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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Feb 01. 2020

전염병과 공공도서관

더 좋은 선택이 아닌, 더 나쁘지 않은 선택

작년 ASF(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발생했을 때,

장장 두 달, 아니 그 이전부터 준비해왔던 문화행사를 바로 전날 취소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행사를 기획하고, 거기에 맞는 출연진을 섭외하고, 무대 조명 및 음향 시설을 렌트하고, 시나리오 작성하고, 협업할 지역 내 단체와 수많은 미팅을 한 끝에 진행되게 된 규모가 있는 행사였다.


행사를 진행하자니, 시민의 안전이 문제였고, 행사를 진행하지 않자니 또 행사를 기대했던 시민의 기대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것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은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판단하에 행사를 취소하게 되었다.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것보다 취소한다는 것은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무엇인가 이루고자, 진행하고자 하는 노력과 그 노력을 다시 0으로 만드는 노력은 그 무게가 같더라도 더 힘들고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 우리 도서관은 2월 한 달간 모든 문화행사를 취소했다.




일단 전염병이 발생하면 공공도서관은 방역을 진행한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시설을 소독하고 이용자들을 위한 방역을 한다. 방역 차원에서 직원들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를 한다. 마스크를 쓴 채 하루 종일 근무를 한다는 것은 사실 고문과도 같다. 숨이 차고 무기력해진다. 한 직원은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하루 동안 마실 산소를 마시고 온다며, 출근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직전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출근한다고 했다.


물론 사서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사서가 전염병에 걸리면 불특정 다수에게 서비스하는 직업이기에 확산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주의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도서관의 한 직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격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면 서비스를 하는 직업은 그래서 더더욱 전염병에 주의하고 또 주의를 해야 한다. 사서도 여기에 포함된다. 얼마 전 어린이실 근무 담당 사서가 A형 독감에 걸렸다. 마스크를 두 겹 세 겹 끼고 자기 몸이 더 아플 텐데도 혹시나 아이들에게 전염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진단 즉시 자가 격리되었고, 5일 간 도서관에 출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행하던 업무가 있어 격리 기간 내내 전화통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법정 전염병에 걸리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등교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자가격리를 받은 아이들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 자가 격리되어야 하지만, 또 한참 뛰어놀 나이에 그 에너지를 집안에서만 소모할 수 없어 도서관에 오기도 한다. 학교에 갈 시간에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보고 있어서, 다가가서 물어보면 해맑게 웃으면서 "저 A형 독감에 걸려서 학교 안 가도 돼요." 할 때도 있었다.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귀가 조치했지만, 일일이 검역을 할 수 없는 공공도서관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공공도서관은 다중이용시설이다. 유아부터 노인계층까지 그 계층을 한정하지 않고 서비스를 한다. 건강한 일반 성인은 걸리지 않을 병도 유아나 노인에겐 위험할 수 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들에게도 전염되고 확산되기가 쉬운 공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각 해당 자치구역에 따라 조례에 의해 도서관 출입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전염병 질환자는 도서관에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그러나, 전염병을 앓고 있는 이용자가 스스로 격리하지 않고 도서관을 방문하는 경우 그 구분이 쉽지 않다. 이용자 스스로 규정을 지켜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바로 그게 두세 달을 기획하고 공들인 행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의 질병을 숨긴다거나, 발병 사실을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참여한 경우 참여한 이용자들 모두 위험해진다. 두세 달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며, 프로그램의 취소를 해야 한다. 취소에 대해서 안내를 하면 대부분의 이용자분들께서는 양해해주시지만, 일부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아침부터 줄 서서 접수한 프로그램을 취소하면 어떡합니까? 소독제와 마스크 착용하고 프로그램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하는 경우도 있다. 행사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 참여하고 싶은 마음 모두 다 굴뚝같지만, 결국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취소를 하거나 연기를 한다.


이렇게 전염병에 대해 국가 대응 사태로 번지면, 도서관의 프로그램은 취소되지만, 그 안에서 사서들의 움직임은 더 바빠진다. 가끔은 행사를 진행하는 것보다 취소를 하고 그에 맞는 응대를 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갈 때도 있다. 10년의 사서 생활에서 한 번쯤 겪은 프닝이면 좋을 텐데, 근래에 들어 이러한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이 소리 없는 전쟁이 무사히 사상자 없이 끝나기를 바라며,

더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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