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장마

by 권씀

장마철이 되면 비로소 여름이 왔음을 느낀다. 일기예보의 고온다습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먹구름, 비구름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면 몸으로 느끼는 것에 조금이나마 다다랐을까. 방금 씻고 나와 구석 구석 닦았음에도 불구하고 땀인지 물기인지 모를 것들이 송골 송골 맺혀있는 걸 볼 때면 체념을 하고야 만다. "그래. 장마철이었지." 라고 말이다.

보내고 싶은데 보낼 수 없음은 무척이나 답답한 일이다. 옛 기억들, 옛 사람들, 옛 물건들. 예전이라는 시간에 가둬진 모든 것들은 상념이라는 말로 대체 가능하다. 추억이라는 말은 너무 포장된 느낌이고, 기억은 다소 딱딱하다. 뭔가 구질 구질한 느낌을 주는 단어는 상념이 아닐까.

장맛비가 대차게 내리는 날이면 처량하게 비구경을 하곤 한다. 평소에는 관심없던 화분을 괜히 만져보기도 하고, 한참동안이나 바닥에 눌러붙은 살갗을 장난스레 쩍!하고 떼보기도 한다. 손바닥을 오목하게 굽혀 창문으로 내밀어보는 것은 그만두기로 한다. 미세먼지다 뭐다 해서 괜히 찝찝하니까. 흙냄새 잔뜩 올라오는 빗길를 거닐어 볼까 하다가 그것도 그만 둔다. 나태함이라는 건 이런 장마철에 제격이겠지.


비가 내리는 날엔 날은 곧 어둑해지고 사방에 빗소리만 들리곤 한다. 밀가루 반죽을 해뒀다가 수제비를 해먹기엔 참 괜찮다. 오들오들 떨다가 속에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면 나른해지기 참 좋거든. 장마철이 시작되었다. 나태와 나른, 그 중간 어딘가쯤에 몸을 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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