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사서 Jan 09. 2020

노력하지 않으면 어때

어려서부터 무언가 죽을 만큼 노력해서 얻은 게 없었다. 

고3 때도 밤 한번 새어보지 않았다. 잠이 많았고, 차라리 밤에 자고 낮에 공부하자 했다.

남들은 죽을 만큼 노력하는 게 보이는데, 나는 정작 죽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중간 정도는 했다. 


가끔은 거짓말을 했다. 밤을 새워서 공부했다고,

가끔은 거짓말을 했다.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고,


노력하지 않고 거저 얻은 취급하는 게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또 가끔은 노력하지 않아도 거저 얻어지는 것에 우쭐해서 거짓말을 했다.




운이 좋은 편인지 고2쯤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모의고사를 보고 전교 20등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전교 50등 안에 들면 야자실도 따로 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따뜻하게 보내게 해 줬다. 그게 뭔가 특권이었다. 거저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뭔가 우쭐해졌다. 그러다가 죽도록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은 거 같기도 했다. 운이 좋았던 것이라 결국 몇 달 만에 쫓겨났다. 중요하지 않았다. 쟁취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빼앗긴다고 자존감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사실은 숨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실 숨이 막혔다. 위압감이 들었다. 친구들이 있는 일반 열람실로 옮기고 야자시간에는 땡땡이를 치고 놀러 다니는 게 좋았다. 고3 때는 그냥 놀고 연애하는 게 더 좋았다. 성적은 조금 떨어졌고, 재수는 하기 싫어서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은 있었다. 


남들 하는 것만큼은 하고 싶었다. 남들은 다 노력하고 있는데 나만 멍하니 있는 거 같아서 뒤처지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수석 차석하길래 그래도 한 번은 나도 해봐야지 하고 밤을 새워서 공부했다. 평생에 밤새 공부한 건 한두 번인데 그게 다 대학시절이었다. 수석은 아니지만, 차석은 두 번 정도 했다. 그렇다고 꼭 수석을 해야지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것도 아니다. 그냥 해보고 싶다. 그게 전부였다. 대학교도 나름 우등졸업을 했다. 노력하지 않은 것 치고는 꽤나 성실했다. 나는 죽도록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 어떤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열망했던 적이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손에 들어오는 것을 가지고 올라 있는 자리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또 무언가를 좋아해서 빠져들었던 적도 없다. 좋아하는 척은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 한참 아이돌에 빠져 있을 때 괜히 옆에서 같이 좋다고 따라다닌 적은 있어도, 정말 저 사람이 너무 좋아서 죽겠다까지의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다. 그냥 그 정도. 가지지 못해서 갈망하고 열망하는 것도 나에겐 없었다.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 장래희망에 '교사'를 적었던 나는 아주 작은 걸림돌에도 뛰어넘기보다는 돌아가기를 선택한다. 1년간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그해 내가 선택한 과목 TO가 전국 9명이었다. 그나마도 5명은 지역에 사대가 있어 가산점이 있어 어차피 경쟁이 되지 않는 자리였고, 서울에 단 4명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준비하고 꽤나 오랫동안 공들였던 꿈이었지만, 나는 단박에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다른 직업을 선택했고, 첫 이력서를 낸 곳에 1차 서류가 붙고, 2차 논술이 붙고, 3차 면접이 붙어 지금껏 그 회사를 다니고 있다. 햇수로는 12년 차이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하던 도중 나는 Y 씨를 만났다. Y 씨는 입사를 하던 첫날 얼굴로 욕을 하고 있었다. Y 씨가 입사하던 날은 창립기념일이었다. 행사가 너무 많아서 이제 막 들어온 Y를 챙겨주고 인계인수해줄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없었다. 차장님이 여기저기 인사를 시키고 있었는데 그때도 얼굴로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에 들이닥친 손님들에게 수박을 썰어오라는 차장님의 말에 수박을 썰면서도 얼굴로는 욕을 하고 있었다. 그 욕이 나한테 한 것도 아닌데, 입 밖에 그 욕을 한 것도 아닌데 불편했다. '아, 저 사람 곧 폭발하겠구나.' 괜히 신경 쓰여 차장님께 가서 오늘 처음 출근한 사람한테 수박 썰어라 한 건 너무 심하지 않냐고 했더니, 어쩔 수 없지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차장님도 Y 씨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꼬리를 내렸다. 


