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사서 생활 중 약 5년은 문화행사 담당을 했다. 특히 기획공모 업무를 많이 진행했는데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사업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모든 공모사업을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지 않다고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다. 이 공모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공모사업에 대해서 딱히 정의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실제 경험한 실무자로서 편의에 따라 공모사업을 나누면 크게 두 가지 공모사업이 있다. 첫째는 사서가 직접 기획하여 기획서를 제출하면 공모사업의 취지에 맞는 기획서를 선정하여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기획공모사업이다. 둘째는 주최 주관기관의 사업의 확대 및 거점 마련을 위하여 주관기관이 기획한 사업을 진행할 적합한 기관 및 단체에 지원을 해주는 일반공모사업이다.
이 두 가지 공모는 장단점이 확연히 있다. 일단 기획공모사업의 장점은 각 단위 도서관의 설립목적과 특성에 맞게 기획하여 이질감 없이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그를 위해 사서의 기획력 및 운영에 따른 전반적인 관리와 책임도 해당 도서관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공모 사업의 장점은 공모기관으로 선정되기만 하면 크게 사서나 직원의 손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관기관에서 기획한 사업을 보급하는 취지로 기획은 주관기관의 몫이고 도서관의 몫은 운영뿐이다. 도서관에서 진행할 것은 대부분 장소의 제공과 참여자 모집 정도이다. 단점은 공모를 유치한 기관의 본래의 사업이나 특성에 맞게 변경할 수 없거나 그 폭이 좁다.
또 수혜기관을 대상으로 나누면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모를 진행하는 경우, 평생교육기관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는 경우, 문화기반시설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또 기관이나 단체로 공모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동아리를 지원하는 공모사업도 있다. 공공도서관은 도서관이자, 평생교육기관이자, 문화기반시설이고 그 안에 다양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는 공모의 폭이 매우 넓은 편이다.
공공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의 운영에 따른 철학, 설립목적, 주 이용자층, 예산, 운영인력의 여건에 따라 공모사업에 지원하고 이를 운영한다. 공공도서관의 철학과 설립목적에 부합하고 해당 공모사업의 대상 이용자층의 비율이 높고 공모사업의 예산지원의 규모에 따라 양질의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경우 덧붙여 이 공모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획자 및 운영인력이 있는 경우 공모사업에 지원하고 선정되는 경우 운영하게 된다.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기획공모사업을 예로 들면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이 있다. 전국 400여 개의 도서관을 지원하는 공모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사)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공모사업이다. 국가도서관 통계에 따르면 전체 공공도서관의 수가 1,096관(2019년 국가도서관 통계 기준)으로 전국 공공도서관의 1/3이 넘는 숫자의 공공도서관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국민의 인문학 보급을 위하여 각 지역 인문학 보급의 거점으로 공공도서관의 가능성을 지원하는 공모사업이다. 이 공모사업이 2013년부터 진행된 사업으로 매년 예산에 따라 전체 지원관의 숫자는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수의 공공도서관을 지원하는 공모사업임은 틀림없다.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의 경우 2013년, 2014년, 2018, 2019년 운영하였다. 길 위의 인문학은 기회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담당 사서가 주제, 모집대상, 강사섭외, 모집, 지출 및 운영까지 대부분 진행하게 된다. 지출은 주관단체인 (사)한국도서관협회에서 발급해주는 체크카드로만 진행하고, 강사료는 주관사에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많은 공모사업을 운영하였지만, 가장 공모 단체에 대한 배려가 높은 공모사업이다.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의 경우에는 (사)한국도서관협회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이기 때문에 공모에 참여하는 도서관을 배려하고, 공모사업을 하는데 추가적인 업무의 부하가 없도록 행정적 사항은 계속해서 수정되고 보완하고 있다. 거기에 각 공공도서관이 위치한 지역성과 공공도서관의 특성에 맞게 기획하고 반영할 수 있는 자율성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는 공모사업이다.
2019년의 경우 도서관이 위치한 지역의 여행 에세이를 쓰는 내용으로 사업을 진행하였는데, 여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글쓰기에 관심 있던 사람들을 모집하여 특강을 통해 여행작가들을 만나는 기회를 마련하고, 또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와 출판 과정에 대한 과정을 진행하여 살고 있는 지역의 여행 에세이를 완성하고, 각자 자신만의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나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분들도 계시고, 나만의 책이 생기고 그 책을 자신의 아이들과 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을 감사하는 분들도 계시고, 오래 이 지역에 살았지만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치던 다양한 여행 스폿도 함께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모사업은 공공도서관에서 흔히 진행하기 어려운 스케일의 문화사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참여자들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주거나, 소소한 변화를 주기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을 담당자가 진행하자면, 한 명 한 명 참여자들을 독려하고 케어하기도 시간이 부족하고, 여기에 각종 지출과 행정사항까지 지원을 하자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상황이 오기도 하지만 공모사업을 끝내고 오는 뿌듯함은 일상적인 업무를 진행할 때랑은 또 다른 뿌듯함이 있다. 이게 바로 업무적으로는 기피하고 싶지만, 막상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열심히 몰입하게 되는 공모사업만의 특징이다.
매년 공모사업을 지원할 때마다 몰아치는 업무량에 두려워 떨어졌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고, 또 막상 공모에 떨어지면 그 사업에 참여하며 웃을 수 있는 이용자들의 수많은 기대를 실망 시키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양가감정이 드는 것이 바로 공모사업이다.
올해도 수많은 공모사업에 지원을 하고 있다. 전반적인 기획의 틀을 짜고 강사를 모집하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공모 일정에 맞춰 제출하기까지는 시작이고 또 참여자를 모집하고, 강연을 시작하고, 운영하고, 마무리하는 것까지 눈덩이처럼 굴러서 나에게 안길 많은 일들이 두렵고 또 기대된다. (약간 변태 같은 감정 같기도 하다.)
힘든 만큼 또 보람도 따르는 일이니, 그만한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만큼 보람이 안 따르는 일도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면 또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