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친구라는 존재

친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금 없다고 초조할 필요는 없단다.


발 크기만큼 넓어지는 너의 세계


아들아, 요즘 들어 네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것 같구나. 엊그제 자고 있는 너의 발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문득 그 발이 참 많이도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어. 발 크기만큼이나 네가 살아가는 세계도 쑥쑥 넓어지고 있더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의 우주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친척들이 전부였지. 네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도 대부분 아빠가 아는 얼굴들이었어. 그런데 이제는 아빠가 모르는 낯선 친구들의 이름이 네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구나. TV 속 뽀로로와 타요가 너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시절부터, 유치원에서 처음 만난 짝꿍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해 사귄 새로운 친구들까지. 네가 만나는 인연들은 계속해서 변하고 넓어지겠지.


image.png


아빠는 가끔 자는 너의 발을 보며 혼자 웃곤 한단다. 이제 너는 아빠의 품을 벗어나, 아빠가 모르는 너만의 세계를 친구들과 함께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구나 싶어서 말이야. 그 걸음걸음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조금 서운하기도 한 복잡미묘한 감정이 든단다.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달콤한 거짓말


아들아, 아빠는 만약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단 하나의 정의를 바꿀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친구’에 대한 정의를 바로잡고 싶단다. 학교에서는 늘 가르치지.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혹은 "우리는 모두 친구다"라고. 하지만 아빠의 생각은 조금 다르단다.


냉정하게 말해서, 너희 반에 있는 모든 아이가 네 친구는 아니야. 그들은 그저 같은 해에 태어나, 우연히 같은 공간에 배정된 '반 아이들'일 뿐이란다. 친구란 그중에서도 너와 마음이 통하고 서로를 아끼는 소수의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야. 그런데 학교는 왜 굳이 성향도, 관심사도 다른 모든 아이에게 '친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모두와 친하게 지내라고 강요하는 걸까?


image.png


물론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지낼 수는 없어. 때로는 나와 맞지 않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도 어울려야 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하지. 하지만 그건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적대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는 수준이면 충분하단다. 굳이 억지로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마음에도 없는 호의를 베풀 필요는 없다는 거야.


모두와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곤 해.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다 보니 서로 다른 두 아이가 만나 불필요한 다툼이 생기고, 감정 소모적인 트러블이 만들어지기도 하지. 아빠는 가끔 학교가 선생님들의 통제 편의성을 위해 혹은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교실 분위기를 위해 아이들에게 '모두 친구'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단다.


친구, 동무, 그리고 동료의 구분


아빠는 예전에 네가 다녔던 유치원에서 친구와 그냥 알고 지내는 아이를 구분해서 가르치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지. 북한 때문에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만, 그냥 알고 지내는 또래는 '동무', 마음을 나누는 사이는 '친구'로 구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아직 너에게 '동료'라는 개념까지는 좀 이르지만 사회에 나가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동료'로 부르게 되겠지.


아들아, 부디 모두와 친해지려고 애쓰지 말거라. 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단다. 너와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수의 친구에게 그 에너지를 집중하렴. 그것만으로도 너의 학창 시절은 충분히 풍요롭고 따뜻할 거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친구’의 의미


그렇다면 도대체 친구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주변 동년배 무리를 친구라고 부르지만 그 의미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고 생각한단다.


아빠가 어릴 적, 그러니까 80~90년대만 해도 '친구'는 곧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를 의미했어. 한 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자라는 경우가 많았고 삶의 수준이나 궤적도 대부분 비슷했지. 이사도 잦지 않아서 아빠만 해도 아파트 동 전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살았을 정도니까.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자란 그들은 때로는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를 맺곤 했단다. 그러니 '영원한 친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성립될 수 있었지.


중·고등학교 시절 만난 친구들이 오래가는 이유도 비슷해. 성적이 비슷하거나, 취미나 성격이 맞는 또래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고 같은 선생님 아래 같은 교실에서 온종일 붙어 지내며 수많은 공감대를 만들어가거든. 철없던 시절의 치기 어린 에피소드들을 공유하고 그때의 세상이 전부라고 믿으며 함께 울고 웃었던 그 시간들이 그들을 단단한 '친구'로 묶어주는 거야.


image.png


달라진 세상, 멀어지는 관계들


하지만 아들아, 지금은 세상이 변했어. 물론 지금도 영원한 친구는 존재하지만, 그건 이제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행운'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해.


