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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Aug 14. 2020

남편에게 게임하지 말라하니, 나보고 출근하지 말라한다.

"여보, 어제도 늦게 잤지! 일찍 자라니까! 내일부터 게임 금지!"

"아니야 2시에 잤어! 나 게임 금지면, 그럼 여보는 출근하지 마!"

"… 게임이랑 출근이 비교대상이야? 그게 뭐야." 

"아 몰라! 여보는 내가 게임 좋다는 거만큼 출근 좋아하는 거 같아."

"… 출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여보는 그런 거 같아!"


도대체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줬기에 게임을 하지 말라니까 나보고 출근하지 말라고 하는 건가. 혹시 내가 출근하고 싶어서 안달 난 모습을 보여줬나? 도대체 뭘 보았기에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나의 삶을 되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출근하지 않는 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침대에서 12시쯤 일어난다. 소파에서 다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꼼지락꼼지락 핸드폰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대충 밥을 먹고 남편이 퇴근할 시간까지 기다린다. 가끔은 불도 켜지 않고 시체처럼 누워있을 때도 있다. 또 가끔을 책을 읽기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하지만 생산적인 활동은 미미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다. 약속이 있는 몇몇의 날들을 제외하면 현관문을 나서지도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내가 쉬는 날 남편이 출근할 때면 나에게 꼭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고 있어."라고 인사하고 출근했다.  출근할 때 본모습 그대로 누워있는 것을 보면 가끔은 뿌듯해하기도 했다.


나의 휴일은 그랬다. 열심히 일하고 집이라는 충전기에 꽂혀있는 핸드폰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충전했다. 그래야 또 출근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내 삶에서 일이 주이고 쉬는 건 수단이었다. 놀기 위해 일을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는 사람이었다. 노는 것도 활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이 주로 했다. 활동적인 휴일을 보내고 나면 일할 때 피곤하기 때문에 휴일이 이틀 이상 이어지지 않는 이상은 되도록 활동적인 휴일을 보내지 않았다. 지금껏 나는 내가 출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출근을 하면 주말만을 생각하며 달려가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가끔은 출근하기 싫어서 울면서 출근하기도 했었으니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출근하기 싫어하는 직장인이라고 되뇌었다.


그런데 남편이 나의 출근을 게임 취급하는 말을 하는 걸 듣고 보니, 나는 어쩌면 출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나는 출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Q. 나는 출근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A. 아니요. 나는 출근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출근보다 퇴근을 좋아하고, 그보다 쉬는 날을 좋아합니다.


Q. 그렇다면 쉬는 날을 무엇을 하는가?

A. 잠을 자고, 주로 시체처럼 누워있습니다.


Q. 잠을 자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가?

A. 아니요. 일을 하고 나면 쉬어야 하고, 일을 하려면 쉬어야 합니다.


Q. 일을 하기 위해 쉬는가?

A. 네. 나의 휴일은 일을 하기 위해서 컨디션을 회복하고 충전하는데 쓰입니다.


Q. 일과 쉬는 것. 어떤 것을 더 중요시하는가?

A. 일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은 결국 일하는 걸 좋아한다는 결론이다. 어쩌면 정말 나는 출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이라니 살면서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결론이다.

 

게임을 하지 말라하니, 출근하지 말라하는 남편의 말 때문에 

나는 내가 일중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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