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발령, 아쉽고 새로운
연초가 되자 이용자들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혹시 인사발령 결과가 나왔나요? 궁금합니다. 사서님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엔 꼭 참여해야 된다고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말씀하셔서요.'
'권사서 혹시 발령 났나? 아이고 권사서가 우리 동아리를 맡아줘서 참 좋았는데 어떻게 되나 싶어서…'
'발령 안 나고 여기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 것도 알아서요. 사서님이 며칠 전부터 보이시지 않아서 혹시나 발령이 나셨나 하고 연락드려봅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반겨주셨던 분들이고, 또 떠날 차례가 되었다니 또 아쉬워해주시는 분들이다. 특히 오랫동안 맡았던 동아리원들은 남다르게 아쉬워하신다. 이상하게도 조금은 안도하게 된다.
'그래, 나 열심히 사서로 살았구나.'
사서들은 대부분 로테이션 근무를 한다. 공무원인 경우는 로테이션의 범위가 넓은 편이지만, 나는 위탁도서관의 사서이므로 그 범위가 넓지는 않아도, 2년에 한 번 정도 로테이션 근무를 한다. 개관을 했던 남다른 애착이 있는 도서관이기에 다시 돌아와서 기뻤고, 또 조금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만 3년을 채웠다. 다시 로테이션이 될 차례이다. 기간별로 칼처럼 인사발령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인사발령 대상 1순위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이 도서관을 떠나게 될 것이다. 또 언젠가는 돌아오게 될 것이지만 역시 떠나는 것은 아쉽다. 인사 발령이 나면 이용자분들과 작별의 인사를 할 시간도 없이 그저 짐을 싸고 근무지를 옮기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인사도 없이 사라진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연락을 주시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떠나려니 정이 든 사람들도 많고, 공을 들여 기획했던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도 아쉽다. 조금만 더 남아서 자리를 잡았더라면, 조금 더 정을 나눈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사서에게 근무지 이동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공도서관의 사서는 공공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한다. 이 공공도서관의 공공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도서관에서 평생 근무를 한다면 도서관에 대한 정보나 자료의 위치는 그 누구보다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공공도서관의 전반적인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서는 서로 교류하고 서비스를 도입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세미나나 워크숍과 같이 사서들이 교류하고자 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고, 로테이션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워크숍이나 학술대회가 가지는 한계가 분명 있다. 사서가 서로 교류하고 실질적인 노하우를 나누는 데는 근무지 이동을 통해서 파급하는 게 가장 빠르다.
공공도서관은 유능한 사서의 역량 하나로 서비스의 질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사서 개인의 역량보다는 사서라는 집단이 교류하고 성장해나가는 것을 통해 서비스가 향상되고 높아진다. 전문사서의 영역은 물론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지만, 공공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서비스 마인드에 갇히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나 스스로 매우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사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서가 타관으로 로테이션되었을 때 실패하거나 정상적인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이용자로부터 호응이 좋은 프로그램을 내가 만들어 두고 이 도서관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그 프로그램은 이용자의 요구가 있는 한 대부분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또 내가 이 도서관을 떠나 다른 도서관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면 그 도서관에서 이용자로부터 요구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쌓은 노하우가 교류되고 좋은 프로그램은 도입되고 파급된다. 공공도서관의 5법칙 중에서 마지막은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라는 것이 있다. 사서 역시 그렇다. 사서는 개인이 아니라 도서관과 함께 성장하고 그 안에서 맥박을 뛰게 하고 피를 흐르게 하는 동력이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살이 썩는다. 사서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새롭게 구상하는 다양한 문화기획들이 다시 도서관 안에 생기를 불어넣고 활력을 채워 넣는다.
다 아는데, 다 알아도, 그래도 떠나는 것은 아쉽다.
정말 떠나고 싶지 않기도, 또 떠나고 싶기도 한 알 수 없는 마음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