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찬가: 나의 실패를 완성시킨 구원자
아들아 아빠는 오늘 이 섹션을 쓰기 위해 펜을 들며 너를 위한 '찬가'를 떠올렸단다. 앞서 아빠가 구구절절하게 적어 내려간 모든 이야기들 "사회생활에서의 고뇌, 관계의 실패 그리고 돈과 자격지심에 찌들었던 나날들" 은 사실 너를 만나기 전 아빠가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의 기록이었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빠는 한때 내 인생을 '실패작'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었단다. 서른이 넘도록 남들처럼 번듯하게 이룩한 것도 없고 세상에 뚜렷한 결과물 하나 남기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나를 짓눌렀지.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질문이 아빠의 밤을 채우던 시절이었어. 내 인생은 그저 주절주절 늘어놓기만 하는 마침표 없는 서사 같았거든.
하지만 너를 낳고 나서야 아빠는 비로소 깨달았단다. 내 인생의 그 모든 지루한 오답들이 사실은 너라는 정답을 만나기 위한 긴 풀이 과정이었음을 말이야. 너는 아빠에게 성과와 행복은 별개라는 것, 결혼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어떻게 내 심장을 채우는지를 가르쳐주었어.
그래서 아빠는 네 엄마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너를 내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이라고 부른단다. 아빠가 이 긴 글을 통해 너에게 전하는 말들은 그저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소한 잡기일 뿐이지만 네가 나에게 준 깨달음은 내 삶의 궤적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단다. 너라는 존재가 내 곁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
요즘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더구나. 아빠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해. 솔직히 말해서 너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엄마와 아빠는 몇 번이고 지옥의 문턱을 밟고 왔거든. 잠은 부족하고 내 개인의 삶은 증발해버린 것 같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울음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던 그 나날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고락(苦樂)'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 것 같아. 괴로움과 즐거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뜻이지. 육아는 지옥만큼이나 처절하지만, 그 지옥의 깊이만큼이나 눈부신 천국을 선사하는 유일한 경험이었어. 너 또한 훗날 반려자와 함께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할 때가 오겠지. 그때 아빠가 느낀 이 천국과 지옥의 기록이 네 결단에 작은 빛이 되길 바란다.
솔직히 말해서 남자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그리 힘들지 않단다. 적어도 아빠는 그랬어. 너라는 존재가 엄마 뱃속에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빠는 사실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았어. 내 배가 불러오는 것도 아니고, 내 몸에 호르몬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책에서 본 '입덧'이라는 단어가 이제 곧 시작되겠구나 하고 지레짐작하는 정도였지.
심지어 네 엄마는 입덧이 너무 심해서 처가에 내려가 있었단다. 아빠는 주 1회 대전에 내려가서 엄마를 만나는 게 전부였어. 엄마가 입덧으로 음식을 넘기지도 못하고 고통받는 그 치열한 과정에서 아빠는 사실 멀찍이 떨어져 '꿀만 빨았던' 셈이지. 가끔 초음파로 너의 움직임을 보고 태동을 경험하며 "오, 신기한데?"라고 감탄하는 정도였어.
그나마 아빠가 '남편 노릇'을 했다고 생색낼 만한 사건은 딱 하나뿐이었어. 어느 날 술을 한잔하고 있는데 엄마가 전화를 해서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거야. 술기운이 확 달아나서 상암동 일대를 다 뒤졌지. 문 닫은 분식집들을 지나 겨우 떡볶이를 사서 엄마에게 배달했던 기억. 아빠는 겨우 그거 하나 경험해놓고는 "나도 임신 기간에 고생 좀 했지"라고 너스레를 떨었으니 엄마 입장에선 참 기가 찼을 거야.
그래도 아빠가 가장 공들였던 건 검진 때마다 휴가를 써서라도 너를 만나러 갔던 일이야. 네 성별을 알 수 있었던 그 결정적인 순간, 아빠는 의사 선생님보다 먼저 알아맞혔단다. 초음파 화면 속에 비친 네 다리 사이에 아주 작은 '돌기' 하나가 보이더라고. 하하하.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빠는 사실 딸을 기대했었어. 샤랄라한 원피스를 입히고 아빠 껌딱지가 되어줄 딸을 꿈꿨지. 그래서 아들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아주 잠깐 시무룩했던 적도 있었어. 하지만 아들아, 지금은 그 생각을 했던 아빠의 뺨을 때려주고 싶을 만큼 우리 아들이 세상 최고란다.
