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처음’이 많은 중학교 시절, 현실 너머의 도피처를 찾아서
아들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빠가 가장 설레었던 건 뜻밖에도 ‘교복’이었단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입던 평상복을 벗어 던지고, 멋진 어른처럼 정장을 차려입는다는 사실은 아빠 마음을 설레게 했지. 당시 아빠는 드라마나 만화 속 주인공들이 멋지게 수트를 갖춰 입은 모습에 묘한 동경을 품고 있었거든. 교복점에 가서 치수를 재고 나만을 위한 옷을 맞추는 그 과정은, 마치 아빠가 진짜 ‘어른의 세계’로 한 발짝 들여놓는 의식처럼 느껴졌단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어. 네 할머니는 아빠가 앞으로 훌쩍 더 클 거라는 기대 섞인 확신으로 교복을 아주 넉넉하게, 음.. 좀 거대하게 맞추셨지. 덕분에 빳빳한 새 교복을 입은 아빠의 모습은 멋진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헐렁한 포대기를 뒤집어쓴 허수아비 같았단다. 소매는 손등을 덮고 바지 밑단은 끈도 정리되지 않은 운동화 위에 볼품 없이 쌓여있었지. 하지만 아빠는 그게 불만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했단다. 아빠 위로 고모들뿐이라 교복을 물려받아 입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당시 중랑구에 특히 아빠가 다니던 곳은 그리 넉넉한 동네가 아니어서, 형이나 선배에게 물려받은 낡고 번들거리는 교복을 입는 친구들이 꽤 많았어. 요즘 아이들이 아파트 브랜드나 부모님의 차종으로 은근한 계급을 나눈다지만, 그때도 비슷했단다. ‘스마트’, ‘엘리트’, ‘아이비클럽’ 같은 교복 브랜드가 있었는데, 단추에 박힌 로고나 박음질 같은 걸로 서로를 평가하곤 했지. 돌이켜보면 세상은 참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로 서로를 줄 세우려 하니까 말이야.
아빠가 나중에서야 대학에 가고 정말 크게 느꼈던 건데 아빠 어린 시절 친구들 중엔 정말 가난했던 친구들이 많았단다. 반 지하에 방 1칸, 거실 1칸 짜리 집에 살면서 가족 4명이 사는 곳도 있었고 반 지하는 아니어도 단독 주택 1층에 어두운 곳 방 2칸짜리 집에서 사는 친구들도 많았지. 그때는 전혀 위화감이 없었는데 나중에 조금 더 철이 들고 나서야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왔구나라는 걸 실감했단다.
첫 등교일, 아빠는 그 큰 교복을 펄럭이며 버스에서 내렸는데, 예전부터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다녔던 익숙한 사람이 있었어. 하필이면 그 날 같은 버스를 타서 함께 내렸는데 아빠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선배한테는 다 인사해야 하는 줄 알고 냅다 인사를 건넸단다. “안녕하세요!” 하고 말이야. 인사를 받은 그 사람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어.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지만, 그만큼 아빠에게 중학교라는 세계는 잘 보이고 싶고, 한편으론 두려운 미지의 공간이었단다.
아빠의 중학교는 산 중턱에 있어서 오르막길이 정말 가파랐어. 갑자기 늘어난 교과서와 참고서에 가방은 무겁기만 했고, 그 비탈길을 낑낑대며 오르던 등교 첫날의 그 땀 냄새와 숨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구나.
중학교 시절 아빠의 세계관을 가장 크게 확장해 준 조력자는 다름 아닌 네 큰 고모였단다. 고모 덕분에 (당시 주변 환경에 비해) 빨리 개인용 PC를 가질 수 있었고, 당시에 인터넷은 아니지만 통신을 할 수 있었지. 그래서 남들보단 조금 더 살짝 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렸어. MS-DOS의 검은 화면 위로 흰 글자들이 흐르던 시절, 윈도우 3.1의 푸른 배경화면은 아빠에게 신세계나 다름없었지. 카드놀이와 지뢰찾기 같은 단순한 게임들이 아빠에겐 최고의 타임머신이었단다. M-DIR이라는 프로그램을 쓰면서 그냥 명령어를 쳐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어. 기본적으로 설치되었던 DOS용 게임도 아빠에겐 신세계였단다.
