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휴일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쉰다는 것

by 호치담

한참 문화진흥으로 이런저런 공문이 내려올 시절 그런 공문이 하나 내려왔다.


- 매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니 소속 직원들 야근시키지 말 것

- 도서관은 직장인의 문화진흥을 위하여 문화가 있는 날 저녁시간 대 문화프로그램을 마련할 것


'뭔가 잊으신 듯한데, 사서도 직장인인데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직장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주어야 하니, 문화기반시설로서 수요일은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야근은 하지 말라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무인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남들 쉴 때 일하기가 어디 쉬운 줄 아는 건가.




문헌정보학과를 나왔기에 많은 동기들도 사서가 되었다. 그런데 문헌정보학과를 나오고도 사서가 되기를 포기하고 일반 회사에 입사한 친구가 있다. 이유는 사서에게 일요일의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일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가야 하는 친구였다. 물론 일요일에 쉬는 사서들도 있긴하지만 의외로 이런 이유로 사서교사를 준비하거나 사서를 직업으로 택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기업체 도서관 사서나 학교도서관 사서들은 다른 직장인들과 같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를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수는 공공도서관 사서들이기에 주말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공공도서관은 가족들이 도서관에서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인 주말에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주말 운영을 위해 사서들은 2교대 근무 혹은 3교대 근무를 한다. 직장인들이 쉬는 날 도서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건 문화기반시설이자 공공기관으로서 다수의 누릴 권리를 위해서 감안해왔던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내려온 공문은 또 허를 찔렸다. 직장인이기에 야근은 하지 말고, 사서니까 문화프로그램 운영하라니 이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문서가 내려온 것이다.


사서들이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어야만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해보려고 한다.


사서들은 도서관의 주말 운영을 위해서 주말에 근무를 한다. 그래도 주 5일 근무제는 보장이 되기 때문에 주말에 근무를 하고 나면 평일(정기휴관일)에 쉴 수 있다. 주말에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과 얻는 것들이 있다. 우선 포기해야 할 것은 가족 및 친구들과 주말여행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이 월-금 근무 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다수의 사람들은 주말여행을 선호하지만 주말여행은 대부분 못 가는 게 대부분이고 꼭 가야 하는 경우에는 근무 변경과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얻는 것은 평일에 나만을 위한 여행과 나만을 위한 휴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평일에 휴일은 관공소들이 문을 여는 평일 시간 대에 쉴 수 있기 때문에 은행 및 행정 업무들을 볼 수 있고 병원도 평일에 쉴 때 방문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사서 10년 차. 나는 혼자 놀고 혼자 여행 가고 혼자 밥 먹는 게 익숙해졌다. 평일에 쉬는 나의 일정에 맞춰 여행을 가줄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늘 무의미하게 휴일을 보내는 것도 아쉽고 해서 혼자 여행하고 노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는 그래서 내가 연애가 잘 안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많은 사서들이 연애도 잘하고 결혼도 잘하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나는 데이트 한번 하려면 날짜를 맞추고 맞추고 맞춰서 어렵게 어렵게 결혼했는데 말이다.


대부분의 친구들 모임은 주말에 맞춰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이루어지지만 도서관은 주말에 이용자가 더 많고 프로그램이 있는 경우도 많아서 금요일 토요일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직장인들의 생활패턴에 비유하자면 불화를 보내는 것과 같다. 월요일 월요병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화요일에 출근했는데 주의 허리를 넘기도 전에 진탕 마셔버리는 것과 같다. 컨디션 관리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그런 날 사서이기에 불금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모임에 참여를 안 하다 보면 어느새 당연하게 부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일하는 나를 배려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래도 소외되어버리는 건 또 슬프다.


나는 종교도 없고 굳이 쉬는 날이 주말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났더니 또 다르다. 토끼 같은 남편을 집에 두고 출근할 때 남편은 신나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슬프다. 지금은 남편뿐이라서 다행이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생겨나면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날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 것 같다. 가족들이 날짜를 맞춰 여행 한번 가기도 어렵고 복잡하고 말이다. 아이가 있는 워킹맘 동료들이 주말에 근무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것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앞에 닥치니 사실 좀 막막하다.


남들이 쉴 때 일하고, 남들이 일할 때 쉬어야 한다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공공도서관 사서가 되고자 한다면 꼭 향후 20년간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세요.


그리고 사서뿐만 아니라 주말 반납하고 일하는 모든 2교대 3교대 직장인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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