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

by 호치담

"대리님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대리님이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저한테 해주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요."

"음? 내가 무슨 말을 했었던가?"

"제가 맨날 대리님한테 가서 이거 물어보고 저거 물어보고 하다가 어느 날은 너무 죄송해져서 '제가 너무 물어봐서 귀찮으시죠? 죄송해요.' 했더니 대리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잘 모르겠다. 한 8년 전 이야기 아닌가. 하하."

"'신입이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신입이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니까 마음껏 누려요.'라고 하셨어요. 그때 뭔가 막 면죄부가 생기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그때 저도 누군가에게 꼭 대리님 같은 사수가 되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저는 못 되어줄 거 같아요."


아끼던 후배 사서가 퇴사를 하던 날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 하고 곱씹어보니 후배들이 생긴 기쁨에 빠져 내가 그동안 듣고 싶었던 말을 모조리 쏟아냈었나 보다. 알아서 잘하는 후배라 살뜰히 챙기지도 못 했는데 나는 기억도 못할 만큼 툭 던진 말이 기억에 남아 이야기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찡했다.




'사서 e 마을'이라는 사서들의 커뮤니티가 있다. 사서들의 취업정보를 주로 올리는 커뮤니티인데, 사서의 업무 질문, 정보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은 의아한 질문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도서관의 환경이 100% 같은 곳은 없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사서 e 마을 같은 커뮤니티보다는 곁에 있는 선임 사서들에게 물어보면 좋을 법한 질문들이 올라오는 경우가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사서들은 '알아서 잘해야 하는 병'에 걸린 것 같기도 하다. 나름 정보 전문가이기 때문에 스스로 검색하고 정보를 취득하고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부분 사서들이 걸린 병이지 않을까?


나 또한 신입 사서 시절에 관장님과 선임 사서 각각 1명 그리고 같이 입사한 입사동기 5명으로 시작했다. 그 안에서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가기보단 외부의 지인 먼저 취업한 대학교 동기들에게 많은 질문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물어보지 않고 일을 처리하다가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경위서를 쓴 동기도 있었다. 도서관을 처음 위탁한 모기관, 관장은 처음인 관장님, 공공도서관 10년 경력의 선임 사서, 그리고 공공도서관 경력은 거의 없는 신입 5명이서 도서관을 개관을 해야 했으니 그 안에서는 질문할 곳도 없었고 서로 기대서는 해결될 문제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초보 사서 시절을 보냈으니 열심히 하려고 물어보는 후배의 질문이 예뻤다.


옆에서 살뜰히 챙기고 알려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여건이 되지 않았다. 늘 내가 하는 일도 벅차서 끙끙거리기 일쑤였으니까. 그래도 곁에서 후배가 물어보면 내가 아는 선에서 아니 그 이상 꼭 알려주고 싶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돌아 돌아 걸어가서 오래 걸려 걸어갔던 길은 누군가가 조금만 이정표가 되어줬더라면 정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던 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늘 허탈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길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후배들에게까지 고된 길을 걸어가라고 방관하기 싫었다.


내가 사서로 살면서 꼭 지키자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서가 되자. 두 번째는 질문에 무뎌지는 사서가 되지 말자.'이다. 사서로 사는 동안 이용자로부터 받는 참고 질의부터 소소한 질문들까지,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묻는 일상적 질문들까지 질문을 흘려듣지는 말자는 게 내가 정한 작은 규칙이다. 나에게 사서는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사서들도 그리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가끔 잊는 것 같다.


그런데 질문에 답을 하려면, 질문을 많이 해봐야 한다.
질문을 할 때 답에 대한 간절함, 필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서보다,
질문을 많이 해보고 답을 얻어 기쁜 경험을 많이 가진 사서가 더 좋은 사서가 될 수 있다.


질문을 잘하는 법도 연습할 필요가 있다.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 질문을 정리하는 과정과 내가 어디에 질문해야 가장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는지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질문하지 못하는 병을 고칠 필요가 있다.


내가 쓰는 글 중에서 일부는 질문하지 못하고 마음고생하는 신입 사서들에게 말을 건네는 글이다. 또 일부는 사서로 살아오면서 아프게 혹은 기쁘게 꽂혀있는 몇 개의 지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게 조금은 질문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사서들에게 비슷한 일을 겪고도 말하지 못했던 상처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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