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단지 우유

by 권씀

그 조그만 원통형에 모든 것이 담겨있어


역사와 정과 사랑과 나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로고는 공기처럼 머물러있지


토요일엔 오전만 수업받고 내리쬐는 햇살을 등에 두고

집으로 향하는 길엔 늘 설렘이 함께 했더랬지


지구를 지키는 무슨 무슨 맨

색색깔 원색 타이즈를 입고 하늘로 붕붕 날아다니는 모습들이 얼마나 멋있던지

지금 보면 참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땐 그랬어


단지 우유 하나 웨하스 하나를 앞에 놓고선

목이 빠져라 화면에 집중했던 그런 때가 있었어


그뿐인가


아버지가 운전하는 자전거 뒤에 앉아서

빨대로 쫍쫍 빨아먹던 노란색 우유가 얼마나 달콤한지

일요일마다 가야 하는 목욕탕은 참 싫었는데 단지 우유는 참 좋았어


잔뜩 때를 불리고 나와서 사정없이 밀어대는 아버지의 손이 참 원망스럽다가도

다 씻고 나오면 손에 쥐어지는 단지 우유 하나에 그 마음도 사르륵 녹았었지


그 조그만 원통형에 모든 것이 담겨있어


토요일 방과 후의 나른했던 그 시간

아버지와 단둘이 다녀온 목욕탕

그리고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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