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사서 Dec 03. 2019

사서라는 게 편한 직업이 아니구먼

하늘 아래 편한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사서가 아주 여자 직업으로 편하고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고생해 사서가, 아주 사서 고생이야"              


동아리를 들으시던 어르신이 조용히 다가와서 속삭이신다. 그날도 동아리에, 문화행사에, 자료실 교대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어르신을 오늘 5번째 마주쳤다. 동아리 수업에서, 또 이어진 특강에서, 자료실에서 책을 빌리러 오셨을 때도 계속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니 조용히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서가 가만히 자료실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걸 보았다면, 아마도 정신없는 일정 속에서 잠시 넉다운된 사서가 아닐까 싶다. 절대 할 일이 없어서 꾸벅꾸벅 조는 건 아닐 거라 나는 변호하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의 사서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속이 편하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공공도서관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그런 기획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은 그런 나에게 다가와서 조용히 속삭이는 동료도 있다.


"선생님, 그렇게 한다고 아무도 안 알아줘. 세상에 직장에 일이 전부가 아니잖아. 

삶과의 발란스도 중요하고, 또 그렇게 일을 찾아서 하면 자꾸 선생님한테 일이 몰려. 

지금도 봐. 내 보기엔 선생님이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또 일이 생기면 선생님한테 가잖아."

"감사해요. 그런데, 또 저는 일이 재미있어야 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재미가 없어서요."


그래도 말에서 끝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내가 낸 아이디어와 기획은 어떻게든 다른 직원에서 피해를 주지 않고 해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혼자 하기 버거운 일도, 잠을 줄이고 넘치는 초과근무로 막아낼 때도 많다. 한 날은 팀장님이 너무나 바쁜 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나를 붙잡아 놓고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힘들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도와달라고 해. 이게 도서관 일이지, 네 개인일이 아니잖아. 도서관 일인데 서로 필요할 때 도와주고 할 수 있는 거야."

"네. 감사합니다." 


가끔은 차가운 시선도 느낀다. '지가 지 무덤 파는 거지.' 같은 시선. 나도 내 무덤 파는 거 아는데, 일단은 나한테는 대충하고 편하고 재미없는 거 보다는, 열심히 하고 힘들고 재미있는 게 낫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성격이 팔자다.' 그냥 이게 내 팔자려니 한다.


도서관의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뛰어다니면 숨이 턱까지 찬다.  지나가던 이용자들도 툭툭 한 마디씩 던진다.


"선생님이 이 도서관에서 제일 바쁘신 거 같아요."

"아이고 아니에요. 다 바쁘시죠. 하하."


머리 터져라 기획하고, 또 열심히 홍보하고, 이용자들 모집하고, 운영하고, 또 결과 보고하고, 도서관에서 프로그램의 기획하는 사서들의 일정한 루틴이다. 행사가 흥하면 뿌듯하지만, 가끔 모집에 실패하거나 행사의 질이 떨어지면 자괴감이 든다. 그 누구도 행사가 잘 되는 것도 못 되는 것도 사서 탓을 하진 않는다. 그냥 오로지 나만 아는 나만의 뿌듯함과 괴로움 사이에서 매달린다.


사서는 편하려면 얼마든지 편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마음 편히 편할 수 있는 사서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편하게 일하는 사서가 더 많다면, 아마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법정 사서수의 20%도 채워지지 않았다. 5명이 할 일을 1명이 하는 셈이다. 그렇게 사서가 부족한데 공공도서관이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는 것 처럼 보인다면, 평균적으로 사서가 1인당 5명의 업무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 보면,  사서의 전문성을 발휘하기보다는 눈 앞에 떨어진 당장의 업무를 해치워나가기도 바쁘다. 사서가 전문직으로서의 전문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거기에 있다. 사서가 시민의 정보 요구를 분석하고 응대하고 답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아니, 없다. 1:1서비스보다는 더 많은 이용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문화기획자로서의 역할에 치중하게 되고, 정보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사서도 결국은 사람인지라, 정보전문가로서 경험이 중요한데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사서가 시민들의 정보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역할도 잊혀져 있는 것 같다. 결국 녹이 슬어버린다. 사서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이 정보수집과 제공에 밀집된 것은 아니지만, 사서의 다른 역할들도 사실은 정보전문가라는데서 파생되어 나오는 전문성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나는 사서로서 적어도 나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느끼고 그 혜택이 더 많은 시민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책 한 권을 살 때도, 이 책을 사면 다른 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이 책이 더 시민들의 손이 많이 갈 책인지, 그저 서가 속에 꽂혀있을 책인지 고민하고 탐색한다. 1년이면 수천 권에서 수만 권의 책을 산다. 사람인지라, 가끔은 그 수만 권의 데이터를 거르고 걸러도 같은 책을 살 때도 있다. 그럴 때 드는 자괴감이란, 내가 또 세금을 낭비했구나. 망연자실하게 된다. 


사서가 사서 고생하지 않으면, 사서는 편할지 몰라도 공공도서관은 어려워진다. 사서가 발전을 못하면 공공도서관도 멈춰 있을 수밖에 없다. 공공도서관이 멈추면 사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시민들이 사서가 공공도서관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서비스의 차이를 실제적으로 느끼지 않으면 사서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사서들은 그런 딜레마에 빠져있다. 사서의 수가 현저히 부족한 공공도서관도 겉보기에는 멀쩡히 돌아간다. 그것은 5명의 분을 1명의 사서가 해치우는 것과, 더 많은 이용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부분의 서비스를 늘리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서비스를 죽여가며 무너지지 않고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멀쩡히 돌아가니 사서를 뽑아줄 리가 없다. 공무원 총정원제가 시행되면서 TO 확보에 상대적으로 포기를 많이 하는 직군이 아마 사서일 것이다. 현직의 사서들은 채워지지 못한 동료의 자리를 군데군데 구멍 난 젠가처럼 악착같이 버텨내고 있다. 그래도, 이것이 오랜 시간 유지되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내실을 채우지 않고 허울을 채워나가다 보면 결국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들고 난 자리에 표시가 나야 하는 직업 중에 사서는 단연 상위에 랭크되는 직업이다. 단지 건물과 책이 있을 뿐이면 그것을 도서관이라고 하지 않는다. 서점이 될 수도 있고, 책방이 될 수도 있고, 서고가 될 수는 있어도 도서관이 되지 못한다. 그런 것이 도서관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사서이다. 시민들이 비어있는 사서의 자리에 익숙해지고 있다. 자원봉사자로, 비전문가로 그 자리를 메워가고 사서는 시민들과 떨어진 곳에서 죽도록 애쓰고 있다. 그런 사서의 존재를 아는 이용자들은 사서가 너무 고생한다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그런 사서의 존재를 더 많은 시민들이 알아채는 날이 올 때까지 더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서가 편한 날, 도서관이 망하지 않을까. 

하늘 아래 편한 직업이 있을까 싶은데, 사서도 편한 직업은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