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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Jul 03. 2022

불변(不變)

지난 5년간 하루 아픈 적도, 아프다는 핑계나 변명을 대본 적도 없이1) 일하였다. 부모가 사장에게 진 빚을 갚으려면 앞으로도 5, 6년은 더 이렇게 일해야 할 것2)인데, 몸이 정말이지 말이 아니다. 제때 출근하지 못하자 그간의 성실함이 도리어 혐의가 되어, 일하는 매장의 지배인이 직접 집에 찾아왔다.3) 가족과 함께 몸 상태를 보고 난 지배인은 혐오감 속에 그저 도망치듯 떠나버렸으니, 가족의 장래4)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가 어려우나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기 시작하였고,5) 또 사실 한두 해는 버틸 비상금6)이란 것이 마련되어 있더란 말이다. 그러므로 이 가정(家庭)에 있어 경제적 형편이란 게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은 않은 것이다. 다만 부지불식간에 다른 무언가 달라지긴 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결국 본인의 방에서 씁쓸히 죽도록 내몰리게 되며, 나는 그 달라진 것이 무엇이었는지 추적하고 있다.



『변신』. 사람의 몸이 하루아침에 ‘흉측한 해충’으로 변신하다니, 이 얼마나 큰 사건인가? 다른 이야기에서라면 어떤 악당의 최후로나 나올 법한 이 내용으로 카프카는 되레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쁜 일을 저질러 벌을 받았다든지 저주나 마법에 걸렸다든지 하는 어떤 최소한의 장치나 설명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 그것도 해충으로 변해있다니. 시작이 이렇다 보니,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그레고르가 어떻게, 그리고 왜 해충으로 변하게 됐는지 줄곧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레고르의 변신에 있어 개연성이란 그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당최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그레고르가 흉측한 해충이 아니라 그냥 커다란 거미로 변신을 했다고 해도 아무래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는 것이었다. 변신 후에도 그는 변함없이 인간이었고,7) 무엇보다 한동안은 그의 세 가족으로부터도 인간이자 가족의 일원으로서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만, 한동안만.

수년간 그레고르가 홀로 일하는 동안 본인들이 누렸던 생활을 유지해보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가족들은 불과 몇 달 만에 너무도 지쳐버렸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일이 견딜 수 없이 힘들다거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정 경제가 크게 휘청이고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본인들 세 사람만이라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 이제는 그레고르가 그들 삶에 방해가 되고 또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급기야 과거 오빠를 돌보기를 자처했던 그레테가 외치고 만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가 있지요? 만약 이게 오빠였더라면, 사람이 이런 동물과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자기 발로 떠났을 테지요.”8)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이들이 그레고르를 정말로 해충으로 바라보게 되는 ‘변신’ 아니 ‘변심’의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정말이지 중요한 건 이 순간이기에, 이야기의 시작은 아무래도 좋았던 게 아니겠는가?


하나, 나는 이 가정을 향해 변심하여 인간애·가족애 등을 저버렸다며 당장 기소(起訴)하려는 어떤 검사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파 누워있는 가족을 간호하며 괴로워하는가, 얼마나 슬퍼하고 절망하는가, 나는 제대로 짐작할 수도 없다. 언제까지인지도 모른 채 그런 하루가 반복될 때,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레고르가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 모습에 세 가족은 그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상상치도 못해 대화를 시도해보지도 못했다.9) 누가 이 가족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누가 이들에게 죄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아, 기껏 여기에까지 와서 한다는 것이 유예(猶豫)하고 유보(留保)하는 것이라니!


그러나, 한 가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것이 있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레고르가 인간으로서 살았으며, 인간으로서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모습이 변했어도,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과 가족의 마음이 변한 그 이후에도, 죽는 순간까지도 “감동과 사랑으로써 식구들을 회상”10)했던 그는 결코 변한 적이 없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다. 불변(不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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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역, 『변신·시골의사』, 서울:민음사, 2018, 12.

2)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11.

3)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17.

4)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28.

5)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58.

6)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41.

7)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66.

8)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70-71.

9)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70.

10) 프란츠 카프카, 위의 책,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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