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뽑기 전에도 꽤 시렸던지라 왜 이제서야 왔냐는 책망을 들을 일이 뻔하지만 그래도 치과로 간다. 앓는 부위를 내버려둔다는 게 이러다 말겠지라는 무신경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보다 더 골치 아픈 것들이 많았기에 내버려뒀던 것도 있었다. 살면서 치과를 한 번도 안 갈 수는 있겠지만 한번 가게 되면 꽤나 여러번 들락날락거려야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앓는 이를 실로 묶어서 뽑아주는 시대도 희미해져가고 어찌 됐건 산골짜기에 박혀 살지 않는 이상은 대개의 경우 치과를 가게 된다.
사는 일이 깨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버려두면 분명 곪거나 썩어버릴 것이 분명한데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버려두거나 애써 무시하는 것. 모든 일에 내 일처럼 나설 수는 없지만, 그 일이 내 일이 안 되리라는 보장은 없기에 참 어려운 선택을 하곤 한다. 침묵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거나. 시리거나 아프거나 하는 치아를 두는 게 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어서 병원을 가라거나 약을 먹으라는 참견 아닌 참견을 하겠지만, 내 일이 되면 꽤나 생각을 하게 된다. 실비 적용은 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릴지 다른 쪽의 치아는 괜찮은지. 유치처럼 빠지면 영구치가 나는 것이 아니고 나와 같은 생을 이어갈 것이기에 이래 저래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치과로 발걸음을 향한다. 깨져버린 이는 어쩔 수 없으니 전문가의 손을 빌려 치료를 하고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또 한동안 치아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되겠지. 앓고 있던 이, 고민을 하게 하는 일들, 그 모두가 내 일이고 내 주변의 일이라면 힘이 닿는 한 마음을 써야하겠지. 치과로 향하는 말. 또 하나의 생각을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