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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Jul 15. 2020

14. 남편 관찰일기

남편이 좋아서 예뻐 보이는 건가, 예쁜 짓을 많이 해서 좋은가.

2020. 07. 08. (수)


엄마 생신이라고 남편이 케이크를 사 온다고 했다.

지역에 괜찮은 빵집이 있어 거기서 케이크를 사 오라고 했더니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여기 생크림 케이크, 치즈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그리고 사과 케이크인데 이거 좀 예뻐 보여."

"음… 엄마는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하는데 없으면 그냥 아무거나 사 와요. 그냥 무난하게 생크림?"

"아니야. 아무래도 사과케이크가 예뻐 보여. 이걸로 살게요."


'어차피 처음부터 사과케이크가 예뻐 보여서 사 오려고 했으면서 왜 나한테 물어보는 것인가.' 당황했지만, 정말 사과 모양의 귀여운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케이크를 고르고 예쁘다고 사과케이크를 사 온 남편이 엄청 귀여웠다.


"엄마, 엄마 사위가 예쁘다고 사과케이크로 사 왔어. 엄마 사위의 센스 좀 봐. 아주 센스쟁이야!"

"아이고! 우리 예쁜 사위가 케이크도 예쁜 걸로 사 왔네. 고맙네 고마워."


귀여운 케이크를 사 왔다고 한바탕 칭찬일색이었다. 으쓱으쓱 한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왜 이렇게 애 같고 귀여운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남편이다. 정말.




2020. 07. 11.(토)


"여보는 정말 나를 만난 게 로또 맞은 거야. 이런 와이프 없다. 완전 로또야 로또!"

"맞아!"

"여보는 결혼에 완전 복 터진 거야."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늘도 세뇌 중이다. '남편 너는 복 받았다. 복 받았어. 나 같은 마누라 없다.' 처음부터 순응하긴 했지만, 요즘에는 말도 끝나기 전에 자기 스스로 '나 결혼 진짜 잘했어.' 한다. 세뇌가 성공했다. 요즘엔 종종 스스로 중얼거린다.




2020.07.12.(일)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은 저녁 먹고 함께 쉬다가 게임을 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한다. 한 번도 말린 적은 없지만, 혼자 놀게 두고 자기 혼자 노는 게 마음에 걸리는지 매번 묻는다.


"여보, 나 게임하러 가도 돼?"

"언제는 가지 말라고 했어? 하지 말라 그러면 안 할 거야?"

"여보가 하지 말라면 안 하지."

"그럼 하지 마!!!!! 나랑 놀아!!!!!"

"알았어."


순순히 소파에 앉는다. 그럼 또 마음이 약해져서는 "가서 놀아." 신나 하면서 가면 또 그 뒷모습이 몹시 약 올라서 "대신 한번 안아주고 가!" 하면 포옥 안아주고 간다.


수염 안 밀어서 이마가 따끔따끔하다. 따끔따끔 포옹 끝에는 이마에 여드름이 난다. 곧 멍게 해삼 말미잘이 될 거 같다.

 


2020. 07. 14.(화)


비가 와서 창 밖에 개구리가 떼창을 한다. 한 오천만 마리 있는 거 같다.


"여보, 두꺼비로 변신해서 개구리 좀 다 잡아먹고 와. 시끄러워 죽겠어. "

"여보, 두꺼비 오백 마리 있어도 저 개구리 다 못 먹어."

"그러니까 여보가 슈퍼 두꺼비로 변신해서 저 개구리 다 잡아먹고 와."

짐짓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여보, 나 개구리 안 좋아해." 다. '으.. 실망이다.'


개구리 대신 족발을 시켜 저녁을 배 터지게 먹고 소파에 들어 누워있다가 남편이 눈꺼풀이 무거운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여보 그냥 자!"

"아니야. 자면 안 돼. 억울해. 이렇게 하루를 끝낼 순 없어."


밑도 끝도 없는 노는데 대한 성실함. 성실한 우리 남편! 억지로 눈을 비벼 빨갛게 되면서도 또 꾸벅꾸벅 존다. 그게 안쓰러워서 피곤한가 보다 하고 이불 덮어주고 베개 다시 고쳐주고 토닥토닥 재웠다.


"토닥토닥하지 마.... 잔단 말이야. 자면 안 돼...."


30초도 지나지 않아 코를 곤다. 대단하다.

그 밤은 개구리 소리와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리는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일어나서 "앗!!! 나 벌써 출근해야 돼!!!!! 퇴근하자마자 출근해야 돼!!!!!" 엄청 억울해한다.


"나 근데 어제 어떻게 잤어?"

"그냥 30초 안에 자던데?"

"아.. 나 진짜 기억이 안 나. 망했어!!!!"


억울해하며 출근하는 뒤통수가 시무룩하다.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여보는 일분 안에 잠드는 초능력을 가졌어! 대단해! 우리 여보 대단해!"

"그래? 나는 그냥 머리 대면 잘 자는 거 같아."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와 으쓱으쓱 한 어깨를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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