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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안녕.

by 권씀

벚꽃이 지면 장미가 피어날 준비를 한다. 계절의 한쪽을 곱게 단장한 뒤 자리를 내어준다는 건 시간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꽃은 피고 지고 해와 달은 뜨고 지고 사람의 곁은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여러 겹의 계절 속 무수한 꽃들처럼. 누군가의 페이지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된다는 건 마치 제철을 맞은 꽃이 계절에 맞게 자리를 잡는 것과 같아서 이왕이면 머무르는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것이리라. 떠나가는 계절을 차마 잡지를 못해 손끝에 살짝 걸리는 옷깃과 같은 막막한 아쉬움을 계절에 빗대 토해내 본다.


진달래의 분홍빛 각혈은 이산 저산을 물들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데, 나도 진달래와 같은 각혈을 한다면 스치는 발걸음에 잠깐이라도 당신이 돌아볼까. 봄 손님은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아 그저 하루가 아쉬운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돼지풀은 줄기를 키워 봄 손님이 돌아오는 길을 기어코 막아버린다. 붉은 기가 제법 돋으려면 아직도 여름 손님은 산 너머 저만치 멀리 있어 조금의 안심을 하건만.


코로나가 없는 날은 언제쯤이었을까. 코로나가 없던 때엔 제법 걸었던 것 같다. 숲도 가보고 하늘바라기도 해보고. 그렇게 한적한 공원을 찾아 나무에 등을 기대기도 했지. 인간이 다듬어 놓은 공원이라는 공간에서도 생활의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자체, 그래서 사람들은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나 푸른 숲과 아름다운 꽃들, 맑은 물과 푸르름이 흐르는 그곳에서 생활의 재충전을 얻는다는 얘기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세월이 흘렀고 아장아장 걷기를 시작한 어린아이마저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시기가 되었다.


아침 햇살이 자글자글 모여 떠드는 소리에 눈을 뜨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어 새벽의 자취를 밟으며 밖으로 향하곤 한다. 야트막한 베란다에는 싹이 움트는 꽃눈의 소리가 들려오고 바람결에 나무들은 가지에 가느다란 목을 빼고서 이제 새롭게 출발할 자세로 앉아있다. 가끔씩 산에 오르고 보면 자그마한 희열을 느낄 때가 많다. 규칙적인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해방감 바로 그런 것.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고뇌를 풀려고 주말이면 산으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다 보면 중간에 약수가 흐르는 옹달샘도 좋고 새들이 노래하는 소나무 밑에서도 괜찮다. 숲길의 길목에서 웅크리거나 산 중턱에서 돗자리를 깔고 있어도 좋다. 그저 산에 묻혀 있는 그 순간만큼은 편안하고 아늑해서 생각이 잘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내가 평소에 못했던 간절한 바람이며, 나의 내부에 잠들어 있던 야성이며 일깨우고 싶은 소망을 강렬하게 반문해보기도 한다.


산에서 땀 흘리고 나서 하산 뒤의 시원한 몸 빨래와 마음을 헹구어버리면 내면의 질서가 너무도 아름답다. 매료든 고행이든 산이 좋아 찾아간 기쁨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아마도 같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 속에다 몸을 던져 넣는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다. 찾아갈 때마다 숲길에서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투명한 햇살을 머금고 걸어가는 숲길, 그때가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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