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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May 26. 2020

11. 남편이 예쁘면 시댁 말뚝도 예쁘다.

그러니까 남편이 계속 예쁘면 좋겠다.

일요일 11시쯤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시누이였다.


시누이: 오빠! 밥 먹었어?

남편: 아니 이제 먹으려고

시누이: 아! 그러면 먹지 마. 엄마랑 나 강화도 갈 건데 같이 가서 먹자.

남편: 응? (잠시 전화를 막고) 여보~ 엄마가 강화도 가서 밥 먹자는데 갈래?

나: 응? 그래~ 좋아~

시누이: 12시까지 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남편: 알았어.


시댁과의 급만남이 성사됐다.




남편은 귀찮음쟁이라서 내가 놀자고 하면 조금 뜸 들인다. 그래도 막상 나가면 나보다 더 신나게 놀아제낀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알아서 언젠가 한 번은 "내가 꾸물꾸물 거려도 그냥 여보가 날 끌고 나가!"라고 했더랬다.


토요일에 친정 아빠랑 저녁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내일의 계획을 남편에게 물었다.


나: 여보 내일은 뭐하지? 뭔가 나가 놀고 싶다.

남편: 어허! 시국이 이런데 무서우니까 내일은 집에서 있자.

나: 아니! 마스크도 잘 끼고 손도 잘 씻고, 손 소독도 열심히 하고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런 곳으로 나가 놀면 되잖아.

남편: 아냐 야냐! 나는 뭐 걸려도 회사 안 나가고 좀 아프면 되는데, 너는 안 되니까 안돼!


이번엔 좀 완고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그냥 집에서 맛있는 거 해 먹고 뒹굴거려도 재미있으니까.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집순이다. 뭔가 주변에서 신혼에 여행을 다니지 않으면 아이 낳고 키울 때는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들 그러니 약간 의무감도 있었고, 뭔가 남편이랑 놀면 재미있기도 하고, 또 나가자고 할 때 남편이 요런 저런 핑계를 대는 게 뭔가 괴롭히고 싶은 것도 있고 해서 나는 종종 나가자고 떼를 쓴다.


그러던 차에 다음날 시어머니께서 나들이 가자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하면서 콜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남편: 주말에 뭐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그때 딱 전화 온 거 있지.(거짓말쟁이다. 안 나가기로 했으면서)

어머니: 그랬어? 옥이는 피곤하지 않니?

나: 네네! 어머니 전 내일 쉬어서 좋아요! 전 나가서 놀고 싶었어요.

어머니: 그랬어? 잘 됐네!


그렇게 나가서 어머니께서 재난지원금으로 생선구이를 사주셔서 배 땡땡하게 점심 잘 먹고, 데이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야외 정원이 예쁜 카페에서 맛있는 브라우니와 커피도 먹고, 한참 꽃이 핀 공원 한 바퀴 돌며 소화시키고 우리 집에서 차 한잔 마시며 쉬다가 양꼬치에 칭다오까지 사주셨다. 나는 조금 더 놀고 싶었지만 아쉽게 헤어졌다.


헤어질 때쯤 어머니께서 살짝 밀당을 하셨다.


어머니: 내가 재난지원금 8월까지 아껴 쓰려고 했는데 오늘 다 써버렸으니까 우리 다음 옥이 생일에나 만나자! 옥이 생일에나 밥 사줄게!(내 생일은 엊그제였다.)

나: 어머니 다음엔 저희가 사드릴게요. 조만간 또 만나요. 네?!

어머니: 아냐. 다음에 옥이 생일에나 만나자!


다음에 소고기 사드린다고 간신히 붙잡았다. '에이 소고기는 비싼데, 옥이 무리하는 거 아니니?' 하시면서 허허 웃으시다가 6월 말에 놀러 오신다고 하셨다. 

 

다음 날 같이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드리니 '옥이 신랑 인상 왜 그러니~ 오늘 하루 잘 쉬어라 어제는 너희 덕에 잘 보냈다.'라고 답장을 하셨다. 남편한테 보여주니, '아니! 이 아줌마! 자꾸 아들을 며느리한테 줘버리려고 하네!' 하며 버럭버럭 했다. 


어머니께서는 남편을 부를 때 '너네 신랑' '옥이 신랑'이라고 부르시는데, '이제 내 아들 아니고 네 남편이다.' 주입하시는 거 같기도 하다. 절대 반품은 안된다는 제조사의 입장인 것 같다.


여름에 시댁이랑 휴가 가고, 또 친정이랑 휴가 가고 그래야겠다. 나는 진짜 우리 엄마도 좋은데 시엄마도 좋다. 세상에서 제일 츤데레 시누이도 좋다. 세상 세심한 시아버지도 좋다. 이게 바로 마누라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한다는 게 이런 건가.  나는 남편이 좋아서 시댁 말뚝에 절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남편이 계속 나한테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댁을 계속 좋아하고 싶으니까.


결혼하고 행복하고 좋을 때마다 진짜 백번도 더한 대화이다. 


"여보! 나한테 잘해! 우리 이렇게 계속 사이좋게 지내자!"

"응응 지금도 사이좋은데 우리"

"응응! 그러니까 더 사이좋게 지내자고!"

"알았어!"


부모를 고를 수 있는 자식이 어디있겠는가. 
태어날 때도 그렇고 결혼할 때도 그렇다.

낳아주신 부모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것.
당연하지만 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감사하고 내일도 감사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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