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사서 Apr 14. 2021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너는 언제나 네가 옳지. K야. 그런데 너도 틀려. 너도 틀릴 때가 많다고."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언제나 내가 옳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쌓아온 모든 관계에서 그에게 나는 옳은 척하는 틀린 사람일 뿐이었다. 그 말이 내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큰 충격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맞아. 나도 틀려. 내가 다 맞는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너는 언제나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런 점이 S랑 똑같아. 너도 S랑 다를 게 없어."


S는 J의 남편이다. 그는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기적인 논리로 자기의 삶을 위해서 J를 희생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J 앞에선 티 내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그를 싫어하는 것은 이미 J의 가족이 된 S를 싫어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비집고 나오는 진심은 어딘가에서 독이 되어 J 안에 쌓여있었다. 그리고 나는 J에게 S와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근데 나는 그게 아니었어. 나도 불안하고 몰라서 그래서 그랬던 거야. 조금이라도 너에게 도움을…."

"K야. 내가 원하지 않아. 너는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네 착각이야. 나는 원하지 않아."


결국 울음이 터졌다. J는 내쉬는 숨을 다시 삼켜가며 울었다. 참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 없는 듯 토해내며 울었다.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J가 원치 않을까 봐 망설이다 멈췄다. 내가 지금껏 J에게 쓴 모든 마음이 폭력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변명을 하려다가 그것도 J에게 폭력이 될까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이후에 나는 J에게 어떤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미안하다고 했으므로 다시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었고 늘 하던 대로 이야기 건넬 수도 없었다. 그저 안부를 묻고 가벼운 농담 정도만 할 수 있었다. 내가 또 J의 상처를 건드릴까 조심스러웠다. 그 이후 J에겐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방어막이 생긴 듯했다. 그게 J에게 안식을 줄 수 있다면 그뿐이었다. J는 어려서부터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친구들 앞에서 많이 울었다. 나와 다투어도 그랬고 연애가 잘 안될 때도 그랬다. J가 울면 J를 울린 사람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J는 결혼을 하고 남편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울지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 늘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술에 취하면 말했다.


"남편 때문에 우는 건, 남편을 욕하는 건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더라고. 너희는 내 친구니까 내 친구가 내 남편을 미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랬던 J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나의 그런 점을 자신의 남편과 닮았다고 말하며 울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J에게 그동안 내뱉은 모든 말을 주워 담아 태워버리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뭐라고 J가 불행하다고 판단하고 J에게 상처를 준다고 S를 미워했으며 J를 안쓰러워하고 안타까워했을까. 그것은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은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J의 말을 곱씹었다. 나는 왜 J의 존재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왜곡된 시각에서 J를 보고 내 프레임 안에 가뒀을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내 생각과는 다르게 행복했던 J의 시간까지 마음껏 행복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모든 착각이 모두 틀린 것이었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나는 더 이상 J의 친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J 친구가 아니었다. J는 더 이상 나의 친구가 아니었다.


J의 말이 모두 맞았다. 힘들다고 토로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감정적인 위로 대신에 '힘들게 하는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접근했다. 감정적으로 기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조언자였다. 그러다 보니 말이 많았다.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그건 틀린 건 아닐까? 이게 맞아.'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단정적이거나 명령조가 많았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도움이 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조차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 이성적이랍시고 나만 아는 것 마냥 떠들어 댔다. 정답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정답이랍시고 말의 말뚝을 누군가의 가슴에 박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내 못난 짓을 감싸주던 J는 더 이상 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얗게 모두 쏟아냈다. 나는 친구라는 이름의 폭력을 J에게 멈추기로 했다. 나에게는 그게 옳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까 그저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시 J와 예전의 사이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01 씨앗이 되는 사업 기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