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두 세계의 충돌

행운아로써, 세상을 지켜보며 느낀 것들.


아빠가 사회생활을 하며 또 친구들을 만나며 참 많은 부부의 군상을 보아왔단다. 겉으로 보기엔 모두 화목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사정과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인 곳이 많더구나. 어떤 집은 경제적인 문제로, 어떤 집은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으로 또 어떤 집은 가치관의 차이로 매일이 살얼음판 같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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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빠는 감히 말하건대 세상의 수많은 남편 중 손꼽히는 수혜자란다. 이건 아빠가 잘나서가 아니라 순전히 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라는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이지. 두 분은 아빠를 사위가 아닌 아들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부족한 점이 많았던 아빠를 묵묵히 응원해 주셨어.


아빠도 처음엔 참 서툴렀어.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스스럼없이 지내다가도 처가댁만 가면 말수가 적어지고 몸이 굳었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거실 구석에서 '쭈구리'처럼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처가댁에 가면 여전히 조심스럽고 조금은 '쭈구리' 같지만 이제는 그 긴장감조차 편안한 일상이 되었단다.


그래서 아빠가 지금부터 해줄 이야기는 앞서 말했던 수 많은 아빠의 고통스러운 경험담보다는 아빠가 옆에서 지켜보며 "아, 저런 상황은 정말 힘들겠구나"라고 느꼈던 타인들의 사례와 아빠가 느낀 감사함이 주가 될 것 같구나. 이 이야기들이 너에게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길 바란다.


결혼 허락은 무릎 쥐와의 싸움


아직도 아빠는 네 엄마와의 결혼 과정이 머리 속에 다 기억이 난단다. 그만큼 긴장되었고 하루하루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청첩장, 예식 순서 같은 많은 결정 사항을 네 엄마와 상의할 때는 즐겁다가도 양가 부모님을 뵙거나 중요한 내용을 상의 드릴 땐 바짝 긴장하고 허락을 받았을 땐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지.


여담인데 처음에 인사를 드리려 대전에 갔을 때 아빠는 대전이 처음이었어. 사실 아빠는 서울 촌놈이고 지방도 제대로 된 도시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단다. 그래서 대전에 왔는데 뭐 광역시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삐까뻔쩍해서 놀랐다.


하여튼 처음 차를 타고 인사를 드리러 내려갔었어. 먼저 대전의 네 엄마 집에 들려서 준비를 하고 아빠가 네 외갓댁을 실제로 뵈었던 곳은 논산 어떤 고깃집이었단다. 첫 인사이니 아빠도 나름 차려입고 왔었는데, 하필 거기가 좌식 식당이어서 무릎을 꿇고 있었어. 사실 아빠는 고기를 잘 못 굽는 편이어서 고기를 구워야 한다는 긴장감에 있는데 네 할아버지가 직접 구우신다고 하셔서 감사하긴 했는데 죄송해서 고기가 입으로 가는지 코로가는지 몰랐단다. 다리는 저려와서 쥐가 찌릿찌릿 오면서 힘든데 또 처음부터 깨작깨작 먹는 모습을 보여드릴 순 없어서 팍팍 먹으려니 좀 힘들었어 하하하.


그렇게 자리가 끝나고 네 할아머지와 밖에 나와 맥심 커피 믹스를 마시며 아빠와 대화를 했는데 그땐 아빠가 흡연을 했을 때라 얼마나 담배를 피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하하 첫 번째 인사는 이렇게 끝났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는데 긴장이 탁 풀려서 차 안에서 늘어져서 운전을 하며 왔단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하는 장거리 운전도 처음이라 힘들기도해서 집에 오자마자 바로 씻고 잤었어.


아빠가 첫 대면에 보고 싶었던 건 바로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느낌이었단다. 한 가정이 살아오면서 결국 자식들은 모두 그 가정을 닮아가게 되지. 가부장적인 곳에서 살았던 사람은 고집이 쌘 편이거나 또 굉장히 순종적이거나 혹은 너무 공주님처럼 자랐거나 왕자님처럼 자랐거나 집안의 분위기는 결국 네가 살아갈 집안의 분위기가 된단다. 다행이 아빠는 너가 가장 잘 알다시피 유쾌하신 네 할아버지와 네 할머니 두 분의 느낌이 너무 좋았어. (물론 엄청 무서웠지만) 그냥 한 방향의 의견만 제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의견을 들어주셔서 지금도 감사하고 있단다. 그러니 너도 첫 인사를 갈 때 그 집안의 미묘한 기류를 잘 살펴보렴.