너는 사실 조금 성질이 급했단다. 예정일은 원래 1월이었는데, 10월부터 자꾸만 밖으로 나오고 싶어 했어. 의학적으로는 조산의 위험이 있는 시기였지. 그때 아빠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10월생은 친구들보다 발육이 늦어 고생할 테니, 어떻게든 버텨서 1월에 낳자"고 엄마에게 무리한 제안을 했어.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식하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위험한 의사 결정이었지. 엄마는 그 고통을 감내하며 '라보파'라는 주사를 맞고 병상에서 몇 달을 버텨주었단다. 엄마와 아빠 모두 초보였고, 그 주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랐기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었어. 만약 지금 누군가 그런 소리를 한다면 네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거야.
결국 네 생일이 겨울 방학 시즌인 1월이 된 건 아빠의 고집 때문이었어. 학기 중에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못 하고 방학 중에 생일을 맞이하는 그 묘한 서운함—아빠도 여름 방학 생일이라 그 기분을 잘 알거든. 너에게도 그런 서운함을 물려준 것 같아 미안했단다. 그래서 아빠가 지금까지 네 친구들을 어떻게든 다 불러서 화려한 생일 파티를 해줬던 거란다. 그 미안함을 갚기 위해서 말이야.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날이 찬찬히 모두 생각난단다. 마침내 출산 예정일이 잡혔고,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병원으로 향했어. 네 엄마는 출산 전날까지도 평온하기 그지없었단다. 침대에 누워 모바일 게임을 즐기며 마치 내일 소풍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굴었지. 다음 날, 우리는 씻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가족 분만실에 입성했어.
가족 분만실에는 짐볼이 하나 있었고, 침대와 화장실이 있었어. 짐볼 위에 앉아 운동을 하라는 의사말은 안 듣고 네 엄마는 침대에 누워 1945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어. 아빠도 딱히 할 게 없어서 웹 서핑이나 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간호사 분들이 들어와서 가끔 씩 너가 얼마나 나왔는지 체크를 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어. 다만 옆 방에서 어떤 분께서 비명을 어마어마하게 지르고 계셔서 아빠와 엄마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단다.
그러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상태를 체크하시더니 갑자기 비명을 지르셨어. "어머! 원장 선생님! 머리가 보여요!" 네 엄마는 아무런 통증도 못 느끼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너는 이미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마쳤던 거야. 아빠는 탯줄을 자르기 위해 문밖에서 초조하게 대기했지. 원장 선생님이 엄마에게 "숨 크게 들이마시세요!"라고 소리쳤고, 엄마가 딱 세 번 숨을 쉬었을 뿐인데… 너는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왔단다. 원장 선생님도 네 엄마 같은 산모는 평생 처음 본다며 "축복받은 체질"이라고 혀를 내두르셨지.
드디어 아빠 차례가 왔어.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들고 네 탯줄을 잘랐지. 솔직히 말해서 그때의 감촉은 아주 두꺼운 고무 호스를 자르는 느낌이었어. 경건한 감동보다는 "와, 이거 진짜 단단하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구나. 그리고 널 처음 마주했어. 온통 쭈글쭈글하고 누런 기운이 도는 마치 외계인처럼 생긴 네 놈(?)을 보았지.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가 다 있는지 확인하고 숨은 제대로 쉬는지 지켜보는 그 짧은 순간 아빠의 심장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 오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냥 어버버..하고 있었지.
그래서 일단 사진이랑 영상을 찍으라 그래서 급하게 찍고, 이후에 너는 모포에 싸여 엄마 품에 잠시 안겼다가 신생아실로 이동했어. 그리고 아빠는 이제 모든 전쟁이 끝난 줄 알았어. 그게 평생 이어질 '육아'라는 전쟁의 서막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야.
조리원에서의 생활은 평온했어. 아빠는 네 작은 몸이 행여나 부서질까 봐, 혹은 내 손의 오염물질이 너에게 묻을까 봐 라텍스 장갑까지 끼고 네 엉덩이에 발진 크림을 발라주었단다. 그때는 네가 건드리면 톡 하고 터질 것처럼 너무 연약해 보였거든. 지금 같으면 그냥 손으로 치덕치덕 발랐을 텐데, 그때의 아빠는 정말 지독할 정도로 조심스러웠어.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모자 동실(엄마와 아기가 같은 방을 쓰는 것)'의 중요성을 읽은 엄마가 용감하게 제안했지. "우리 오늘 밤엔 우리가 데리고 있어 보자." 조리원 선생님들은 "정말 괜찮겠어요? 힘들 텐데…"라며 우려 섞인 조언을 하셨지만, 우리는 자신만만하게 너를 방으로 데려왔어. 그리고 딱 3시간 만에 깨달았단다. 우리가 지옥행 급행열차에 탑승했음을.
