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응애~!응애~!
빨리 탯줄 자르세요!
"잠시만요 아버님, 아이 손가락 발가락부터 확인해 볼게요"
2015년 1월 3일 낮 11시, 도윤이는 겨울밤에 내리는 눈처럼 가볍게 우리에게 왔다. 지금이야 도윤이지만 당시에는 이름도 없었다. 그저 자그마한 몸 하나에 탯줄 하나로 내 눈앞에 있던 아기는 어떻게 만져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안아야 할지도 몰랐다. 흔한 노랫가사 처럼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는 출산에 대한 기쁨보다는 내 아내가 이제 임신 기간을 끝냈구나라는 것에 대한 기쁨이 더 컸다. 아직 우리의 아기라는 것도 잘 몰랐으며 아빠가 된 느낌도 없었다. 그저 새 생명이 우리에게 왔고 내 인생 최대의 미션이 시작된 것이구나 하는 마음뿐이었다. 아빠가 되면 아이가 자신의 손가락을 잡을 때 부성애가 생긴다는데, 개뿔 그딴 거 없었다. 그냥 내 눈에 떨어진 나의 미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느낌이었다. 초조했고, 걱정이 앞섰다. 마냥 기뻐하기에는 눈 앞이 깜깜했고 이제 이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라는 생각 만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생각이 무의미해지도록 병원은 발 빠르게 나와 아기를 분리시켰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기가 격리되었고 아내와 나는 회복을 하기 위해 병실에 들어갔다. 씁쓸한 피 냄새가 잔잔하게 흐르던 내 아내 앞에서, 공포 마케팅을 대놓고 하는 의사 앞에 꼼꼼한 성격을 드러내긴 내가 소심했던 탓일까. 가장 좋은 영양제를 놔달라고 말하고 조용히 쉬고 있는 아내 옆에서 앞으로 남편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구글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탁한 병원의 공기를 마시며 문득 아이가 마시는 공기는 어떨까 궁금했고 자그마한 아내의 손목을 보며 대견스럽게 바라봤다. 물로 아내는 그런 내 눈빛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마무리한 장인의 얼굴로 조용히 쌕쌕 거리며 자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직은 추운 바람에 짜증이 나더라도 새로운 교실, 새로운 학우들과 선생님을 볼 기대에 짐짓 상기되는 것처럼 당장 육아의 커다란 벽을 알고 있음에도 새로운 나의 삶과 아기로 인해 달라질 내 모습이 짐짓 상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