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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Jun 05. 2020

떡다운 떡

엄마가 해주는 쑥개떡과 쑥찰떡

문뜩 떡이 먹고 싶어 지는 날이 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쫀득한 떡의 식감을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재래시장으로 차를 끌고 나섰다. 기억을 더듬어 시장을 기웃거리다 보니, 기억 속에 있던 자리에 떡집이 있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오색빛깔 꿀떡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던 바람떡 각종 시루떡 찹쌀떡 쑥개떡까지 종류별로 떡이 좌판에 늘어져있었다. '그래! 재래시장으로 오길 잘했어!' 내심 쾌재를 부르며 신나게 눈으로 떡들을 담았다. 무얼 살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남편이 좋아하는 꿀떡과 내가 좋아하는 바람떡으로 골랐다.


"얼마예요?"

"한팩에 2,000원 세팩에 5,000원."

"엇! 가격이 안 올랐네요?"


어렸을 적 그 가격이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다 오르는데 왜 떡값만 오르지 않은 걸까? 이상했지만 반가운 마음이 먼저였다. 마음 같아서는 종류별로 다 사고 싶었지만 두 식구뿐이라 욕심부리지 않고 두팩을 계산했다. 떡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콧노래가 흥얼흥얼 나왔다. '역시 시장이 최고야!'  


그렇게 집으로 도착하자마자 떡부터 꺼내 들었다. 유난히 알록달록 나를 유혹하는 꿀떡부터 집어 들었다. 반질반질 윤을 내며 나를 유혹하던 꿀떡을 한입에 넣고 베어물었다. 그 순간 몹시  당황했다. 떡의 쫀득함이 없고 설탕은 묽게 녹아 있고 그나마도 녹지않은 설탕이 저걱저걱 씹혔다. 쌀의 풍미는 온데간데없고 쌀의 묵은내가 났다. 반질반질 윤을 내던 기름에서는 마가린 냄새가 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얀 꿀떡이 인위적으로 보일 정도로 새하얗다. 다른 떡들도 그랬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이 인위적인 색이었다. 색깔만 다를뿐 맛은 다 똑같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잃은 손이 급하게 바람떡을 펼쳤다. 뻣뻣한 떡은 떡이거니와 안에 앙금도 단맛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팥인지 설탕인지 모를 시판 앙금의 맛이 났다. 실망한 마음에 다시 포장해서 식탁 위에 그냥 두었다. 퇴근한 남편이 웬 떡이냐며 주섬주섬 몇 개 집어 먹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그렇게 손이 가지 않던 떡은 그대로 버려졌다.


떡순이가 떡을 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빵 값은 빵집을 갈 때마다 오르는데, 떡은 십 년 전 이십 년 전과 가격이 똑같았다. 나는 거기서 의심을 했어야 했다. '한팩에 2000원' 요즘 봉지 과자 하나 가격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가격이 올라도 좋으니 예전의 그 맛을 돌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물가는 오르는데 떡의 단가를 올리지 않으려면 당연히 떡의 재료부터 바꿔야 했을 것이다. 한팩에 2000원짜리 떡을 사면서 쌀은 국내산인지, 꿀떡에 설탕과 깨소금이 함께 들었는지 따지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쓸데없이 입맛만 고급이 된 건지, 떡이 변해도 한참을 변한 건지 몰라도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떡은 그 자리에 없었다.


갑자기 서글픈 기분이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투정을 부렸다.


"엄마, 떡집에서 떡을 샀는데 옛날 떡의 맛이 아니야. 떡에서 묵은쌀 냄새가 나고 안 쫀득하고 물컹거려. "

"요즘 떡다운 떡이 없지, 가만있어봐. 엄마가 봄에 쑥을 뜯어서 데쳐서 얼려놨거든, 엄마가 떡을 해서 보낼게."

"아휴 뭘 또 힘들게 쑥을 뜯었어. 그런데 개떡? 찰떡?"

"둘 다 하지 뭐! 쑥버무리도 할까?"


엄마와 전화 통화만 했을 뿐인데 쫀득한 찰떡의 식감이 느껴지고 향긋한 개떡의 향취가 맡아지는 것 같았다.


어렸을  봄이면 산으로 들로 쑥을 뜯으러 다녔다. 그게 나름 놀이였다.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파트 마당에서 쑥을 뜯기도 했다. 그렇게 쑥을 뜯다가 엄마한테 달려가 허리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면 '조그만한 게 허리가 어디 있다고 아파!' 하고 크게 웃었다. 그렇게 검은 봉지에 잔뜩 쑥을 캐서 엄마한테 가져가면 엄마가 쑥 개떡을 만들어 주셨다. 개떡의 맛을 알리 없는 나이였지만 직접 뜯은 쑥으로 만든 떡이라는 게 뿌듯하고 신기해서 먹고 또 먹었다. 그 맛이 그리워졌다. 쌀과 쑥이 만들어내는 향긋한 단맛이 머릿속에 스쳤다.


어렸을 때 개떡은 좋은 쌀로 하지 않았다. 해를 넘겨 묵은쌀에 바구미가 끼면 햇볕에 널어놓아 벌레를 쫓고 그 쌀을 불렸다 가루를 내어 개떡을 만들었다. 소금간만 살짝 해도 쌀의 특유의 단맛이 쑥의 향취와 어우러졌다. 개떡을 만들어 가운데 거피팥 앙금을 넣어 앙금 개떡을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붉은팥을 먹으면 신물이 올라온다고 했지만 거피팥은 그렇지 않는다고 좋아했다. 나도 거피팥 앙금이 터질 듯 들어있는 앙금 개떡을 좋아했다. 또 개떡에 설탕을 섞은 콩가루를 묻혀 먹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는 개떡의 맛보다는 콩가루의 고소함과 설탕의 달달함을 좋아했던 것 같다. 떡을 먹고 남은 콩고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한참을 먹기도 했다.


쑥찰떡은 쑥으로 만든 인절미다. 인절미를 좋아하는 엄마가 외할머니께서 보내주신 찹쌀과 직접 뜯은 쑥을 떡집에 보내 종종 쑥 인절미를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두었었다. 허기질 때 하나씩 냉동실에서 꺼내서 녹기를 기다렸다가 말랑해졌을 때 한입 베어 물면 찰지고 달콤했다. 또 가끔은 기름을 둘러 구워서 살짝 조청이나 꿀을 찍어먹으면 겉은 바삭 속은 쫀득한 별미가 되었다. 엄마의 떡 속에 들어있는 쑥은 완전히 갈리지 않고 어느 정도 쑥의 식감을 유지했는데 그게 사 먹는 인절미와 다른 맛이었다. 손이 큰 엄마는 떡을 하면 늘 한 말  이상을 했다. 냉동실이 인절미로 가득 차야 성에 차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면 질려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내가 시집 온 뒤에는 쑥 인절미가 냉동실에 한참 있다가 엄마가 보내는 반찬 사이에 아이스팩 대용으로 딸려 오곤 했다. 언제 한지도 모를 떡을 보온밥솥에 넣어두면 또 막 찐 것처럼 쫀득한 찰떡이 되었다. 한참 된 떡에서도 쑥의 향기가 솔솔 났다.


엄마가 언젠가 저녁밥 대신 개떡을 먹는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떡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나 보다. 엄마가 만든 떡이 먹고 싶었는데 시장으로 달려간 것이 잘못한 것이었을까? 기어이 떡을 보내준다는 엄마의 확답을 듣고서야 마음 놓고 엄마의 떡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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