특히 윈도우 3.1에서 95로 운영체제가 넘어갔을 때, 스피커를 뚫고 나오던 그 웅장한 시작음과 배경화면은 아직도 아빠 가슴을 설레게 해. 그래서 유튜브 재생목록에 아직도 저장되어 있단다. 아빠는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컴퓨터 앞에 앉아 기본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눌러보곤 했어. 그러다 지겨워지면 본체를 뜯어내어 내부를 들여다봤지. 당시에는 실물 점퍼를 손으로 옮겨 끼우며 ‘오버클러킹’을 시도하던 그 시대라서 부품들 구성도 잘 살펴봐야 했고 점퍼 셋팅만으로도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따로 공부하기도 하고 했어.그래서 CPU, RAM, 하드디스크, ODD 같은 부품들을 뺐다 끼웠다 하며 재조립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단다. 너 A 드라이브 모르지? 하하
게임을 하나 실행하기 위해서도 지독한 인내가 필요했어. config.sys 파일에 himem.sys를 로드하고, emm386을 설정해 기본 메모리를 확보해야 했고 게임 음악이 안 나와서 배치파일을 만들고 먼저 사운드 드라이버를 로드한 다음 실행 될 수 있게 만드는 걸 통신 커뮤니티에서 배우곤 했지. 어쩌면 우리 같은 아빠 세대가 지금의 디지털 세상을 지탱하는 중추가 된 건, 이처럼 기계를 몸으로 부딪치며 익혔던 경험 덕분인지도 몰라.
당시엔 다나와 같은 쇼핑몰이 없어서 ‘PC월드’나 ‘마이컴’ 같은 잡지 뒷장에 실린 부품 가격표를 보며 용돈을 어떻게 모을지 밤낮으로 고민하곤 했어. 한 번은 컴퓨터 잡지에 정성껏 사연을 써서 보냈는데, 운 좋게 당첨되어 ‘세이비지 S3 그래픽 카드’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단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아빠는 이제 내 컴퓨터에서도 화려한 3D 게임이 돌아가겠구나 싶어 가슴이 벅차올랐어. 하지만 막상 써보니 아빠의 취향은 정교한 2D 도트 그래픽에 더 끌리더구나. 기술의 발전보다 그 안에 담긴 정서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
이 무렵 ‘삐삐’라고 부르는 무선 호출기가 보급되기 시작했어. 아빠는 가지지 못했지만, 공중전화 부스 앞에 친구들의 삐삐에 숫자로 메시지를 남기던 풍경들. 8282(빨리빨리), 1004(천사) 같은 숫자로 마음을 전하던 그 시절은, 지금의 광속 인터넷보다 훨씬 느렸지만 그만큼 진심의 무게는 더 묵직했단다.
중학교 시절의 문화적 풍요로움은 아빠의 감성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빚어놓았단다. 지금은 거리에서 사라진 음반 가게들이 그때는 동네마다 있었어. 가게 밖 스피커에선 서태지와 아이들, 전람회, 패닉의 음악이 쉼 없이 흘러나왔지.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검열 때문에 가사를 통째로 날리고 연주곡으로만 발표되었을 때, 어린 아빠는 ‘예술이 세상의 통제에 맞설 수 있구나’ 하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
9시 뉴스에 룰라의 표절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던 것도 기억나는구나. 큰 고모 덕분에 아빠는 원곡인 일본 음악들을 미리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 사건은 일본 문화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때로는 음성적으로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었지. 당시엔 일본 문화가 개방되었음에도, 정식 발매까진 이어지지 못해서 ‘백업 시디’라고 불리는 불법 복제 CD를 구하기 위해 용산 전자상가로 가기도 했단다. 당시엔 용산이 굉장히 무서운 동네로 인식되어서 여러 명이 몰려서 한 번에 다녀오곤 했어. 그래서 어른들이 지나가다 '백업?' 하고 스쳐지나가면 그 아저씨를 따라가서 터미널 1층이나 선인 상가에서 거래하는 게 국룰이었어.
부끄러운 과거지만, 당시 우리 세대에게 용산은 ‘오타쿠의 성지’이자 금지된 과일을 파는 에덴동산 같았어. 지브리의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같은 애니메이션과 ‘에반게리온’ TV판 비디오테이프는 아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보물이었지. 일부 티비 방영을 했던 그랑죠, 그리고 사이버 포뮬러는 등교하면 항상 아이들에게 최고의 화재거리였고 티비 방영을 하진 않았지만 에반게리온은 충격 그 자체였어. 당시엔 건담 같은 로봇이 주류였는데 뭔가 색다른 로봇 디자인과 조금 난해한 철학적 메시지. 그 오프닝 곡을 흥얼거리며 J-POP을 듣는 것은 왠지 모를 문화적 우월감을 주기도 했단다.
그때부터 우리 사이에서는 ‘오타쿠’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어. 아빠는 비록 언어 공부에 재능이 없었지만, 열정적인 친구들은 만화와 게임을 즐기기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를 깨우치기도 했지. ‘파이널 판타지’나 ‘드래곤 퀘스트’ 같은 명작 게임들이 한국어 자막 없이 일본어나 영어로만 발매되던 시절이었거든. 아빠는 그 친구들처럼 공부하는 대신,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 강제로 텍스트를 번역하는 기술적인 해결법을 찾곤 했어.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게 말이야.
