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세상에 사는 사람을 보면 때로는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세상과 조금 다른 감도를 지닌 사람, 혼자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세계가 꼭 ‘깊어서’가 아니라, 닫혀 있어서 그런 경우도 있다는 걸.
그들은 스스로를 잘 안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기만 아는 사람이다. 타인의 말을 듣지 못하고, 누군가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들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마다 억울해하고 이해받지 못했다며 마음의 문을 더 세게 닫는다. 결국 그들은 자아의 감옥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셈이다.
자의식이 많다는 건 원래 나쁜 일이 아니다. 그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시선이 너무 오래 자기 안을 향하고 있으면 빛이 통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사람은 스스로 만든 그림자 속에 머무르게 된다.
자신의 감정만이 진짜라고 믿고, 타인의 반응은 모두 오해라고 치부한다면 그건 ‘깊은 내면’이 아니라 ‘닫힌 방’이다. 아무리 그 방 안에서 진심을 외쳐도, 바깥으로는 닿지 않는다.
자아의 감옥을 벗어나려면 세상이 내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의 마음은 나와 다르게 작동하고 내 진심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닫힌 방에 창문 하나쯤은 낼 수 있게 된다.
닫힌 방에 창문을 낸다는 건 결국 세상과 다시 호흡하겠다는 뜻이다. 바람이 스쳐 들어오면 먼지가 일고, 익숙한 공기가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그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타인과의 관계는 늘 어긋나고, 이해는 더디다. 그래도 그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새로 배우게 된다. 누군가의 시선이 거슬릴 때 그건 내 마음의 단단한 벽을 건드리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 벽을 잠시 바라보고 조심스레 손끝으로 만져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감옥 밖으로 반쯤 걸어 나온 셈이다. 세상은 그렇게 아주 느린 속도로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걸어온다.
세상은 여전히 불친절하고 사람의 마음은 끝내 다 닿지 않지만 그 틈 사이로도 빛은 들어온다. 그 빛이 아주 희미하더라도 그걸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감옥 안의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감옥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다 보면 나 또한 그 방의 공기에 물들어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누군가의 세계를 존중한다는 건 그 안으로 무작정 들어가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줄 아는 일이다. 그 거리는 무관심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예의다.
모든 이해는 거리를 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그 거리를 인정하는 순간 나는 타인을 구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켜내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