지금도 기억에 지워진 양 가의 첫 대면


상견례 자리는 시작과 끝 밖에 생각이 안난단다. 중간은 정신이 없었어서 뭔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광나루에 있는 한정식 집이었는데, 그때는 아빠도 센스라는게 없어서.... 그렇게 좋은 식당을 예약하지 못했어. 아직도 네 엄마한테 혼나는 부분이기도해. 광나루에 있던 중견 규모의 한정식 집이었는데 네 친할머니는 그 날을 잘 기억하고 있는데 아빠는 뭔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단다. 그 만큼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겠지. 하하


미리 고백을 하자면 아빠는 정말 여러가지 부분에서 운이 좋았단다. 행운이 있었지. 결혼을 할 때 남자와 여자가 많은 부분에서 의견을 조율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 조율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상견례 자리란다. 보통 결혼식장 지역을 여자 기준으로 하면 상견례는 남자에, 결혼식장을 남자에 맞추면 상견례는 여자에 맞추는데 이런 순서는 상견례 이후에도 계속 트러블로 오는 부부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분에서 아무래도 이미 고모를 결혼 시킨 아빠 쪽 보다는 첫 결혼인 네 엄마 쪽이 더 손님이 많을 것으로 예상해서 상견례는 서울에서 하고 결혼은 대전에서 하기로 했단다. 번 외로 결혼하고 설과 추석에 양가를 가는 순서로 싸우는 부부도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네 할머니 생신이 추석 전날이라 자연스럽게 설은 아빠 쪽을 먼저, 추석은 엄마 쪽을 먼저 가는 것도 순서가 잡힐 수 있었단다. 이렇게도 여러 행사에 있어서 순서는 운 좋게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이 부분에서 트러블은 없었어.


생각해보면 네 친 할아버지도 고집이 있었던 사람이라 서울 혹은 강릉에서 하자고 우기실까 걱정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네 고모가 먼저 결혼을 해서 다행이 네 할아버지도 아빠의 결혼 장소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아주 당연히 신부 측 의사에 맞추는데 동의를 했어. 하여튼 그래서 상견례를 서울에서 했는데 네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실 결혼을 좀 우려하셨던 분이었음에도 너도 알다시피 인품이 좋으신 분들이라 우리 부모님을 뵙고 서로 나쁜 이야기 없이 비교적 잘 끝났어. 아빠는 긴장해서 사실 거의 밥도 안 먹었고 네 엄마는 그래도 친할아버지가 챙겨줘서 뭘 먹었단다.


상견계 때 아빠가 들었던 사례는 (1) 종교가 안 맞아서 예컨데 주례는 목사님이 해야 하는데 한 쪽은 스님이 해야 한다는 것으로 충돌하는 케이스도 들었고 (2) 혼수나 집에 대한 조건이 안 맞는 건 너도 아마 TV를 통해 많이 봤을 거라 생각한다. 1번 케이스가 생각보다 많던데, 아빠는 이 부분은 바로 결혼하는 당사자들이 얼마나 목소리를 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단다. 너가 결혼할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 떠나서 너와 네 반려자될 사람이 잘 상의해서 아빠에게 알려주렴. 결혼은 너희가 하는거지 아빠가 하는게 아니잖니.


이런 갈등이 생길 때 가장 중요한 건 당사자들의 목소리야. 너희가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부모님을 설득해야 해. "우리 결혼이니까 우리가 결정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단다.


결혼식까지 달리기


상견례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정말 정신없는 레이스가 시작된단다. 식장 예약, 집 계약, 혼수 가전 구입... 아빠가 이 과정을 겪으며 얻은 결론은 하나야. "다 부질없다, 간소하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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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돈을 썼을까 후회하곤 한단다. 우리가 넉넉하게 시작한 게 아니라 네 엄마가 많은 걸 양보했었지. 그래도 반지만큼은 좋은 걸 하자고 해서 꽤 비싼 브랜드 반지를 샀단다. 그런데 지금 그 반지 어디 있니? 네가 아주 어릴 때 집안 어딘가에 던져버려서 아예 잃어버렸잖니. 하하하. 결혼반지, 명품 가방... 시간이 지나면 다 소모품일 뿐이란다. 그 돈으로 차라리 맛있는 걸 더 사 먹거나 여행을 한 번 더 가는 게 남는 거야.


집은 어차피 몇 번 이사를 하게 된단다. 그냥 둘 중 한 명이 편한 곳을 선택해야 해. 둘 다 어설프게 편한 곳은 결국 둘 다 불편한 곳이란다. 어릴 때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있고 이미 점찍어둔 사람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완전 초보였기 때문에 처음엔 합정, 신림, 일산, 구리 많이도 이사를 다녔던 것 같아. 이사 비용만 어마어마했던 것 같아. 집을 고를 땐 가족 계획을 염두해두는 게 좋단다. 우리는 너가 일찍 생겨서, 집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근처에 마트가 있느냐, 병원이 있느냐 였단다. 지금은 아빠가 뚜벅이로 출근하고 네 엄마가 차를 쓰지만 그때는 아빠가 출퇴근을 할 때 차를 썼어. 그래서 엄마가 빠르게 너를 데리고 필요한 곳으로 기동하기 위해서는 마트와 병원이 필수였단다. 공원이나 핫플레이스는 생각보다 자주 안 가게 돼. 일상의 편의가 최고란다. (그건 우리 부부의 특징일 수도 있지)


혼수는 처음엔 무조건 싼 걸로 하는게 좋단다. 어차피 이후에 이사하거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드를 붙이거나 하면서 조금 씩 망가지게 되는 것 같단다. 그때 네 할머니가 네 엄마가 결혼하니까 좋은 걸로 싹 맞춰 주셨는데 네가 다 낙서하거나 스티커를 붙이거나 하면서 많이 망가졌지.. 특히 '장'은 그때 누군가 추천해서 안 샀는데 정말 안 사길 천만다행이었어. 티비는 다행이도 아직 목숨이 붙어 있지만 너가 뒤에서 한 두 번 밀어서 떨어진 적도 있었고, 소파는 이미 몇 번 바꿨지. 침대도 높은 침대를 산 걸 몇 번을 후회했다. 너를 낳고 저상 침대를 따로 샀었거든. 딩크라면 모를까 아이를 3~4년 후에 계획하고 있다면 가구 수명도 결국 3~5년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단다.


