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밥하고 찌개 끓이고 저녁 준비 다 해 놓으니 남편이 한껏 풀 죽은 모습으로 퇴근해서는 입맛이 없다 했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맛이 없던 적이 없던 남편이라 나도 한 껏 심각해졌다.
"입맛이 없다고? 나 오빠한테 그런 소리 처음 들어..."
"어? 나 그 정도였어?"
"응... 오빠는 그 정도였어...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속이 안 좋아? 체했어?"
"아니 아니! 그냥 입맛이 없는 것뿐이야."
"그렇다면 까불지 말고 저녁 먹자!!"
"넵!!"
잠깐 마음이 약해져서 억지로 먹지 말라고 하려다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밥을 먹였다. 힘들 때 일 수록 밥심인데 비실비실해질까 봐 더 세게 나갔다. 그래도 냉큼 자리에 앉더니 얌전히 밥을 먹다가 갑자기 이혼 타령을 시작했다.
"나 오늘 퇴근하면서 너랑 이혼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거든?"
"응? 이혼하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고!"
"이혼한다면 그에 따른 이유가 있겠지?"
"아니 이혼을 한다는 게 아니고! 이혼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 그냥 깜깜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네가 없는 집 그런 게 상상이 안돼. 벌써 이렇게 된 게 이상하고 신기해서"
"음... 이혼한다면 그에 맞는 이유가 있을 거고 살 수 있을 거야. 여보."
"아니... 그게 아니고! 결론은 나는 여보 바짓가랑이 잡고 끝까지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이혼할 이유가 생기면 이혼해야겠지!"
"어유~ 오늘 된장찌개 역대급이다. 내가 먹은 된장찌개 중에 최고야!!!"
뜨신 밥 먹고 어디 고장 난 건가 잠깐 정신 차리고 천천히 들어보니, 또 고백 중이다. 술도 안 먹고! 나 없이 못 살겠다는 소리를 저렇게 한다. 참 쉬운 소리를 어렵게 한다. 저런 귀여움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또 놀려주고 싶어 가지고 계속 이혼하고 싶냐고 추궁했더니 나한테 이제 이런 얘기 안 한단다.
입맛이 없다더니 된장찌개가 완전 자기 스타일이라며 밥을 더 달라고 한다.
"아 입맛이 없어. 밥 조금만 더 줘!"
"그게 뭐야..."
"찌개가 남았잖아! 그럼 이걸 남겨?"
"내일 먹으면 되잖아."
"아니야! 내가 다 먹어버릴래! 설거지해버리게!"
우리 집 설거지 담당의 책임감이란, 내가 이런 귀여운 남자랑 결혼하다니 아직도 믿을 수 없다.
이혼을 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정말 깜깜한 것은 아니고, 너무 흔한 일이다 보니 또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어느 날 콩깍지가 벗겨지고 밥 먹는 것도 보기 싫어지면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봤었다.
그런데 아직은 이 사람 입에 뭐라도 하나 더 넣어주고 싶고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게 먹는 이 사람이랑 먹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결혼하고 혼자 집에서 밥 먹는 게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데, 혼자 밥 먹다가 너무 맛이 없어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 이게 원래 그냥 먹는 밥 맛이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라면을 끓여 먹어도, 그냥 김치에 밥을 먹어도, 내 눈 앞에서 너무 맛있게 먹는 이 사람을 보면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 건지 모르게 정말 맛있어진다.
그게, 혼인 서약이었다.
아내가 해주는 밥은 늘 감사히 맛있게 잘 먹겠다는 것이 혼인 서약 중 하나였다.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이혼을 한다면 밥 먹는 일이 고될 것 같다.
이 사람이 눈에 밟혀서, 이 사람이랑 밥 먹는 내내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눈에 밟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