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렴
아이들이 사라진 놀이터에서 너를 보며
아들아, 요즘 세상은 온통 '저출산' 이야기로 떠들썩하구나. 사람들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 인구가 소멸해가는 국가. 그런 거창한 담론들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아빠는 네 곁에서 그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단다. 아빠에게 넌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자식이지만, 가끔은 네가 외동으로 자라는 것이 아빠의 능력이 부족해서였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어. 사실 아빠도 네 동생을 더 보고 싶었지만 우리가 처한 여건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단다.
아빠가 네 나이였던 80년대와 90년대는 참 달랐어. 그때는 학교에 오전 반 / 오후 반이 따로 있었단다. 교실 하나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을 나눠 수업을 들어야 했지. 한 학년에 10반이 넘는 건 기본이었고, 새 학년이 되어 반이 바뀌면 같은 학교를 다녔어도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이 수두룩했어. 그때는 학교가 끝나고 놀이터에 나가면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아이들로 가득했단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숨을 곳이 모자랄 정도였지.
그런데 지금 네가 노는 놀이터는 어떤지 아빠는 잘 안다. 횡한 모래밭이나 우레탄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인 그네. 아빠가 함께 놀아주지 않으면 너는 혼자 흙장난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봐야 했지. 키즈카페에 가야 겨우 또래들을 만날 수 있는 현실을 보며 아빠는 참 마음이 아팠어. 네 세계가 너무 좁은 건 아닐까, 네가 외롭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아빠는 회사에서 아빠보다 어린 사원들이나 후배들에게 자주 물어보곤 했어. "왜 다들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거니?" 그들의 대답은 대체로 비슷했단다. 결혼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거대한 부담감, 내 삶을 온전히 지켜내기에도 벅찬 경제적 현실 그리고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 아빠는 그들의 말을 일견 이해하면서도 세상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더구나. 아들아, 세상은 생각보다 느리게 변한단다. 네가 커서 결혼을 고민할 때쯤엔 아빠의 이야기가 케케묵은 옛날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아빠가 겪은 결혼의 '진짜 얼굴'을 미리 들려주고 싶구나.
일단 이 근본적인 질문부터 짚고 넘어가자. "아빠, 그래서 결혼은 하면 좋은 거야?" 아빠의 대답은 명확하단다. "단연코 그렇다"야. 아이를 낳고 기르는 기쁨은 논외로 하더라도,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인간의 삶에 주는 실질적인 이득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단다.
첫 번째는 영혼의 안식처가 주는 ‘안정감’이란다.
아빠도 젊은 시절, 자격지심에 쫓기고 외로움에 휘둘리며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방황도 해봤어.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맞이하는 아침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계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그 공기부터가 다르단다. 어제 있었던 사소한 고민을 털어놓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함께 그려볼 수 있는 반려자가 곁에 있다는 것. 그 존재만으로도 내일이라는 미지의 시간이 두렵지 않게 느껴진단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비난해도 나를 믿어줄 단 한 사람이 내 집에 있다는 확신, 그것이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네 배를 지탱해주는 가장 무거운 닻이 될 거야.
두 번째는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적 이득’이야.
연애 초기에는 밖에서 근사한 식당을 찾아야 하고, 영화 한 편을 봐도, 여행 한 번을 가도 대략 돈십만원 정도의 지출이 발생한단다. 물론 결혼 후에도 소비 성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집에서 함께 끓여 먹는 라면 한 그릇이나 소박한 된장찌개는 밖에서 사 먹는 어떤 성찬보다 경제적이고 따뜻하지. 굳이 멋진 옷을 입고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거실 소파에서 함께 넷플릭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 된단다. 결혼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통합하고 관리하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경제 공동체란다.
세 번째는 ‘시간의 효율성’이란다.
연애할 때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길 위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얼마나 많니? 전화를 붙잡고 몇 시간씩 목소리를 나누고, 주말마다 시간을 쪼개어 약속 장소로 달려가야 하지. 하지만 결혼은 그 모든 소모적인 과정을 단축해준단다. 한 공간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기에, 남는 시간을 네 커리어에 집중하거나 진정한 휴식에 사용할 수 있어.
결국 이 모든 건 네 삶의 '기회비용'을 늘려주는 행위란다. 결혼을 통해 얻는 정서적, 경제적 안정이 네가 20대와 30대라는 인생의 가장 황금기에 더 큰 꿈을 꾸고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되어줄 거야. 아빠는 아이가 있든 없든, 결혼은 그 자체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아들아,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어. 결혼은 장점이 많은 제도지만, 결코 ‘성스러운 목적’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단다. 많은 사람이 결혼을 인생의 목적지 중 하나로 착각하곤 해. 그래서 자신의 모든 인맥과 돈, 시간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단 한 번의 예식에 터뜨려버리지. 마치 화려한 폭죽놀이처럼 말이야.
일전에 TV에서 이혼한 사람이 다시 결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걸 본 적이 있어.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하고 함께 살고는 싶지만, 그 지긋지긋한 '결혼식'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고. 그 말에 아빠는 깊이 공감했단다. 수천 장의 청첩장을 보내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화려한 호텔 예식장을 빌리고, 한 번 입고 말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에 수백만 원을 쓰는 행위. 과연 그것이 행복한 부부 생활의 본질일까?