친구네 집에 옹기종기 모여 ‘에반게리온’을 보다가 통금 시간이 지나 할머니께 꾸지람을 듣던 밤들, PC방이라는 공간이 처음 생겨나며 ‘스타크래프트’의 멀티플레이를 통해 생전 처음 보는 타인과 연결되던 신기함.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큰 고모와 함께 고심하며 음반을 고르던 순간들. 그 모든 조각이 아빠의 상상력을 확장해주었단다. 1999년 12월 31일, 밀레니엄 버그(Y2K)로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세기말의 막연한 불안과 설렘이 뒤섞인 그 독특한 공기는 아빠의 사춘기를 관통하는 가장 짙은 색깔이었단다.
무엇보다 중학교 시절 아빠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건, 비로소 ‘함께하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점이야. 초등학교 시절 망우리 고개를 홀로 넘으며 느꼈던 그 지독한 고독에서 벗어나, 이제는 동네에서 버스를 같이 타고 등하교하는 ‘동료’들이 생겼거든. 학교가 끝나고 마음 편히 만나 떡볶이를 먹고, 주말이면 친구 집에 모여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빠에겐 꿈만 같았어. 그래서 아빠는 그 인연들에 유독 깊이 마음을 기대었단다.
학교 답사 날 처음으로 아빠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친구 ‘A’. 그 친구의 이름은 당시 대통령의 이름과 같아서 우리는 늘 그 이름으로 짓궂게 놀리곤 했지. 왜 그렇게 소중했던 친구와 멀어지게 되었는지 이제는 이유조차 희미하지만, 흔하디흔한 이름 탓에 다시 찾을 길이 없다는 게 가끔은 마음 한구석을 아쉽게 만든단다. 같이 삼국지를 하며 역사책까지 읽고 토론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아빠의 사춘기 한복판을 흔들었던 첫사랑은 흔히 말하는 ‘노는 아이’였지만 그 강렬한 카리스마와 눈빛은 아빠의 유년기에 잊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지.
당시 아빠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빠는 키가 아주 작았단다. 여자애들이 아빠보다 큰 경우가 많아서 늘 기가 죽어 살곤 했어.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험악한 친구들도 생겨났지. 다행히 아빠는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몰려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어른들의 세계를 흉내 내는 모습은 아빠에게 또 다른 긴장감을 주었어. 아빠는 그들의 거친 세계보다는 방 안에서 고모들과 음악을 듣고, 만화를 보고, 게임에 몰입하는 ‘오타쿠스러운’ 삶에서 더 큰 안식을 찾았단다.
놀랍게도 아빠가 중학교 때 즐겼던 그 문화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을 호령하고 있어. ‘에반게리온’은 몇년 전 극장판으로 리메이크되어 전설을 이어갔고, ‘파이널 판타지’와 ‘영웅전설’, ‘창세기전’ 같은 게임들은 바로 지금 최신 기술로 다시 태어나고 있지. 우리가 듣던 윤상의 ‘달리기’나 카니발의 ‘거위의 꿈’은 여전히 너희 세대에게도 불릴 것 같다. 그만큼 90년대 말의 문화적 에너지는 강력했고,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아빠의 중학교 시절은 비록 찌질했을지언정 더없이 풍요로운 시기였단다.
그렇게 세기말의 혼란과 성장의 통증 속에서 중학교 졸업을 앞두었을 때, 아빠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단다. 함께 버스를 타고 꿈을 나누던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 ‘공업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거든. 아빠는 그 소중한 관계를 잃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어. 게다가 아빠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미쳐 있었으니, 공고에 가서 기술을 배운다는 건 명분으로도 완벽해 보였지.
하지만 네 할머니와 고모들은 거세게 반대하셨어. 당시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가는 것이 정석이었고, 고모들은 아빠가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바라셨지. 그때는 가족들의 반대가 너무나 원망스러웠어. 친구들과 떨어져 낯선 인문계 고등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들아, 마흔이 되어 돌아보니 인생은 때때로 우리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갈 때 예기치 못한 선물을 건네주더구나. 만약 그때 아빠가 고집대로 공고에 갔다면, 아빠는 지금처럼 코드를 짜고 기술을 탐구하면서도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는 정서적 여유를 갖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 길은 그 길대로 가치가 있었겠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고단했던 수능 레이스와 대학 생활이 지금의 아빠를 더 단단하게 빚어준 건 사실이란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로와 같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굽이진 길들이 결국 가장 옳은 목적지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단다. 그러니 너도 네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마렴. 그 길이 너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오직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는 축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