이제는 바로 옆집에 살아도 소득 수준이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취미와 관심사는 셀 수 없이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언제든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사를 떠나는 게 일상이 되었지. 학창 시절까지는 그래도 비슷한 영역을 공유하며 친구를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사회에 나와서도 그 관계가 예전처럼 유지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단다.


image.png


결국 사회라는 정글에 발을 들이는 순간 친구 관계는 수많은 변수 앞에 놓이게 된단다. 소득 수준의 차이, 결혼 유무,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사는 지역이나 취미까지… 이 모든 환경의 변화가 친구 관계를 지속할 수도, 혹은 끝낼 수도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버리지.


아빠에게도 고등학교 시절 정말 평생 함께할 것 같았던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가 있었어. 하지만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삶의 궤적이 달라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만나도 대화의 핀트가 계속 어긋나더구나. 예를 들어 아빠는 결혼해서 아이 기저귀 값 걱정을 하고 있는데 친구는 여전히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연애 상담을 해온다면 어떻겠니? 대화의 주제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너무 커져서 결국 만남 자체가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이 오게 된단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지만, 모두가 외로운 시대


그래서 아빠는 요즘 현대인들이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게 아닐까 생각해. SNS로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같지만 정작 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깊은 관계는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 친구를 사귀는 것도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내보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아빠도 한때는 이 외로움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 하지만 이 관계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단다. 영원한 친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대신 내 삶의 가장 확실한 단짝인 네 엄마와 너와의 시간을 더 늘리고 아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지.


image.png


외로움을 부정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삼으려 노력했어. 내가 왜 혼자 있는지 그 이유를 직시하고, 혼자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취미나 활동을 찾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알게 되었지. 물론 아빠도 여전히 외로움과 싸우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이제는 그 외로움이 두렵지만은 않단다.


'친구'라는 단어의 무게를 내려놓으렴


아들아, 그러니 '친구'라는 단어에 너무 연연하지 말거라. 꼭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동네 친구가 아니어도 초중고 동창이 아니어도 괜찮아. 언제 어느 때건 네가 외로울 때 네 옆에 있어 주고 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네 친구란다.


지금은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도 많아. 아빠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당근마켓'의 동네 모임 서비스나 '소모임', '1km' 같은 앱들이 성행하고 있지.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아마 취향이나 관심사가 훨씬 더 세분화된 관계 맺기 서비스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구나. 그러니 관계에 대해 너무 조급해하지 마렴. 너만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면 세상에는 너와 친구가 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단다.


인생은 독고다이? 하지만 홀로 살 순 없다


하지만 아들아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은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단다. 아빠가 지금까지 '인생은 결국 혼자다'라고 목청 높여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연을 가볍게 여기거나 세상을 등지고 살라는 뜻은 절대 아니야.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이유도, 아까 말한 '적당한 거리'라는 애매한 줄타기를 하는 이유도, 결국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함이야. 네가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일, 심지어 돈을 버는 행위조차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기술, 이른바 '처세술'은 아빠에게도 여전히 가장 어려운 숙제란다. 아빠가 보기에 이 처세술의 달인들은 성격적으로 구김살이 없고, 결핍이 느껴지지 않는 한마디로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인 것 같아. 그런 면에서 아빠는 가끔 네 엄마가 정말 신기해.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굳이 살갑게 대하거나 먼저 친절을 베푸는 스타일이 아니잖아? 그런데도 이상하게 엄마 주변엔 늘 사람이 몰리더구나. 정작 본인은 사람들이 귀찮다며 전화를 안 받거나 문자를 씹어버리기 일쑤인데도 말이야.


아빠는 그런 엄마가 정말 부러웠어. 아빠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살뜰히 챙겨줘도 그 인연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내가 성격에 문제가 있나?", "내가 매력이 없나?" 하고 자책하기도 했지. 그래서 늘 주변에 사람이 많고, 쉽게 대화를 나누고, 호감을 사는 엄마가 부러웠던 거야.


엄마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특징이 있는 걸까? 아빠는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했어.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지. 엄마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이라는 거야. "네가 아니어도 난 괜찮아. 내 주변엔 이미 좋은 사람이 많고, 나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워." 엄마는 이런 태도를 온몸으로 풍기고 다닌단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나랑 친해지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라는 식의 쿨한 태도가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되는 거지. 역설적이게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이는 거야.


이런 사람이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아. 높은 자존감은 기본이고, 타인을 깔보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이 필요하거든. 아빠는 네가 그런 네 엄마를 많이 닮았으면 좋겠어. 관계에 목매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 말이야.


