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사서 Dec 22. 2019

도서관에 방치된 아이들

어쩌면 결핍 그리고 그 이상

공공도서관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것은 많이 가진 사람, 적게 가진 사람, 아이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아이와 노인,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라도 찾을 수 있는 얘기다. 예전에 도서관을 청소하시는 어머님께서 한탄을 하신 적이 있다. 그날은 치매 노인이 도서관 남자 화장실 바닥에 대변을 보고 그것을 화장실 문이며 바닥이며 벽에 묻혀놨던 날이었다. 변기의 물로 세수를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직접 눈을 보지 않아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도서관이라고 하길래 배우고 점잖은 양반들만 오는 줄 알았더니, 치매노인이며 동네 노숙자며 다 몰려드는 것 같아. 아이고 이게 다 뭐야."


공공도서관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노숙자들의 쉼터의 역할이 되어버린 곳도 있고, 맞벌이 부부의 아이의 방치처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에 첫 입사 시에 면접 질문이 그것이었다. 


"공공도서관에 노숙자가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대처할 겁니까?"

"일단 악취가 나거나, 폭언이나 행동이상을 보인다면 이용자와 격리시키겠습니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도서관이기 때문에 도서관 밖으로 퇴실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숙자가 도서관에 들어온 이유와 필요한 것을 묻고 만약에 단지 공간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용자의 공간이 아닌 직원에 공간으로 안내하고 자료가 필요한 것이라면 별도의 공간에서 서비스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입니다."


라고 답했던 것 같다. 일단, 공공도서관은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라면 이용자를 가리면 안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그 대답이 정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면접에 합격하고 지금껏 그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개인으로서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아이를 도서관에 방치하는 부모였다. 아이들은 가끔 서가에서 배변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아이도 부모도 사라져 버린 후였다. 아이의 오줌으로 젖어버린 책이며 악취도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가 되었고, 시민의 세금으로 산 책이 못 쓰게 되어버렸으나 그에 대한 보상도 불분명했다. 또 어떤 아이는 씻지 않아 또래의 아이들이 냄새난다며 피하기도 하고, 어깨에 하얗게 내려앉은 비듬에 근처에 아이들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겨울에는 여름옷을 여름에는 겨울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운영시간이 종료되어 회의를 하며 다과를 먹고 있을 때 유리창에 붙어 앉아 '맛있겠다.'를 합창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를 탁아소처럼 도서관 어린이실에 보내 놓고 외출을 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아이가 부모도 없이 배변을 하고 닦아달라고 소리를 지르면, 화장지를 들고 달려가야 했다. 아이들이 도서관에 오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그렇게 방치하는 보호자에게 화가 났다.


어떤 아이는 자료실 내에서 뛰어다니고 고성을 지르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가지 않는지 아이는 매일같이 엄마와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한여름에 털부츠를 신고 도서관에 오기도 하고, 한겨울에 나시티를 입고 도서관에 오기도 했다. 옷은 얼룩이 가득했고, 본래의 색이 무슨 색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회색빛으로 때가 탄 옷을 입고 도서관에 오기도 했다. 가끔은 신발을 신지 않고 도서관에 오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아이가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고래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다른 이용자들도 불편을 호소했다. 그러나 아이가 소리 지를 때마다 다가가서 "언니 오빠들이 책을 읽고 있으니까 조금만 조용히 하자."라고 타이르는 것 말고는 아이를 자료실에서 내몰 수는 없었다. 아이가 도서관을 나가서 어디로 향할지가 불분명했다. 보호자는 무심하게 아이를 어린이실에 두고 다른 자료실을 이용하거나, 아이가 소리 지르는 것을 제지하지 않거나, 혹은 더 큰 고함을 아이에게 내질렀다. 아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까만 발로 자료실에 들어섰을 때는 아동학대가 의심되어 신고를 하려 해당 지구대에 전화했지만 이미 경찰서에서 내용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고, 아동학대가 아닌 것으로 훈방 조치된 사항이라고 했다.


매일같이 도서관에 오던 아이는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에 점점 익숙해졌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문화행사며 동아리며 어린이 행사의 대부분을 참여했다. 공공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모든 행사는 대부분 무료이거나 재료비 정도의 소정의 금액이면 들을 수 있고, 사서가 직접 기획하거나 지도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이다. 경제적 여건에 따라서 참여하고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수익사업이 아닌 공익사업으로 대부분의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참여가 가능하다. 


그 아이가 자라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의 행색은 여전하지만 비명이 잦아들었고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기도 했다. 어느새 친구도 생겼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질문도 곧잘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라고 생각이 커지면서 여전히 머리는 감지 않아 떡지고 산발인 채 다니고, 옷도 깨끗하지 못한 옷을 입고 다니니 아이들이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손을 번쩍 들고 아이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저는 아이들이 저를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반 아이의 보호자로 따라오신 어르신이 점잖게 대답하셨다.

"머리도 예쁘게 빗고, 세수도 깨끗이 하고, 깨끗한 옷을 입으면 친구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저는 아직 어려서 머리를 혼자 묶을 수 없어요. 빨래도 할 수 없고요."

"엄마한테 부탁을 하면 되지 않을까?"

"엄마는 바빠서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가슴이 저릿해졌다. 막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시간이 되도록 보아왔기에, 해맑게 하는 질문이 마음이 더 아팠다. 그나마 그 아이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으로 자라서,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아이로 자라났는데, 그 아이의 동생은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표현을 하면 주눅 들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포기하는 아이로 자랐다.


인형극을 진행하는 날 누나는 뛰어가서 앞자리에서 혼자 씩씩하게 인형극에 환호하면서 보는데, 동생은 앞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또래의 아이들이 앉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고 가방을 두고 막아서니 주눅이 들어 나가려고 했다. 내가 나서 가방을 치우고 앉도록 해주어도 이미 마음이 상했는지 나가려고 해서, 다시 잘 타일러서 보게 했더니 이내 웃으면서 인형극을 보았다. 내가 사서로서 아이들을 케어해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이의 케어는 보호자가 하는 것이고, 나는 아이에게 자료를 통해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다. 아이가 책에 대해서 질문하면 함께 대화해주고 답을 주기도 하고, 아이가 원하는 자료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해주고 제공해주는 사람이다. 아이의 선생님이 아니라, 자료실을 운영하는 담당자이자,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상의 서비스를 한 사람에게 치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으로는 도서관이 아닌 다른 공간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이라서 다행이었나 하는 생각도 한편든다.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도서관을 찾는 시간이 확실히 많이 줄어들었다. 보이지 않으면 걱정되고 또 만나면 반갑기도 하다. 그 아이에게 도서관에 경험이 방치로 남을까 봐 두렵다. 훨씬 더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도 있었는데, 엄마가 잠시 맡기는 곳,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곳, 지겨워도 버텨야 하는 곳이 되어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도서관을 찾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도서관을 찾을 때는 보호자와 함께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을거야'라고 안도하시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데스크에 와서 '몇시에요?'를 수십번씩 묻습니다. 수십명의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를 상대하는 사서는 한두명의 아이를 주시하고 보호해줄 수 없습니다. 아이가 도서관에서 좋은 기억을 쌓을 수 있도록 함께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