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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Jan 10. 2020

노력하지 않으면 어때. 2

Y 씨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각오했던 대로 투명한 Y 씨와 불투명한 나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같았다. Y 씨는 툭툭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단점을 이야기하고, 내가 알고 있지만 감추고 있던 단점도 가감 없이 툭툭 내뱉었다. 그럴 때마다 움츠러들지는 않았지만, 뜨끔 뜨끔 하기는 했다. 찌르는데 어떻게 안 아플 수 있을까? 찔리니까 아팠다. 그래도 그 정도는 각오한 일이었다. Y 씨는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알고 이 관계를 시작했다. 그래도 한 번은 Y 씨에게 크게 화난 적이 있다. 


전체 교육 시간에 도시락을 나누어줬는데, Y 씨가 그걸 발로 밀어서 나에게 건넸다. '투둑-'하고 관계의 일부가 끊어져 나갔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이 인간에게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예의란 게 있었다. 그게 나의 최소한의 경계였고, 그날은 Y 씨가 나의 경계를 건드렸다. 그냥 이 관계를 끝내고 싶었다. 여기까지 각오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인간이니까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 건드려진 느낌이었다. Y 씨가 그동안 나에게 건네었던 호의와 관심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날만은 그저 그 정도로 무시해도 될 정도의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Y 씨는 아무 의식 없이 그저 장난으로 그 정도로 편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굳이 내가 참아내야 할 부분은 아니었다. 


-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 어? 왜?

- 사람 먹는 밥을 왜 발로 밀어요?

- 아니 나는 손이 안 닿아서…

- 이게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지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하는 행동이에요?

- 그게 아니라 미안 나는 그게 화날 행동일 줄 몰랐어. 내가 미안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행동이었을 수도 있고, 또 무의식 중에 나온 행동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내가 상대의 상황과 마음으로 입장을 바꿔서 이해하는 것도 결국엔 자신의 기준에서 생각하게 된다. 아마 Y 씨는 내가 발로 자신의 밥을 밀어서 줬어도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화가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Y 씨를 무시해서 저런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그냥 관계를 끊어내고 싶었지만, 아무렇지 않아 하는 Y 씨의 행동에 정말 무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조금이라도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Y 씨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워낙 투명한 사람이니까, 끊어버리려 했던 인연을 다시 주워서 이었다. 


Y 씨는 어느 날인가 나와의 처음 만날 때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 그냥 낯선 나를 경계하는 게, 그렇게까지 사람한테 낯을 가리는 게 귀여워 보였어. 그래서 자꾸 들이대고 잘해주고 출퇴근시켜주고… 와 나 진짜 너한테 잘해줬다.

- 저는 Y 씨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 그래그래 그게 너무 보였어.


Y 씨는 모두에게 그랬듯 자신의 영역에 나를 들여놓기 위해서 많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해 줬다. 예를 들어 퇴근길에 당연히 집으러 가야 하는 길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바닷가로 데려간다던지, 뜬금없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팝콘을 먹으러 가자면서 영화관에 가서 팝콘만 사 가지고 나온다던지 하는 뜬금없고 이상한 그래도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경험시켜주었다. Y 씨의 일상이었고, 나에게는 일탈이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차차 재미있어졌다. 그런 소소한 일탈들과 Y 씨의 행동 패턴이 뭔가 왜 나는 지금껏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Y 씨는 자신의 영역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게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었고, 나는 타인에게 맞춰주는 것을 편안해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Y 씨의 일탈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사는 게 조금 재미있어졌고, 재미있어진 만큼 또 다른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졌다. 움켜쥐고 싶은 게 없었던 삶에서 뭔가 움켜쥘게 조금은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동해에서 일출을 본다던지, 특가로 뜬 항공권을 잡아 스킨스쿠버 다이버 자격증을 딴다던지, 삼겹살을 먹으러 지방까지 내려가고, 퇴근을 동해로 한다던지 그동안 있을 수 없는 일탈들이 마구 생겨났다. 


회사에서 이런 사람을 만났던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약 5년 간의 일탈을 즐기고 나니 나는 역시 노력하지 않던, 재미없는 사람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지만 인생에서 그만한 일탈을 한 게 내 마음속에 훈장처럼 새겨졌다. Y 씨는 여전히 그러하고 늘 즐겁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여전히 연애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또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는 Y 씨는 회사에서는 후배이고, 인생에서는 선배이다.


때로는 선배처럼, 때로는 후배처럼, 그저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Y는 컬러풀하고, 나는 회색이지만, 그냥 그런대로 어우러져 살고 있다. 




서로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다.

노력해야 하는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생긴 대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여도 충분히 좋은 관계는 유지된다.


나를 무너뜨리고, 나를 비워서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야 한다면,

언젠가는 그 관계를 나 혹은 상대가 무너뜨릴 수도 있다.


삐죽빼죽하면 삐죽빼죽한 대로,

둥글둥글하면 둥글둥글한 대로,


관계가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움켜쥐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가지게 되는 것처럼

그런 관계도 있는 거니까.


그런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으니까.


애쓰지 말아요.

그런 나라서 손 잡아줄 사람이 나타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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