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달이 가장 오래 머무는 밤
한껏 야위었던 달은 어느새 제 덩치를 부풀리고
요란스러웠던 밤은 거리를 두고 적막만이 가득하다
부엌 깊숙이 넣어두었던 곰솥을 꺼내어
묵혀두었던 팥을 알알이 씻어 뭉근히 끓이며
체에 곱게 거른 밀가루를 뭉쳐 새알심을 만든다
죽 하나 만드는 데 정성이랄게 따로 있을까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고 한해를 정리하는 즈음
잘 살아왔노라 토닥이며 맛있게 먹을 이를 생각하며 만드는 게
정성이 담뿍 담긴 음식인거지
세상이 변하고 모든 것들이 예전과는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역귀에 발목이 잡혀 오도가도 못하는 건 매한가지라
역귀가 싫어한다는 붉은 기운 담긴 팥을 쑤어본다
매서운 칼바람에 퉁퉁 부어버린 얼굴과 손의 붓기를 빼고
서로간에 거리를 두며 식어버린 마음에 온기를 더해주는 팥죽 한 그릇
온기가 오랜 시간 머무르는 놋그릇에 소복이 담아
두 손 보듬어 들고서 입안 그득히 머금어 본다
찬 바람에 고단했던 하루에 지친 몸을
푹 끓인 팥죽 한 그릇에 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