결혼식은 별거 없어 다 똑같아. 그냥 아빠가 볼 땐 다 허세인 것 같아. 그냥 결혼 후에 친구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밥이 맛있었냐, 결혼식 끝나고 안 막히고 집에 갔냐. 이 두 가지 밖에 없더라. 식장이 멋있었네, 좋으네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밥이 맛없고 식 끝나고 집에 가는데 더럽게 막혔으면 최악의 결혼식이고 밥이 맛있고 식 끝나고 집으로 후딱 가면 최고의 결혼식이 되는거야. 강남 한복판 결혼은 그래서 아빠 생각에 진짜 별로인 것 같아.


결혼 후 조금씩 줄다리기


결혼을 하고 나서 아빠는 정말 .. 너무 복 받은 것 같아. 아무 일 없이 너무 잘 살고 있어서. 그래서 여기서는 아빠가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줄께.


아빠가 들었던 결혼 생활 중에 좀 별로라고 느꼈던 곳은 남녀차별이 심한 곳인 것 같아. 처가든 친가든 남녀 차별이 많으면 갈등이 생기는 것 같아. 남자로써는 차별을 통해 성장했고, 결혼했으니 그만큼 요구받는 것이 많고 해줘야 하는 부담에 시달리지. 뭐 이거는 그래도 받은 게 있으니 당장의 부담은 있어도 명분은 뚜렷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은 부모가 남매 중 아들에겐 결혼에 1억을 지원해줬는데 딸들은 4천만원 지원으로 끝내거나 아예 지원 없었음에도 이후 결혼 후 각 가정에게 용돈이나 생활비를 똑같이 요구하는 사람들을 봤단다. 심지어는 여행을 가야하니 돈을 몇 백 씩 달라고 하거나 인테리어를 해야하니 사위가 좀 해라. 이런 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구나.


또 어떤 곳은 확실하게 돈을 지원해주긴 했으나, 그 돈 만큼 지분이 자신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보았단다. 예컨데 결혼 할 때 10억짜리 집을 해줬으니 이 집에 대한 50% 이상의 지분은 자기 손에 있다라고 생각해서 그 만큼 해당 부모의 집에 헌신해라라는 곳이지. 김장을 해도 가져다 바쳐야 하고 주말과 가족 행사에 무조건 참여해야 하며 심지어 가족 계획마저 간섭을 하는 부모님들도 보았단다. 아빠는 진짜 놀랐어. 가족 계획까지 간섭하는 건 좀 선을 심하게 넘은게 아닌가 생각을 했단다.


마지막 하나의 예시는 외부모를 둔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아무래도 외부모다 보니까 결혼 후에 많이 외로워 하시는 것 같아서 그 상대방이 전화를 좀 해드렸는데 나중엔 이게 의무아닌 의무가 되어버려서 매일 전화를 하지 않으면 해당 부모님이 삐진다거나, 가족 여행 때 무조건 함께 모시고 가야하고 계속 함께 살자는 말을 하시는 분도 있더구나. 처음엔 좀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저런 부탁을 들어드렸는데 우리가 아는 속된 말로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아는 사람이 생긴 것이지.


둘 사이의 갈등으로 문제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양가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건 정말 힘든거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싸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재하기도 어렵고 애매하고 힘든 것이더라고.


하지만 결국 살아가는 것은 둘


아들아, 아빠는 너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한단다. 그래서 아빠는 믿어. 네 할머니도 아빠를 그렇게 사랑하셨을 거라고. 내가 너를 바라보는 이 애틋한 눈빛이 바로 네 할머니가 나를 보던 눈빛이었겠지. 그렇기 때문에 아빠는 네 할머니에게 아빠의 삶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었어.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엄마(네 할머니)는 결국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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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나중에 좋은 시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빠도 사람인지라 너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네 와이프에게는 상처가 되고 간섭이 될 수도 있겠지. 아빠도 서운함에 삐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럴 때, 너는 반드시 네 새로운 가족을 지키렴. 아빠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네 아내를 희생시키지 마라. 너는 중간에서 엄마, 아빠와 언젠가는 이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네 아내는 네 평생을 곁에서 함께할 사람이야.


설령 아빠가 좀 서운해하더라도, 너는 네 가정의 평화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아빠는 잠시 서운할지 몰라도 결국 네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다 풀릴 거란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결혼은 독립이란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네가 한 가정의 울타리가 되는 과정이지. 그 울타리가 단단해질 수 있도록 아빠는 언제나 여기서 너를 응원하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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