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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Jun 23. 2020

13. 청약이 당첨되었다.

내 집을 마련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청약이 당첨됐다.


청약은 부은 지 11년 정도 되었지만, 오랫동안 세대원이었고, 부양가족도 없었고 별다른 가점이 없어서 청약은 사실 꿈꾸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결혼하면서 세대 분리를 했고, 세대주가 되었고 청약이 당첨되었다.


사실 공고가 떴을 때부터 관심이 갔다. 신도시처럼 거점이 좋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한적할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오를지 오르지 않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내 집이 생기면 매년 전셋값이 오를까 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막연히 들었다. 11년째 청약을 넣고 있지만, 이 청약으로 집을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청약을 넣기 전 한참을 고민했다. '우리 형편에 청약이 된다고 해도 입주할 수 있을까? 30년 동안 큰돈을 갚아나가는 게 과연 행복할까? 만약에 아기가 생기면 그 빚을 감당할 수 있을까?' 청약을 넣기도 전에 나는 마음이 몹시도 가난해졌다.


그러다가 내가 왜 굳이 이런 가난한 생각을 해야 하나,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그냥 청약을 넣지 말자 마음먹었다. 그러다가도 전세를 올려주면서 매번 이사를 다니면서 살아가는 게 더 불행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사도 사지 않아도 불행한 상황들만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에 "당신 마음대로 해!"였다.


그런데 남편이 마음대로 하라는 순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허리띠 졸라매면 그래 그 정도는 감당하면서 살 수 있을 거야. 그냥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도 단단히 각오하라고 했다. "우리 이제 외식도 못 하고, 철마다 새 옷도 못 사고, 여행도 못 가고, 차도 못 바꾸고 지금 누렸던 것 행복들이 다 사라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 집이 생기면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안정되게 살 수 있고, 전학 다니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 같이 열심히 해보자!" 그냥 마음대로 하라는 남편의 말이 지금껏 했던 고민들을 깨버렸다. 


남편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걱정 많고 겁도 많은 내 성격에 부정적인 것을 걷어 버리고, 긍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남편에게 힘을 얻어 고민 끝에 청약을 넣었고, 운이 좋게도 당첨되었다.




시아버지께서 청약 당첨 소식을 들으시곤 부리나케 전화를 하셨다.


"아니! 너희는 신혼부부가 무주택자에서 청약을 넣는 건 평생에 한 번의 기회인데,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곳에 청약을 넣었니! 너희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기회로 오를만한 투자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사고 몇 번을 굴려서 목돈을 만들고 그다음에 살집을 구입하는 거야. 무슨 생각으로 그런 곳에 청약을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잘 생각해 보거라."


흔히 말하는 갭 투자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지만, 부동산 정책이 수십 번 바뀌면서 집을 사고 파는 게 쉽지 않아 졌기 때문에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하시는 말씀이 틀린 말씀은 아니었고, 돈이 없이 무턱대고 실제로 살 실거주를 생각하고 투자가치는 생각해보지 않고 청약을 넣은 것은 맞았기에 조용히 질책을 들었다. 물론, 축하한다는 소리를 먼저 듣고 싶었지만 부동산 거래라고는 전셋집 얻는 게 전부였던 내가 청약이 덜컥 된 것은 나도 걱정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차근차근 말씀을 들었다.


뒤 이어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당연히 또 혼나겠지 하고 전화를 받았다.


"아가야! 축하한다! 청약됐다면서, 계약금이 모자라면 빌려줄게. 우리 조만간 만나서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자."


시아버지와는 상반되게 기쁘게 말씀해주시니 일단 감사했지만, 주말에 만나면 결국은 혼나겠지 하는 마음이 더 들었다. 그렇게 지난 주말 시댁에 방문해서 가족회의를 했다.


"너희가 청약이 된 것은 정말 축하할 일이지만, 계약금은 어떻게 할 것이고 입주할 때까지 큰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궁금해서 만나자고 했다. 이야기 한번 해보자."


"어머니. 일단 10%의 계약금은 결혼하고 모은 돈과 청약 저축에 들어있던 돈에 약간 대출을 받아서 마련하면 일단 계약금은 차질 없이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도금 대출은 시행사와 협력하는 은행과 중도금 대출이 60%는 무리 없이 진행될 것 같고, 잔금 30%는 저희가 3년 동안 알뜰살뜰 모아서 어떻게든 마련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중도금 대출받은 60%는 주택담보대출로 바꾸면 약 3억 이내인데, 30년 거치로 한 달에 150만 원 정도씩 갚아나가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지금 말하는 걸로 봐서는 일단은 계약금부터 걱정할 것은 없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나는 우리의 노후를 너희에게 부담 주지 않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래서 빌려줄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없다. 대신 노후에 너희에게 우리의 노후를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게. 내가 지금껏 모은 것, 주택으로 노후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보내려고 한다."


"어머니 저희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고, 이 사람과 저 성인이고 가장으로서 양가에 부담드리고 할 생각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저희가 알뜰하게 모으고 준비하면 특별한 이슈가 없는 이상 가능하다고 보고 진행한 것이고, 빚을 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빚도 저희가 쥐고 있어야 긴장감도 들고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는 거지, 그 채무를 어머님 아버님께 드리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청약을 넣을 때 입지적으로 그곳이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큰 판단을 하지 않고 넣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대단지가 조성되면서 초등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이 단지 내에 있고, 주변에 중고등학교도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곳에 있어서 아이를 키우기에는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사 다니지 않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전학 다니지 않는 것이 아파트를 분양받아 시세차익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수억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저희들은 생각하고 있고요."


시아버지와는 다르게 시어머니는 엄마의 마음으로 이 부분을 이해해주셨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시누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감한다고 했다.


"그럼. 그것도 중요하지. 너희가 잘 알아보고 너희의 삶을 이끌어 가리라고 생각한다. 너희가 계획하고 있는 것들 잘 준비해서 보금자리 잘 마련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이 오면 우리에게도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잘 꾸려나가니 고맙다."


단단히 각오하고 가족회의에 임했는데, 뜻밖에 지원군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아직도 걱정은 된다. 지금도 자다가 번쩍번쩍 깬다. 게다가 청약에 당첨된 다음날 내가 청약에 넣었던 아파트가 투기과열지역으로 묶였다. 투자가치 없는 아파트에 청약을 넣었다고 전날만 해도 혼났는데, 하루 아침에 투기과열지구라니 상당히 억울하지만 어쨌거나, 빚으로 집을 사고자 했던 나에게는 치명타였다. 기존의 규제대로 가도 열심히 모아야 가능했던 금액인데, 앞으로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내가 맨날 뉴스와 국토부의 공식 발표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옆에서 남편이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해준다. 그럼 또 스스륵 걱정이 풀어진다. 


인생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걱정만 하다가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앞으로 곧장 나아가 보려고 한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뭐라도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 같은 남편이면 당장 결혼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도 나 같은 남편이면 결혼할 것 같다. 
이 넘치는 자기애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혼을 하다니! 

아마 우리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그렇다고 내가 나라를 판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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