연락처는 그저 숫자일 뿐, 내면을 가꾸는 힘


아빠도 한때는 인연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어. 스타트업을 할 때, "내가 이만큼 발이 넓다"는 걸 과시하고 싶어서 명함을 받을 때마다 악착같이 연락처를 저장하고 관계를 트려 애썼지. 한때 아빠 폰에는 1,500명이 넘는 연락처가 있었고, 블로그나 트위터 팔로워 수에 집착하며 매일 숫자를 확인하곤 했어.


하지만 아들아, 그저 한두 번 스쳐 지나간 인연은 네 진짜 인연이 아니란다. 폰에 저장된 연락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건 그저 메신저 친구 목록의 스크롤만 늘릴 뿐 네 삶에 실질적인 온기를 더해주지는 못해. 지금 아빠의 개인 폰에는 연락처가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단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연락도 안 하는 사람들을 다 지우고 나니 정말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만 남더구나.


아빠가 앞서 '자격지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강조했듯이, 너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면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렴. 그럼 자연스럽게 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 거야. 아빠도 너를 통해 자격지심을 걷어내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짜 친구 몇 명이 생겼단다. 1,500명의 연락처가 있었던 시절보다, 지금의 그 몇 명과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더 충만하고 따뜻하게 느껴져.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깊이란다.


아들아, 마지막으로 사람과 대화할 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구나. 아빠도 수많은 대화와 관계의 실패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것들이야.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은 결코 타인과 깊이 친해질 수 없단다.


첫 번째는 남 이야기를 쉽게 하는 습관이란다. 그것이 칭찬이라도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선 조심해야 하고 비난이라면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 말렴. 세상의 모든 말은 돌고 돌아 결국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 이때 칭찬은 바람결에 흩어지는 속삭임처럼 들리지만, 비난은 귀청을 때리는 천둥처럼 크게 들리는 법이란다. 가끔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가족이나 지인의 실수담이나 창피한 기억을 웃음거리로 삼는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그건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주고 결국 네 인격만 깎아먹는 행동이란다. 절대로 타인을 네 대화의 안주거리로 삼지 말거라.


두 번째는 상대의 말을 끊는 행위란다. 가급적이면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심을 가지렴. 특히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문맥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더더욱 기다림이 필요해. 아빠도 처음엔 이게 참 힘들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 그걸 참는 게 고역이었지. 그런데 '그냥 듣는 것'과 '집중해서 듣는 것'은 다르더구나. 상대의 눈을 맞추고 온전히 집중해서 끝까지 들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진짜 하고 싶은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해. 그러니 아들아, 부디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되렴. 아빠도 여전히 잘 못하는 부분이지만, 우리 같이 노력해보지 않을래?


두 번째는 말에 쉼표를 달고 위트 있게 하렴. 말을 할 때 의식적으로 쉼표를 찍어주렴.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나 혼자 쉼 없이 떠드는 건 대화가 아니라 웅변일 뿐이란다.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잠시 멈추고,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지루해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지 확인해보렴. 만약 상대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면, 과감하게 화제를 돌리거나 대화를 마무리하는 센스도 필요해. 그리고 대화에 유머와 위트를 섞는 연습을 해보렴. 항상 진지하기만 한 사람은 재미가 없잖아? 적절한 비유나 위트는 대화의 윤활유가 되고, 네 메시지를 더 깊이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단다.


예를 들어 누군가 "어떤 버섯이 먹을 수 있죠?"라고 물었을 때, "독버섯 빼고 다 먹을 수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건 정확하지만 건조하지.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물론입니다. 어떤 버섯이든 다 먹을 수 있죠. 다만, 어떤 버섯은 평생 딱 한 번밖에 먹을 수 없다는 점만 명심하세요.”


어떠니? 같은 내용이라도 훨씬 재치 있고 기억에 남지? 하지만 위트도 과하면 독이 된단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농담이나 비유는 오히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네 이미지만 깎아먹을 수 있어. 적절치 못한 비유로 곤욕을 치른 유명인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란다.


마치며: 너는 너만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


아들아, 인간관계는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단다. 잡초(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를 부지런히 뽑아내고, 좋은 씨앗(경청, 배려, 위트)을 심고 정성껏 물을 줘야 아름다운 꽃(깊은 관계)이 피어나는 법이지.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쳐 정원이 망가지기도 하고 애써 가꾼 꽃이 시들어버릴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실망하지 마렴.


다시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너만의 향기로운 정원이 완성될 테니까. 아빠는 네가 너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 애쓰기보다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네 안에 단단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때 그 향기를 맡고 좋은 나비들이 네 곁으로 날아들 거라 믿는다.


image.png



이전 12화인생. 돈의 무게와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