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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Dec 03. 2019

사서의 손, 그리고 건초염

손이 고운 사서를 본 적이 있나요?


腱鞘炎[건ː초염]                        

건초에 생기는 염증. 급성인 것은 건초에 상처가 나거나 또는 부근의 화농성 염증에 계속해서 일어나며, 그 증세는 붓고 몹시 아프며 건의 기능이 마비되는 데, 나은 뒤에도 운동 기능의 장애를 일으키는 수가 있음. 만성인 것은 결핵성인 것이 많음



순회문고를 담당하던 사서가 어느날 내게 전화가 왔다.


"나 너무 손이 아파서 병원을 갔더니, 건초염이래."

"그거 엄청 아픈거잖아요. 병원에서는 뭐라고 그래요?"

"그냥 손을 쓰지 말라는데, 어떻게 손을 안 써. 근데 무조건 쓰지 말래. 권사서도 조심해요."


순회문고는 100권에서 500권의 도서를 기관이나 단체에 책을 가져다 주고, 또 바꿔주는 서비스이다. 보통은 남자 직원들이 하지만, 도서관에 남자사서가 어디 흔한가, 남자만큼 힘을 잘 쓸 수 있다고 자랑하던 한명이 나섰고 결국 사단이 났다.


수백권의 책을 일일이 고르고, 바코드를 스캔해서, 운반용 박스에 옮겨 담고, 또 문고에 도착해서 일일이 문고에 꽂아놓고 그러자면 단 100권의 책이라도 사서의 손이 다섯번은 간다. 100권의 책이라도 사서의 손에 들렸다 떠나기를 반복하는 책들 그 책의 무게가 쌓이고 쌓여 사서의 손에 무리가 간 것이다. 손은 계속해서 무리가 간다고 신호를 보냈겠지만, 그 신호를 받지 못했다. 결국 병원을 향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붓고, 손목이 부었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잡을 수 없는 상태란다. 왜 그렇게까지 될 때까지 몸을 혹사 시켰나 갑자기 화가 난다.


"일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타자도 치지 마요."

"하하, 권사서가 내 월급 줄거에요?"


월급 줄 수 없어서 잔소리는 거기까지 했다.


손목터널증후군, 건초염, 손목염좌 사서들은 달고 사는 편이다. 하루의 수백권의 책을 배가하거나, 순회문고와 같이 책과 직접 연관있는 업무를 할 때는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번갈아 다니기 일쑤다. 나도 책을 옮기다가 삔 손목을 방치하다가 손등에 뼈하나가 튀어나와있다. 다쳐도 어떻게 사서가 책을 안 만지고 일을 할 수 있나. 그러려니 하고 이제는 훈장처럼 여긴다. 


보통 많이 쓰고 단련하면 강해지기 마련인데, 이 신체에서 유일하게 손목만큼은 평생 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책을 가지고 단련을 해도 손목이 강해지긴 커녕, 손목이 너덜너덜거리는 지경이다. 그렇다고 속만 그럴까. 손의 피부도 문제다.


사서들에게는 100개의 핸드크림이 무소용이다. 핸드크림을 아무리 바르면 뭐하나, 책 한번 꽂고 나면 다시 손등이 하얗게 갈라지다 못해 피가 날 때도 있는데, 겨울에는 손이 빨갛게 튼 사서를 흔히 볼 수 있다. 손을 트게만 할까? 책은 가끔 숨어 있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베어낼 때가 있는데 칼에 베이는 것 보다 종이에 베이는게 훨씬 쓰리고 아프다. 기분탓인지 몰라도 아무튼 그렇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이 못 생겼지만, 손이 곱던 신입 사서들이 내 손과 별반 다를게 없어지면 그렇게 씁쓸하다. 그러면 한마디씩 던진다.


"손 지키고 싶으면 핸드크림으론 어림도 없어요. 100% 바세린을 바르세요. 도서관에서 손을 지킬 수 있는 핸드크림은 그것 뿐입니다." 


나는 손을 애저녁에 포기했다. 까칠까칠한 손으로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의 손을 잡을 때면 늘 미안해서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러면 남자친구는 굳이 손을 펴서 깍지를 끼며 '자랑스러운 손인데 뭐 어때 나는 그런거 신경 안써.' 해주곤 했다. 이 까칠까칠한 손이 괜찮다니, 그 말에 넘어가서 결혼했다. 내 스스로는 자랑스러운 손이지만 어디에 내놓기는 부끄러운 손이었다.


 10년차쯤 되자, 이제 그 쯤은 별것도 아니다.


"아, 책 만지는 사람 손은 다 그래."


대수롭지 않게 툭하니 얘기하는데, 딱 1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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