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나의 이혼 결심을 알리려고 한다.

이혼할 결심, 이혼이 무슨 자랑도 아니고….

by 권두팔

내가 외도 사실을 알고 난 50일 정도까지 이혼 생각이 없었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실 알리고 싶지 않았다. 수치스러웠고, 어차피 같이 살 건데... 굳이 이런 치부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정상이 아니지만, 그때는 정말 정상이 아니었다.

난 진짜 잘하는 건 없어도 끈기랑 정신력 하나는 누구한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면서 여태 살았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무기력해질 수 있구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심각한 불안증세, 뇌 과부하와 공황 그리고 우울감으로 심각한 수면장애까지 겪고 있다고 했다. 내가?????? 내가??? 정신과 약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면서 살 줄이야.....

약과 술을 같이 먹지 말라고 했지만, 같이 먹어야만 기절하듯 잘 수 있었다. 두 시간정도.....

그래서인지, 나는 입으로는 헤어질 거야 헤어질 거야라고 남편이 너무 미워서 얘기했지만, 속으로는 절대 이혼은 안된다. 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많이 혼란스러웠다. 여태껏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했던 나의 소신....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 가차 없이 미련 없이 이혼해야만 한다. 한번 깨진 그릇은 붙여봤자, 깨진 그릇이다. 신뢰는 쌓기 힘들어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고, 의심만큼 양쪽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갈등은 없다는 나의 신념......


이 모든 것들이 내 얘기가 되니, 갈등되기 시작했다.

남 얘기가 아닌 내 얘기.... 다른 사람도 아니고 4년을 지켰던 우리의 믿음, 신뢰.......

남들은 다 펴도, 너는 절대 피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 우리는 사랑보다는 의리로 결혼생활 할 거라고, 절대 배신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너와 나의 우정....


비혼주의였던 나를 바꾼 너의 한결같음 때문에, 그 모든 걸 주위사람들이 보고 인정해 줬기 때문에 부정했다.

유독 내 주위에는 싱글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한테 나로서 희망을 주고 싶었던 거 같다...


내가 뭐라고............ 네까짓게... 뭐라고......

결혼의 행복함을 보여주려고 했을까....


그래서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했을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한국과 캐나다는 시차가 정반대라 둘러댈 핑계가 많고, 신혼이라서~ 한마디면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쥐 죽은 듯... 여태 살았다.


그래도 이제는 말해야지 이혼...


부끄럽지만, 말할 때마다 고통스럽겠지만...


이혼이 무슨 자랑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공간에 쓰냐고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동생의 권유였었다.

메모하는 걸 좋아하고 일기 쓰듯 마음을 정리해 보기 위해서.. 그리고 나조차도 부정하는 내 감정을 어딘가에선 공감해주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여기 이렇게 글로 남기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서 알람이 뜨는 걸 보니, 제목만 적어두고 안 쓰려고 했던 저장글을 꺼내 나의 복잡한 감정들을 다시 한 번씩 꺼내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맨 정신으로 쓸 수 없어서 술에 의존해서 뒤죽박죽으로 갈겨놓은 나의 많은 감정들..

남편이 거실에서 코 골면서 쳐잘 때 분노하면서 눈물로 써 내려갔던 욕들....

이렇게 모자라고 형편없는 글이지만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의 현재의 이 불행이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밤이 되어 우울할 때

술 마실 때 비침 한 생각이 들 때마다 이 공간에 글을 쓰니, 마음속에 있던 복잡했던 생각들이 더럽고 수치스러웠던 기억들이 조금씩 그리고 조금은 버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행복하고 좋은 일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알리듯, 안 좋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얘기는 가까운 사람에겐 가장 늦게 알리게 되는 거 같다.... 좋은 일에 가장 많이 기뻐해주고 행복했던 것처럼

슬픈 일에 가장 많이 슬퍼하고 같이 고통스러워 할거 같아서.....


이혼 결심 10일 차 그러니까 내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안 지 60일 차

이제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리기로 했다.

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 역시 내가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자 제대로 끝맺을 수 있는 수단이지 않을까…


아직 가장 가까운 부모님들께는 말하지 못했다.

일단,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연습해 볼 생각이다.

부모님은... 가장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나의 남편에게 가장 많이 고마워했고, 나의 결혼을 누구보다 가장 기뻐하셨으니까.....

내가 결혼한다는 결심을 믿지 않으셨듯, 나의 이혼도 믿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미안합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시댁식구들 까지.... 실망시켜 드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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