과거에는 결혼이 집안끼리의 '품앗이' 성격이 강했어. 낸 만큼 거둬들여야 한다는 경제적 논리가 지배했지. 그래서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억지로 소식을 전하고 세를 과시했단다. 사람들은 그만큼 예식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 예식이 화려할수록 행복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그러다 보니 성격이 맞지 않아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남들의 시선과 그날의 화려했던 맹세에 갇혀 아등바등 불행을 견디며 살아가는 부부들이 너무나 많단다.
너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결혼식은 네가 두 번을 하든 세 번을 하든 진심으로 너를 응원해줄 수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축하받으면 된단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 맹세하는 데 어울리는 단정한 옷 한 벌 그리고 진심 어린 축하에 어울리는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 그거면 충분해. 여차하면 가족끼리만 조촐하게 약속을 나눠도 좋단다. 결혼을 '성역'의 영역에 두지 마렴. 그것은 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네 영혼을 억압하는 쇠사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이 성역이 아니라면 당연히 '헤어짐' 또한 금기가 되어서는 안 된단다. 물론 이별은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해.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여정 끝에 어차피 죽음이 우리를 강제로 갈라놓을 텐데 살아생전 서로의 행복을 위해 갈라서는 것이 왜 불가능하겠니? 평생을 한 사람과 뜨겁게 사랑하며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겠지만 만약 그 과정에서 서로의 영혼이 파괴되고 있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야.
단, 그 헤어짐은 반드시 '단둘만의 고민과 결단'으로 이루어져야 한단다. 아빠가 앞선 글에서 비극적으로 고백했듯이, 제3자가 끼어들거나 외부의 압력에 의해 결정되는 이별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슬픔과 트라우마를 남긴단다. 남들의 이목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것도 누군가의 부추김에 의해 헤어지는 것도 모두 비극이야. 너와 네 반려자가 깊이 대화하고, 서로의 미래를 위해 내리는 결정이라면 아빠는 그 어떤 선택이라도 존중하고 응원할 거다. 이별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또 다른 문일 뿐이니까.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오묘하고 어렵단다.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수백 명 앞에서 맹세해도, 막상 2~3년만 같이 살아보면 그 맹세가 무색해질 만큼 사소한 일로 부딪히게 되지. 아빠에게 친구들이 가끔 물어본단다. "결혼할 때 '이 사람이다' 싶은 운명적인 느낌이 있었나요?"라고.
솔직히 말하면, 아빠도 처음엔 그런 거 없었어. 하지만 네 엄마와 시간을 보내며 점차 알게 되었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요즘 너도 보듯이 아빠와 엄마는 자주 다툰단다. 집안일은 누가 더 많이 하는지, 말투는 왜 그런지, 사소한 생활 습관 하나하나가 전쟁터가 되기도 해. 네가 더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싸웠었지.
그런데 아들아, 아빠와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 아주 잠깐 같이 살았던 적이 있었어. 신기한 건, 그때는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거야.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그저 신기하고 좋아서 삐지는 일조차 없었지. 아빠는 그 1년의 평화로운 기억을 믿고 결혼을 결심했단다. 물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현실의 무게가 얹어지니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그때의 그 단단했던 신뢰가 있었기에 지금의 풍파를 견디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래서 아빠는 '혼전 동거'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편이란다. 누군가는 "아들 가진 부모니까 편하게 말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야. 24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생활 습관을 확인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것. 그 시기에조차 서로 싸우지 않고 맞추어 나갈 수 있다면, 그 관계는 비로소 '결혼'이라는 험난한 항해를 시작할 자격이 주어지는 거라 생각한다.
아들아, 네 엄마와 아빠도 살면서 이혼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던 위태로운 순간들이 있었단다. 너무 사랑해서 만났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모습에 절망하기도 했지.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이 가정을 지키고 있는 건, 서로의 '부재'가 주는 공포를 알았기 때문이야.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의 물리적 이별을 겪어야 했어. 집 계약 문제로 6개월 정도 떨어져 산 적도 있고, 아빠 회사가 투자를 받아서 3개월간 수도권 생활을 한 적도 있었지. 신기하게도 떨어져 지내보니 알겠더구나. 상대에 대한 분노보다, 저녁 무렵 거실에 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주는 허전함이 훨씬 더 크다는 걸 말이야.
아빠가 엄마에게 용서를 빌고 다시 손을 잡았던 건, 그 허전함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어. 만약 너도 나중에 반려자와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에 직면한다면, 당장 이별을 선언하기보다 한두 달 정도 '의도적인 거리'를 두어 보길 권한다. 떨어져서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볼 때, 비로소 상대가 내 삶에서 차지했던 진짜 무게가 드러나게 된단다.
결론은 거의 이별 이야기로 끝이 났구나. 그만큼 결혼은 이별이 존재하지 않는 성역이 아니라는 뜻이야. 마무리를 잘해야 하는 삶의 중요한 관문일 뿐이지. 결혼을 너무 무겁고 신성하게만 생각해서 주저하지 말렴. 너와 맞는 짝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살아보며 너만의 작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보길 바란다.
아빠는 네가 누군가의 반려자이 되어 그 책임감 속에서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구나. 그 길에 폭풍우가 몰아치면 아빠가 언제든 네 등 뒤에서 든든한 등대가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