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 있는가 하면
모가지가 짧아 슬픈 짐승이 예 있소
땅으로 처박은 것처럼 코와 주둥이가 뭉툭하게 눌려
여기 오고 저리 가도 놀림을 받기란 예삿일이오
그뿐이겠소
다리는 짧고 배는 불룩해 미련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려
사람들이 달리 뚱뚱한 이 보고 돼지라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이만치 복이 되는 짐승이 어딨겠소
대가리는 따로 떼어 제상에 놓고서 입에 배추잎 물려놓으면 근사해지고
네 개의 다리는 간장에 푹 졸여 뜨끈뜨끈하게 장터에서 썰어 내면 되고
각각 부위 별로 살을 잘라내어 시와 때와 장소에 맞게 삶고 굽고 하면 되오
그뿐이겠소
염통과 간은 푹 익혀 썰어내어 먹으면 주린 배를 채워주고
뼈는 푹 고아 뽀얀 국물을 내면 마른 이들 얼굴 기름기 돌게 하고
대장이랑 소장에는 피를 섞어 속을 그득하니 채우면 훌륭한 안주가 됩니다
대가리와 모가지가 붙어있어 누구나 쉽게 보는 하늘 보진 못해도
배가 곯은 이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에게 제 몸을 내어주니
이만한 짐승이 어디 있겠소
모가지가 짧을지언정 모가지가 긴 짐승보다
베푸는 것이 많으니
이 짐승이 어찌 귀하지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