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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May 21. 2020

10. 남편과 함께 시험 보기

자격증을 같이 따 보기로 한다.

"오빠, 나는 오빠가 꿈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나 아직 그런 거 없는데, 그냥 돈이 많이 벌고 싶어. 로또 되고 싶어."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잖아. 그냥,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그런 거 말이야. 나는 당신한테 그런 게 있으면 좋겠어."

"음, 지금은 사실 그냥 하루하루 살아내고, 월급 받고, 너랑 행복하게 사는 거 말고는 잘 모르겠어. 생각해 볼게."

"응응. 꼭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말해줘."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손해평가사 시험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가 말해줬는데, 뭔가 해보고 싶어 졌어."

"그래그래. 혼자 공부하면 재미없으니까. 같이 보자."

"싫어 싫어! 너만 붙고 나는 떨어지면 어떡해!"

"그러니까 열심히 하라고!"


그렇게 부부가 함께 손해평가사 시험 1차를 접수했다.




손해평가사는 농어업재해보험법에 따라 농작 재해 보험에 관한 피해사실 확인, 보험가액 손해액 평가 등을 하는 전문인력이다.


농어업에 재해가 발생했을 때 보험에 가입한 가입자의 실제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해서 보험사업자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확인하고 평가하는 직업이다. 요즘은 프리랜서로 주말이나 휴가를 활용해서 투잡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법인 등에 고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나는 준공무원 신분이라 투잡이 불가하다.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직업을 바꿀 생각도 없고,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오래오래 해서 그 끝에 서보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뭐 인생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길게 봐서 나쁠 건 없으니까 같이 공부해보기로 했다.


같이 공부를 시작하니까 일단, 남편 혼자 외롭게 공부하게 두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남편만 공부시켜놓고 거실에 덩그러니 앉아서 TV를 보던지, 공부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조용히 하고 있기만 하는 것 사실 내가 공부하는 입장이면 더 신경 쓰일 것 같다. 가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물어보면 같이 생각해보거나, 같이 찾아볼 수 있어서 좋다. 


또, 인생에 만약에라는 것이 있으니까. 만약에 내가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직업을 같이 한다면 그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런 상상을 하는 것도 재미있다. 손해평가사는 직업의 특성상 출장이 잦고 지방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또 농업재해에 대한 보상이다 보니 겨울에는 일이 없고, 농업재해가 발생하는 계절에 일이 밀집되어있다. 부부가 같이 손해평가사를 한다면 같이 열심히 돈을 벌고 겨울에는 같이 여행 다니며 사는 것도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손해평가사가 일단 보험학, 농업재해 법, 농학 개론(재배학 및 원예 작물학)을 공부하는데 이게 또 재미가 있다. 일단, 일단 불안해서 가입해 두긴 했지만 보험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들에 대해 이론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요즘 한참 상자텃밭 사업을 맡고 있는데 재배학을 공부할 수 있으니까 또 그게 재미있다.


같이 책상에 마주 앉아서 공부를 하다 보면,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습이 또 귀엽고 응원하고 싶어 진다. 


사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가 한참 공부할 즈음에 대학원을 갈 생각이었다. '공부해라' 소리 없이 조용히 곁에서 공부하면서 응원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남편한테 그렇게 해주고 있다. '공부해라' 대신 '같이 공부하자' 해보니, 남편도 나름 재미있다면서 내일도 또 이렇게 공부하자고 쭈뼛거리며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남편이 정말 좋다.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내가 당신을 지켜줄 수 있어서 그게 참 좋다.
그런 내 마음을 왜곡하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주는 당신이 참 좋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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