에서 나의 걸음이 아버지를 닮아 있는지 확인한다. 바깥쪽이 먼저 닳아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그것이 단순한 마모가 아님을 알게 된다. 거기에는 무게를 견뎌낸 흔적이 있고 오래된 세월을 버텨낸 사람의 체온이 스며 있다.


닳아버린 운동화는 버려야 할 낡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시간을 지탱해온 증거다. 아버지가 남긴 발자취처럼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흔적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다 보면 발밑의 길이 달리 보인다. 어쩌면 닳아가는 것은 소모가 아니라 기록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들이 하나의 흔적으로 남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말을 건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운동화에 남을 다음 닳음을 기다린다. 그것이 다시 닳아가는 동안 아버지의 발자취와 내 걸음이 겹쳐질 테고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발자취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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