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의 관절을 꺾으니 마지못해 한마디를 내어준다. 뚝! 외마디 비명이라도 질렀다면 조금은 덜 미안했을까. 봄꽃의 주인은 봄이건만 내 서툰 욕심에 분질러버리니 채 피어나지도 않은 꽃잎이 바들바들 떨며 생을 마감한다. 봄의 숨소리를 찾아 그렇게 발품을 팔았었나 보다. 나란히 해 지는 풍경을 보며 아무런 말 없이 어깨에 기대는 너의 나지막한 숨소리에 나는 왜 그리도 조바심을 냈을까. 봄이라는 한정된 계절에 아무렇게나 놓인 너와 나는 그렇게 쉬운 발걸음을 옮기지는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게 그 말을 삼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줄은 몰랐지. 헛기침 섞인 서투른 고백의 말에 흔들리는 건 마음뿐만은 아니었으리라. 봄바람 살랑 일렁이면 그 아래 핀 꽃들도 덩달아 춤을 추고 따뜻한 기운을 만끽하려 나온 이들의 발걸음 뒤엔 꽃향기가 서성이는데 이 봄엔 만남뿐만 아니라 이별도 존재할 거란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사랑은 어금니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사랑니와 같아서 슬며시 자라났다가 빠지고 나면 찾아오는 통증에 한참 동안이나 부여잡을 수밖에 없지. 쿡쿡 불쑥 찾아오는 통증 또한 사랑의 한 부분이라 생각해서 가만히 두었던 내 탓일까. 봄의 숨소리가 차츰 잦아들면 이 통증도 차츰 잦아들까. 꽃잎이 낮에는 한껏 피어나다 밤이 되면 움츠리고 그러기를 얼마간 이어질까. 분홍빛 꽃풍경은 이제 바람 불면 꽃비가 되어 내리는데 나의 봄은 더 일찍 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