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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May 03. 2020

9. 꽃을 돈 주고 사는 걸 이해 못하지만 달달합니다.

우리 나이에 두근거릴 수 있나?

얼마 전 오랜 친구와 연애를 시작한 친구가 말했다.

"10년 간 친구로 지냈는데, 이제 와서 연인이 되려니까 이게 맞나 싶어. 설렘도 없고, 두근거리지도 않고, 우리 나이에 연애는 다 이런 거니?"


또 다른 친구가 옆에서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참 좋은데, 이 사람이 마지막 연애라고 생각하면 정말 나에게 이 연애가 이 사람이 끝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듣다가 그냥 한 마디 했다.


"설렘은 솔직히 내가 만드는 거지, 상대가 만들어 주는 건 아니지 않아? 좋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좀 두근두근 하고 그러지 않나?"


나는 저녁 먹고 설거지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설레는데 말이다.




사실 남편과 연애의 시작은 뜨뜻미지근했었다. 이렇게까지 말이 많은 사람도 처음 봤고, 첫 만남에 사돈의 팔촌까지 다 알게 되어서 신비감도 없었다. '동네 형아'같았다. '아는 오빠'도 아니고 정말 그냥 '동네 형아' 그런 첫인상에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을 보면 가끔 놀랄 때도 있다.


반면에 지금은 가만히 둘 수가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TV를 볼 때 접힌 뒷목을 햄버거라며 깨물고 싶을 만큼 말이다. 


TV를 볼 때 동그란 어깨에 집중하는 두 눈과 동공을 보고 있으면 이가 간질간질하다. 크로켓이라며 턱수염이 까슬까슬하게 난 턱을 덥석 덥석 깨물고 싶어 진다. 특히, 설거지하고 있는 잔뜩 움츠린 넓은 어깨를 볼 때마다 두근두근 한다. 저렇게 커다란 사람이 나를 위해서 설거지를 하다니 등 뒤로 가서 어깨에 기댄다. 그게 내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한 번은 내 친구의 집들이에 갔다가 잔뜩 술이 취해서는 수다쟁이가 됐다가, 잠시 담배를 피운다며 집 밖으로 나가서 전화 걸어서 "사랑합니다." 고백을 하는데,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달달한 고백을 하는 그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그리고 가끔 못살게 굴다가 "여보 나 사랑해?" 이러면 "응! 사랑해!" 이렇게 장난스럽게 대답하다가도 "여보 나 사랑해?!" 물었더니 갑자기 진지하게 "네가 하는 것 좀 봐라. 어떻게 안 사랑할 수 있겠어."라고 말할 때는 또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가끔은 이게 정상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고, 이러다가 내 사랑이 다 닳아서 한 순간 사라져 버리며 어떡하나 싶을 때도 있고, 이러다가 이 사람이 갑자기 변해버리면 어떡하지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또 그냥 지금 이렇게 좋은데, 더 좋을 필요가 있나 싶고, 나중일은 나중에 걱정하자 해버린다. 


그리고 남편의 마음은 수시로 묻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이랑 똑같을 거야. 나는 애써서 하는 게 없거든 나는 그냥 지금이랑 똑같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한다. 어디 변하지 않는 게 쉬운 일이겠나 싶으면서도, 또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햇수로는 4년이란 시간 동안, 연애 때나 결혼할 때나 결혼해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인 것을 보면 그 약속을 지킬 사람이다 싶기도 하다. 


봄이면 봄이라고 꽃을 사 오는 달달함은 없지만, 가끔은 꽃을 사달라고 졸라도 안 사줄 때도 있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명확한 편이 더 낫다. 인생에서 꽃다발쯤이야 포기할 수 있다. 


당신 자체가 단조롭던 나의 인생에 핀 꽃이다.

정 꽃이 가지고 싶으면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이라도 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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