겨울밤 내리는 눈처럼 고요하게 우리에게 온 줄 알았는데, 너는 천둥보다 더 큰 소리로 우리를 흔들어 깨웠어. 네 삼촌이 어릴 적 아빠가 총각이었을 때, 고모가 조리하러 집에 오면서 신생아 경험을 해봤다고 자만했었지. 하지만 남의 애가 울 때와 내 자식이 울 때 들리는 소리의 데시벨은 차원이 다르더구나.
너의 울음소리는 아빠의 뇌세포 하나하나를 때리는 비상벨 같았어. 자다가도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켜 너를 안고,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는 무한 루프. 하지만 아들아, 그 괴로움 속에서도 기적은 있었어. 분유를 먹고 내 팔에 기대어 새근새근 자는 너를 볼 때, 그리고 잠결에 '배냇짓'이라도 하며 방긋 웃을 때… 그때 아빠는 깨달았단다. "아, 천사가 여기 있었구나."
아빠와 엄마는 그때부터 '전우'가 되었어. 너라는 거대한 숙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전우애 말이야. 아빠는 엑셀로 표를 만들어서 네 수유 시간과 기저귀 교체 시간을 기록하고, 당번을 정해 서로의 수면 시간을 확보해줬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산부인과 선생님이 너는 되도록 루틴하게 움직이는 게 좋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소변, 대변 횟수랑 시간까지 모두 기록을 했어. (그 표는 아직도 집에 있단다) 그때 아빠는 눈을 감고도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기저귀 마스터'가 되었단다.
밤마다 분유통을 삶고 소독하며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을 볼 때, 아빠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평온한 안도감'이라는 걸 느꼈어. "오늘 하루도 이 작은 생명을 무사히 지켜냈구나"라는 그 안도감 말이야. 너는 단순히 우리의 자식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를 진짜 '부모'로 성장시키는 훈련 교관이었어.
너를 키우며 아빠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내 부모님의 마음'이었어. 아빠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그 애틋하고도 간절한 눈빛.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때로는 귀찮기도 했지만, 너를 품에 안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지. "아,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사랑했구나. 내가 아프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 마음으로 나를 키웠겠구나."
부모의 마음이 어떤 레벨인지 알게 된 순간, 아빠는 할머니에게 더 깊이 감사하게 되었단다. 너는 아빠를 더 좋은 자식으로 만들어주었고, 더 깊은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시켜주었어. 실패한 인생이라 자책하던 아빠에게 너는 거대한 용기를 주었단다. 나라는 보잘것없는 사람을 통해 한 아이가 자라고, 내가 너의 세계 전체가 되어줄 수 있다는 그 기쁨. 아빠가 사회에서 치이고 힘들 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건 너라는 기둥이었어.
"그래, 적어도 저 아이에게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어야지. 내가 저 아이의 세계를 지탱해줘야지."
너는 가끔 무서운 꿈을 꾸거나 슬플 때 아빠에게 달려와 안기지? 그리고 고맙다고 말해줘서 아빠는 늘 감동하지만, 사실 아빠도 너에게 안길 때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위안을 얻는단다. 너의 작은 심장 소리가 아빠의 불안한 영혼을 잠재워주거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서 주인공이 말했지.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너는 아빠에게 딱 그런 존재야. 아빠는 너를 위해 담배를 끊었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어.
그리고 아빠는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모든 잘못과 업보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하기 시작했단다. 내가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 업보가 사랑스러운 너에게 돌아갈까 봐 너무나 두려웠거든. 그래서 아빠는 이제 되도록 나쁜 일은 하지 않으려 해. 아니, 할 수가 없단다. 너라는 빛나는 존재 앞에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이제 너도 나이를 먹고 자아가 생기면서 아빠와 부딪힐 때가 많아졌지. 가끔 너를 호되게 야단치고 돌아설 때면 아빠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 하지만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극장판 대사처럼, 너를 미워해서 야단치는 게 아니란다.
너와 마냥 즐겁게 노는 법은 이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 알아. 하지만 너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아빠는 기꺼이 '미움받는 역할'을 자처하는 거란다. 그것이 부모의 숙명이지. 비록 아빠가 무섭게 화를 내더라도, 그 기저에는 너를 향한 거대한 사랑이 흐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다오.
아들아, 너라는 존재로 인해 엄마와 아빠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어. 네가 있는 하루하루가 아빠에게는 매일이 축제고 기적이란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아빠는 다시 곤히 자고 있는 너에게 다가가 네 통통한 볼에 뽀뽀하고 잠들 거야. 그게 이 세상 어떤 부자도 누릴 수 없는, 아빠가 가진 세계 최고의 행복이란다. 너에게 배웠고, 너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이 위대한 행복에 아빠는 매일 감사하며 산단다.
항상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고맙고 사랑한다,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