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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Dec 03. 2019

너 같은 거 죽여버리고 감옥 가면 그만이야

어쩌면 위험한 직업 사서

"너 같은 거 죽여버리고 감옥 가면 그만이야. 

나 숫총각이라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고, 부모도 없어 그냥 너 같은 거 죽여버리고 감옥 가면 그만이야. XX 년아.

뒤통수 조심해"



이용자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데스크 밑에 누군가 장난으로 버린 야구배트를 주워와서는 호신용으로 쓰라고 둔 것이 생각났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정말 그 야구방망이가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날이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부터 자료실 내에서 이용자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왔다. 쪽지로 이야기하는 사람, 상기된 얼굴로 말하는 사람. 그 이야기의 요점은 '도서관에 이상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였다. 그 사람은 책을 음독을 하고 있었다. 도서관 안에서 책을 속삭이듯 입으로 읽고 있었던 것이다. 다가가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용자님, 죄송합니다만 지금 소리 내어 책을 읽고 계셔서, 조금만 조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초점이 없던 눈이 이내 나를 쏘아보며 버럭 큰소리로 말했다.


"뭐? 내가 지금 조용히 책을 읽고 있잖아. 내가 큰소리로 읽었냐고!"

"지금 같이 열람실에 계신 이용자분들이 불편하실 수도 있어서요. 묵독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XX 년아. 내가 지금 조용히 책 읽고 있잖아! 내가 떠들었어?!"

"욕하지 마시고요. 지금도 큰소리로 말씀하고 계시니까 이용자분들이 불편하실 수도 있으니, 목소리를 낮춰주세요."

"아나, 이년이 열 받게 하네. 그래서 내가 큰소리로 이야기를 했냐고, 조용히 책 읽고 있는 사람한테 와서 열 받게 하네."

"욕하지 마시라고요."


이용자 간에 마찰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이용자는 괜찮은지 주변을 살펴보았다. 평소에 도서관을 자주 찾고 인사도 곧잘 나누던 이용자와 눈을 마주쳤지만, 이내 눈길을 피했다. 아들과 함께 열람석에 앉아있던 그는 자신의 아들이 나와 이용자의 소란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아들에게도 고개 돌리라는 신호를 보내며 고개를 숙였다.


내 앞에서 욕을 하는 이용자의 심한 욕설에도, 인격적 모독에도 나지 않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데 소란을 들은 남자 직원이 달려왔다.  


"직원한테 욕을 하시면 어떻합니까? 소란 일으키지 말고 열람실 밖으로 나가세요."

"아, 알았다고 조용히 하면 될 거 아니야. 알았어요. 조용히 할게요."


그 직원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체구도 작은 남자 직원이었다. 한참 소란을 일으키던 남자는 조용해졌다. 나는 뒤돌아서 데스크에 앉아있다가, 내가 왜 이런 인격적 모독을 당해야 하는지,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는지, 그리고 그 남자는 순식간에 온순한 양처럼 변했는지, 여러 가지 의문을 되돌아보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란을 일으키던 이용자는 잠시 후 소란스럽게 일어나더니, 내가 앉아있는 데스크로 와서 분이 풀리지 않은 듯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너 같은 거 죽여버리고 감옥 가면 그만이야. 

나 숫총각이라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고, 부모도 없어 그냥 너 같은 거 죽여버리고 감옥 가면 그만이야.

XX 년아. 뒤통수 조심해"

"네. 알겠습니다. 욕은 하지 마시고요.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으며 응대했다. 다시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열람실 문을 발로 뻥 차고 또 소란스럽게 퇴장했다. 조금 손이 떨렸다. 그리고 데스크 아래 야구방방이를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했다. 찌그러진 알루미늄 야구방망이가 유일하게 나를 지켜줄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용자는 원래 틈만 나면 욕을 하고, 여자 직원들은 무시하고, 도서관의 기물을 파손하고 다니는 그런 이용자였다. 이용자들과도 다툼이 있기도 해서, 그를 아는 이용자들은 그의 근처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 사람에 나에게 행동한 욕설과 무시하는 행동에 상처 받지는 않았다. 공공도서관은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고 다른 이용자에게 가하지 않는 이상 출입을 금지하기는 어렵다. 누구에게나 공공도서관을 찾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외면은 너무 아팠다.  나를 외면하던 눈빛과 수많은 시선이 순간 무섭고 두려웠다. 사서의 삶을 살아온 날 중에 아주 선명하게 영화처럼 기억되는 기억의 파편 중에 하나이다. 사람들의 외면과 정적,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그 날로 인해 조금 더 단단한 사서가 되었겠지만, 굳이 이런 일을 겪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동안은 이용자들에게 마음이 닫혔었던 것 같다. 단지 데스크를 사이에 둔 이용자와 사서의 관계라는 것에 따뜻함을 느꼈던 온기가 한순간에 식어버린 것 같았다. 물론 10년의 사서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상처를 받았듯, 그보다 더 많이 사람들에게 온기를 받았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좋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사서라는 직업을 사랑하지만, 그 날을 떠올리면 조금 차가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 소란을 일으키던 이용자는 어느 날엔가 도서관 지하의 화장실 강화유리문을 발로 차 깨뜨리고는 다시는 도서관을 찾지 않았다. 시설을 담당하던 직원은 유리문 배상에 대한 전화와 우편을 수 없이 넣었지만, 아무런 응대가 없었다. 그 날이후로 그 이용자는 도서관을 찾지 않았다. 수십만 원의 유리문 수리비가 들었지만, 어쩌면 암묵적으로 그만한 비용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었던 일이라고 동의하는 눈치였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지만, 그렇기에 모두를 위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일도 사서의 몫이다. 내가 겪은 일을 이용자가 아닌 사서인 내가 겪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누군가 내가 겪은 일을 이용자로서 겪었다면, 다시 공공도서관을 찾지 못하게 되는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행이고, 또 불행이고, 그런 일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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