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딱 고개에 사는 이들은 물세 낼 돈도 없었다. 키 작은 열 살배기 꼬마는 근처 뒷산 약수터로 기름 말통을 질질 끌고 꾸역꾸역 올라가곤 했다. 분명 그 아이가 학교에서 사회와 도덕에 대해 배울 적엔 야트막한 동네에 줄지은 듯 주택들이 서있고, 아침이면 빗자루를 들고 집 앞을 쓰는 풍경을 봤을 것이다. 움푹 파인 볼을 가진 집, 비가 오면 그대로 줄줄 새는 빨간 지붕 집에 대해선 아무도 말을 해주는 이가 없었을 거란 말이다. 아이가 말통에 물을 한가득 채우고서 산길 내려오면서 만난 동네 사람들은 좁은 골목에서 노인이 넘어져도, 불이 나서 소방차가 못 들어와도, 겨울이면 빙판길이 되어 위험하다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예전엔 말이야. 이 동네에 소나무만 가득했더랬어. 변소가 집집마다 생긴 건 얼마 안 됐지." 깔딱 고개에 사는 사람들은 현실을 보면서 마치 유물을 설명하듯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물들은 전시되어 고쳐지는 일이 없었다.
열 살배기 꼬마는 어른이 되어 밤새 배앓이를 했었던 어린 시절이 유물처럼 남은 옛 전셋집에 가본다. 비참한 욕을 고스란히 받은 옷도 그대로 마음에 걸치고서 말이다. 휘 고개를 돌려 둘러봤던 엊그제에도 깔딱 고개 집들의 외곽은 대체로 남아있지만, 다른 셋집으로 나누어 살던 아랫집은 개조를 하여 무슨 돼지고기 식당으로 변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화장실이 있던 자리에서 고기를 먹었다. 먹고 배설하는 일이 이렇게나 간단한 걸까. 가난이 유행이 되는 슬픈 세상에 사람들은 옛 생각을 하며 오늘의 한잔을 기울이지만 그들에게 옛 생각이라는 건 TV 속에서 보는 달동네의 풍경이었으리라.
뒤쪽 역겨운 수풀가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을 그쯤 구질구질한 그 집을 나왔었지. 한 십 년은 되었나. 학교 앞 골목길에서 병아리를 사서 키우다 죽은 일도 십여 년 전 일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이전에도 주위에 흙은 없었고 꼬마의 집은 두꺼비집 지을 땅도 없어 모든 것이 걱정스러웠더랬다. 그의 가족은 여름 지나 겨울이 가까워지면 새하얗게 질려 꼬마가 키우던 병아리를 뒤쪽 수풀에다 남몰래 내던졌었다. 새끼손톱만 한 그 부리에 들어가는 좁쌀 몇 알이 아까워서 말이다. 그 시절 심장 졸여가며 유기했던 병아리의 영혼이 길을 거닐다 흠칫 놀라던 사람 곁에 삐약 뺙 뺙 돌아다니는 사실을 아파트 주민들은 모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