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시절 찬란하지 못한 마음
"좋은데, 마음을 다 주기 싫어."
"그게 무슨 소리야?"
"같이 있으면 즐겁거든? 그런데 결혼은 싫고 상상하기도 싫고, 내 마음이 더 가도 되나, 아깝고 그래."
"좋은데 왜 마음 주는 게 아까워? 아낌없이 주고도 더 주고 싶은 사람 만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나도 그게 답답해. 헤어져야 하나 싶고, 그런데 같이 있으면 좋고, 안쓰럽고 그래."
"왜 그런 연애를 하는 거야? 그 사람도 너랑 결혼하는 건 싫대?"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이 사람은 나랑 아주 먼 미래를 꿈꾸는 거 같기도 해. 난 잘 상상이 안 가는데."
"그럼, 그 사람한테 미안한 거 아니야? 헤어지긴 싫은 거고?"
"일단, 나는 지금이 좋으니까. 이 사람이 없으면 심심하고 외로울 것 같아."
"그 마음 그 사람도 알아?"
"아마 눈치챘을 거야. 내가 티를 내기도 했으니까."
"그거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 일방적으로 마음 주는 거 엄청 외롭고 힘든 건데."
"잘 모르겠어. 그래서 헤어지려고도 했는데, 또 얼굴 보면 좋고, 모르겠다."
"나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건 너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좋은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상처가 있는 친구였다. 이전 연애는 3년을 만나고 상대가 다른 사람과 바람이 났고, 그 이전 연애는 10년을 만나고 상대가 직장동료가 바람이 났다. 이 두 번의 이별이 친구를 겁쟁이로 만든 것 같았다. 그런 연애를 하는 동안 곁에서 10년간 친구로 있어주었던 사람과 새롭게 연애를 시작했다. 외로움 끝에 그 사람이 내민 손을 잡은 건지, 편안함에 친구가 그 사람의 손을 잡은 건지 누구로부터 시작된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처음엔 그저 축하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게 맞는 건지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10년간 친구로 직장동료로 쌓은 시간의 익숙함 때문인지 '설렘'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그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서로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그게 문제라고 했다. 또, 친구에서 연인으로 관계가 달라지면서 상대가 연인으로서 노력하고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서 자제하라고 하면서도, 막상 애정공세가 그치면 섭섭하다고 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계속했다. 헤어지겠다고 선언했다가 갑자기 꽃을 받았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함께 여행간다고 신나하다가도 여행 다녀와서는 헤어지겠다고 했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석달을 만났다.
주변에서 '잘해봐라, 헤어져라' 하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인데, 자꾸 주변의 의견을 물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해주다가 이 질문이 여러 번 반복될수록 피로감이 몰려왔다. 헤어지라고 말하면 "왜? 난 지금이 좋은데, 외로울 것 같은데."란 대답이 나오고, 잘 만나보라고 하면 "아, 아닌 것 같아. 진짜 안 될 것 같아."라고 했다. 연애에 대한 확신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인데, 왜 주변의 의견을 묻고, 그 대답을 듣지도 않으며, 그 대답에 흔들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의 마음 이상의 확신이 필요했던 것일까? 처음엔 진지하게 대답을 준비했지만, 반복될수록 아무렇게나 대답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연애나 결혼 모두 자기 확신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고집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나 스스로 수 없이 많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가야 한다. 연애나 결혼이나 있는 길을 걸어가는 게 아니라,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면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에서 길을 걷기 시작하면 둘 다 길을 잃고 헤매기 쉽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즐겁다면 그것으로 족하지만, 이 끝까지 함께 걸을 자신까지는 필요 없어도 같이 걷는 길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랑 같이 걷는 게 맞는 건가 계속해서 의심하고 상처 받을까 두려워하고, 상처 줄까 두려워하면서 위태롭게 걷는 그 길을 계속 응원해야 하는 건지 이제 회의감이 든다. 연애에 대한 확신을 자기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
그 연애의 끝이 어디를 향할지 모르겠다. 그냥 바라는 건 그저 행복했으면 하는 거다. 그 사람과 함께하든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든 그것보다 스스로 행복한 길을 선택하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곁에 있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걷고 싶다면, 그 손을 놓는 것부터 먼저다. 가지지 못한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기 전에 말이다. 스스로 자신을 낮춰 그 사람에게 맞춰가는 중에 생기는 작은 열병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은 상처 때문에 행복해야 할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
그렇다고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까지 그런 고민이 없었나 하고 생각해보니, 나는 먼 미래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매일 만나면서 그 사람의 좋은 점, 배울 점이 하나씩 보였고 그게 좋았고 그게 쌓여서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이랑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으면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이 사람이라서 다행이고,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혼자가 더 행복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뜨겁게 타올라 불 같이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안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게 분명 행복하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던지 상관없이 말이다.
어느덧 36살이다. 앞으로 연애할 기회가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으나, 그게 20대나 10대처럼 기회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내 행복이 차고 넘친다고 해서 나눠줄 수 없으니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고민에 쓴소리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나도 답답하다. '잘하고 있다. 아무려면 어때!' 그저 친구의 편이 되어 응원하고 보태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다.
"너는 사랑받고 상처 받지 않아서 그래. 너는 내 맘 이해 못 해."
"나도 남편을 만나고서는 상처 받거나 아프지 않았지만, 이 사람 만나기 전에는 이런저런 일 겪었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지금 그 사람이 널 상처 주는 것은 없잖아."
"그건 그렇지."
"나도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 등 뒤에 대고 사랑한다고도 해봤고 날 두고 바람 난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지나간 일이야. 그런 시간을 보냈고 아파봤으니 그게 얼마나 아플지 아니까 내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야 하는거야. 네가 아팠다고 그 사람을 아프게 할 권리는 너에게 없어. 지독하게 이기적인 거야."
친구는 그 이후로 자신의 연애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민을 끝낸 건지, 단순히 입을 닫은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겠지라고 짐작한다. 독한 말을 쏟아냈지만, 결론은 내 친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솔직히 말하면 상대가 상처 받는 것보다, 친구가 그런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 상처 받을까 봐 더 걱정이 된다. '좋은데, 내 마음 다 주기 아까운 사람과 보낸 시간' 그 사람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쌓아 웃으며 회상하게 될지, 친구가 자신의 불안이 맞았다고 나에게 따져 물을 지는 모르겠다. 그냥 자기 안에서 답을 찾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이 끝나면 뒤돌아 설 수 있어 좋은 게 연애 아니던가.
찬란한 시간 찬란하게 보내길 바라고 바랄 뿐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스스로 자신이 사랑할 사람을 알아보고 온 마음 쏟는 사람이 더 멋있다.
그런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연애라는 것이
찬란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귀하고 아끼는 마음 그 자체로-
마음을 줄 수록 내가 깍여나가는 것 같은 연애 말고,
마음을 줄 수록 내가 채워지는 것 같은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내 친구도, 그 누구라도.
연애를 한다고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간이 쌓여서 내가 잃을 것이 눈 앞에 있어도 두 눈 질끔 감을 수 있을 때 결혼하는게 후회하지 않는 방법인 것 같다. 그래도 이 모든게 자기 자신의 확신이었으면 좋겠다. 연애를 할 때 상대를 믿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을 믿는 편이 배신 당하지 않는 법이다. 적어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다음은 더 나에게 맞는 확신을 할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