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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연애가 끝났다.

by 권씀

짧은 연애라는 건 어릴 때나 하는 건 줄 알았다.

나이 꽤나 먹고 난 뒤에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애 세포라는 건 어느샌가 사라졌(다고 믿었다.)기에 사랑을 시작할 엄두도 안 났을뿐더러, 어떻게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가 아닌가.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감정이란 게 죽어있다 확 불타오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되려 어떻게 이 불길을 꺼뜨려야 하나 싶었지. 밤늦게 전화가 오면 달려가기를 부지기수. 나는 당연하게 달려갔고, 당연히 그 사람은 내가 데리러 가야 하는 거였다. 이것도 연애의 한 장르라면 지독히 홀려버린 연애일 거라 여기며 말이다. 재미난 영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던데 이게 그런 건가 싶었지. 밤이 깊어가고 날이 밝아오는 걸 잊어가며 밤새 사랑을 속삭였으니.


그 사람에게는 잠깐의 사랑이었나보다.

이별이 쉬웠나? 아님 사랑이 쉬웠나. 나는 둘 다 어렵기만 한데 그 사람에게는 편의점에서 담배 사듯 쉬운 거였나 보다. 불장난이 이렇게 쉬웠다면 진작에 해버릴 걸. 이 쉬운 걸 왜 꾹꾹 참고만 있었을까. 그 사람에겐 인스턴트 사랑이었고 나에겐 집밥 같은 사랑. 그래서 차이가 났고 생각이 달랐던 거겠지. 근데 그 사람에게 집밥처럼 푸근한 사랑이 되고팠는데, 그 사람의 기호를 모른 내 잘못일테지.


짧은 연애가 끝났다.

꿈결같았던 그 시간은 신기루가 되었고, 다시 혼자의 시간이다. 되려 이런게 나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야!"는 아니지만, 쉽게 불타오르는 사람보단 은은히 온기와 빛을 뿜어내는 숯가마 같은 사랑을 하고팠으니까. 그 사람의 잘못인지 내 잘못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서로의 생각이 달랐다고 생각을 할 뿐. 짧은 연애가 끝났다. 짧다고도 하기 뭣하게 무척이나 짧은 연애. 왜 그랬어요? 라고 물어보긴 싫다. 내 남은 감정을 들킬까 봐. 그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작별을 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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