-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셔도 돼요.


 Y 씨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방을 들고 퇴근해버렸다. 나는 저 사람이 내일 출근을 할까 하는 작은 호기심이 들었지만, 이내 호기심을 접었다. 내일 출근을 하든 말든, 그건 내일이 되면 알 수 있는 일이니까 하고 신경을 껐다. 의외로 Y 씨는 출근을 했다. Y 씨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열망하고 갈망하고 그것을 꼭 해내고야 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너무 투명할 정도로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얼굴로 드러나는 늘 뭔가 불이 붙어있는 사람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사람. 나는 그 사람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직감을 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욕망의 체계가 굳이 내가 그 맞지 않는 불편함을 감당해야 할 어떤 이유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편했다. 그래 차단, 관심을 꺼버렸다. 


그런데 Y 씨는 유독 나의 영역에 끼어들었다. Y 씨는 사람들을 자신이 좋아하는 어딘가에 데려가서 경험시켜주고 체험시켜주며 사람들과 친해졌다. 내가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그 사람의 관심사에 내가 들어서는 것이었는데 Y 씨가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식은 자신의 관심사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Y 씨의 관심사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내 영역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섬의 사람들이 자꾸 Y 씨의 섬으로 이주하는 느낌. 더 이상 내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영역에 자꾸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이 아주 커졌을 때 어느 순간 Y 씨가 불쑥 들어와 있었다. 어느 순간 같이 출퇴근을 하는 사이가 되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던 Y 씨가 내 영역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그즈음 Y 씨가 불쑥 말을 건넸다. 


- 너는, 너무 색깔이 없어. 굳이 색으로 치자면 회색 같아.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고 그래.

- 그냥 저는 이런 제가 좋아요. 빨간 사람도 있고 파란 사람도 있는데 어딘가에서 그냥 그 색깔에 맞춰주고 그럴 수 있는 제가 좋아요. 그냥.

- 너는 다 나쁜데, 그 점이 제일 나빠.


그런데 그 대화를 마치고 나니 정말 내가 색깔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색깔이 없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 주변에 잘 물들기는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나의 경계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늘 나만의 기준이 명확하고 그 기준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나의 경계가 정말 최소한의 경계라 목숨 걸일 아니라면 그저 주변의 사람에 맞춰주는 쪽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 살면서 목숨 걸었던 일이 없었기에 살아오면서 대부분을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주며 살아왔다. 가끔 내 경계에 걸치려고 하는 일이 생기면 가차 없었지만 평생에 열 번은 될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걸 경험한 사람들은 내가 조금은 냉정하다고 했고, 그걸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내가 유순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그 경계를 들키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나이도 들었고, 굳이 내 색깔을 내 모양을 드러내며 삐죽빼죽하는 게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Y 씨는 굳이 따지자면 삐죽빼죽한 사람이었고, 나는 삐죽 찌르면 찔리고 비켜가며 사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게, 내 중심을 건드릴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굳이 방어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삐죽빼죽한 사람들은 나에게 위협은 아니었다. 그냥 삐죽빼죽한 사람. 나랑 맞지 않는 사람. 그냥 피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삐죽빼죽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맞춰주고 찔리고 아파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사람이 많았다. 찌른다고 상처 받을 만큼 나는 무른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었지만, 내 것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나를 지켜야 했고, 굳이 내가 나를 해쳐가면서 까지 관계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피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Y 씨 영역에 내가 들어섰고, 나의 영역에 Y 씨가 들어섰다. 


나는 사람에 대한 경계는 많이 하지만, 한번 내 영역 안으로 들어선 사람을 내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번 내 사람이다 하고 나면, 적어도 나의 선택이고 결정이었으므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각오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하더라도 '너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하고 넘겨 내야 했다. 그게 내가 인간관계를 하는 선이었다. 상대가 나를 내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쪽에서 관계를 끊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삐죽빼죽한 Y 씨와의 알 수 없는 관계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도서관에 방치된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