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기획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서의 역할에 대해서 각 문헌마다 다르게 정의하긴 하지만 사서의 역할에서 기획자로서의 역할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기획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기획력이지만 기획력에 걸 맞는 강연자가 섭외되지 않으면 기획을 모두 망쳐버릴 수도 있다.
도서관의 강사료는 기업의 강사료에 1/10도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기업체 강연은 수백 수천만 원의 단위로 섭외를 진행하지만 도서관에서는 장관이 와도 대통령이 와도 수십만 원 정도밖에 예산이 책정이 되어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수십만 원에 불과한 강연료로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인사를 초청하기는 어렵다. 또 분명 그 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올리고 좋은 책을 많이 쓴 저자라도 인지도가 낮은 강사를 섭외하면 이용자 모집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정된 강사료로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섭외 시 중요한 것은 일단은 진정성이다. '당신이 우리 기획에 꼭 와주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단지 유명한 사람이니까 베스트셀러 작가니까 하는 식의 섭외는 사실 불가능한 강연료이다.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명확히하고 이 기획에 당신의 작품, 강연, 철학이 우리 프로그램에 꼭 와주어야 한다는 호소가 명확해야 한다.
도서관에 기꺼이 오는 저자들이나 유명인들은 사실 재능기부에 가깝다. 기업체나 대단위 강연회의 경우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받는 저자들이 수십만 원의 강연료를 받고 도서관에서 강연을 해주는 것은 강연자가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크고 독자를 보다 편안한 공간에서 만나고 싶어 해서 도서관 강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유명 강사나 저자들의 경우 매니지먼트가 있는 경우에는 강연료를 기재하는 순간 '불가'하다 통보가 올 때도 있다. 혹은 스스로 자신의 강연료를 책정하고 그 이하의 강연은 다니지 않는 저자들도 있다.
자신의 강연 일정을 스스로 관리하는 저자들의 경우 메일이 전달되기만 한다면 그래도 섭외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가의 메일이나 연락처는 작가가 가장 최근 책을 펴낸 출판사 담당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행사의 취지와 섭외 요청서를 보내면 높은 비율로 작가에게 전달된다. 섭외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1차 목표로 섭외 요청서가 강의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것까지를 위한 방법이다.
나의 경우에는 예산이 허용하는 최대의 강연료를 처음부터 기재해서 섭외 요청서를 보낸다. 그리고 늘 '모시고 싶은 마음과는 비례하지 못한 예산입니다.'라고 양해를 구한다. 턱도 없는 강연료지만 닿은 인연을 기꺼이 받아주는 강연자들 덕분에 그동안 도서관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가지고 다양한 독서문화행사를 할 수 있었다.
섭외에 실패하면 상당히 괴로운 심정이 된다. 또 성공하면 수줍은 고백에 성공했을 때의 기분처럼 들뜨게 된다. 여러 번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섭외를 진행하면서 같은 행사에 다섯 번 여섯 번 섭외가 실패해서 계속해서 기획을 변경해가며 다른 저자를 찾아 헤맸던 적도 있다. 행사를 기획할 때 어떤 사람이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캐스팅보드를 작성하는데 나는 한 기획서에 1순위의 섭외 대상자 한 명 만을 타깃으로 한다. 그래서 해당 저자 섭외에 실패하면 그냥 사람 이름만 바꿔서 섭외할 수 없다. 섭외에 실패하면 다음 섭외 대상자에 맞춰 기획서를 변경하고 그에 맞춰 섭외 요청서를 보낸다. 이건 내가 그동안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하면서 늘 그래 왔던 것인데 '당신이 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나의 섭외 요청서에 대한 진정성이다. 섭외 요청서를 받는 저자에게 '당신이 아니면 진행하지 못할 기획'이라는 것을 수회 기획서를 고쳐가며 반영하는 것이다.
다른 그 어떤 섭외에 대한 잔기술보다 '진정성' 하나로 승부를 본다. 물론 아무리 진정성을 담뿍 담아도 다섯 번 여섯 번 섭외에 실패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뭔가 실연을 다섯 번 여섯 번 겪은 것 같이 심적 자괴감이 들기 때문에 먼산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취해야 할 때도 있다.
공공도서관에서 진행되는 많은 프로그램에 어디서 본 듯한 저자의 강연이 있다면 그 저자를 모시기 위한 사서들의 고군분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무료로 제공한다면 꼭 가서 듣기를 바란다. 실제로 그런 강연은 도심의 문화 복합시설에서 듣는 경우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듣는 강연들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순 없지만 단순히 돈으로 환산해도 그렇다.
찾아보면 당신의 주변의 공공도서관에서 높은 수준의 인문학 강연과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 기회를 마주한다면,
귀한 뜻으로 기꺼이 공공도서관을 찾아준 강연자에게 고마운 뜻을 전해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한정된 예산으로 고군분투했을 사서를 한번 떠올려 주길 바란다.
그게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양질의 문화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가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