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

by 권씀

구멍가게 입구의 낡은 유리문을 밀면 오래된 간판처럼 낯익은 냄새가 퍼졌다. 기름 냄새, 설탕 냄새, 풀빵 굽는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그 속엔 늘 사람 사는 온기가 묻어 있었다.


작은 손바닥에 꼭 쥔 50원짜리 동전 하나. 그걸 내밀며 오뎅 하나를 사 먹는 일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행복했다. 뜨거운 국물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그 옆에서 친구들이 종이인형을 오리고 붙이며 깔깔대던 풍경. 점선을 따라 오리고, 색연필로 입힌 옷을 종이에 덧붙이면 세상은 그만큼 화사해졌다. 바람에 흔들리던 얇은 종이 옷처럼 우리의 웃음도 가벼웠지만 순수했다.


골목 안에는 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누군가 고무줄놀이를 하면 다른 누군가는 딱지를 접었고, 비 오는 날이면 물웅덩이를 피해가다 일부러 밟으며 웃곤 했다. 빵빠레가 300원이던 시절,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기 위해 주머니 속 동전을 몇 번이나 세던 그때의 우리.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모든 게 있었던 시간이었다. 돌멩이 하나에도 놀이가 되고, 하늘 한 조각에도 꿈이 깃들던 시절. 그 시절의 오후는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해가 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골목의 색은 서서히 바래갔다. 그 많던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 흩어지고, 구멍가게는 편의점 간판으로 바뀌었다. 그 자리엔 여전히 오뎅 냄새가 나지만, 예전의 국물 맛은 아니다. 이제는 지갑 속에 카드만 있고, 동전의 무게는 점점 잊혀간다. 문득 골목길을 지날 때면 철문 뒤에서 들리던 라디오 소리나 노을 아래서 서로의 그림자를 밟던 오후가 떠오른다. 그 기억들은 어느새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내 마음의 벽에 걸려 있다. 때때로 먼지를 털어내듯 꺼내보면 그 속엔 여전히 젖은 머리로 뛰어다니던 아이의 웃음이 살아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문장이 조금 서늘하게 느껴진다.


정말 아파야만 청춘일까.


이제는 아프지 않아도 괜찮다고,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시린 가슴을 품고 하루를 견디는 우리에게 그 시절의 웃음은 여전히 불빛처럼 남아 있다. 사소한 것에 웃고, 작은 것에 감동하던 마음.

그게 아마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청춘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지만, 가끔은 그 시절이 더 부유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돈보다 마음이 따뜻했고 속도보다 여유가 있었다. 삶이란 결국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다시 그 골목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의 나를 품은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는 있으니까. 그때의 웃음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그 골목 어딘가에서 함께 웃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골목길을 지난다. 이제는 자동차가 오가고 가게 간판은 바뀌었지만 낮게 깔린 햇살 사이로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림자가 스친다. 아마 그 시절의 친구들도 그럴 것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빵빠레를 들고 웃던 그 시절의 우리가 살아 있을런지도. 아득해진 기억 속 그 웃음이 오늘을 견디게 하고 내일을 믿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다시 믿는다. 이 평범한 하루 속에도 작은 행복은 여전히 구멍가게 입구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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