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국 미련 없이 사는 게 최고
최근에 너와 자주 보는 유튜버 중에 '야코'가 있지? 처음에 네가 소개해 줬을 때는 "요즘 애들은 이런 걸 보는구나" 싶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더구나. 특히 우리가 함께 자주 들었던 '라고 할 때 할걸'이라는 노래, 기억나니? 사실 마라탕 노래나 다른 노래도 좋은데 유난히 저 노래를 들을 때면 너에게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어.
그 가사는 아이들의 시험공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아빠는 그 노래를 들으며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를 생각했단다. 인간은 늘 지나간 선택을 후회하며 살지. 하지만 아빠는 네가 그 후회의 양을 조금이라도 줄이며 살길 바란다. 그러니까 너도 라고 할 때 하렴.
내가 널 키우면서 느낀 건 여행은 젊을 때 많이 다녀야 한다는 거였어. 일단 너를 낳고 나니 어린아이를 데리고 도시 여행은 어려웠고 너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 내가 늙어서 도시 여행은 생각만 해도 기가 빨리더라. 그러니까 젊을 때 여러 나라의 도시를 많이 다니렴 결혼하고 애 낳으면 휴양지 외엔 선택지가 많지 않단다.
아빠가 20대일 때 무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옛날에 박카스 국토 대장정이라는 연례행사가 있었어. 말 그대로 걸어서 우리나라를 횡단하는 프로그램인데, 아빠도 거기에 진짜 참여하고 싶었었어. 걷는 건 자신 있기도 했고 혼자 다니기에는 무서웠거든. 그래서 서류 지원을 했는데 그 행사가 지원자가 많아서 아빠는 탈락하고 말았단다. 그런데 뭐 돈이야 내 돈 쓰면 되는 거고 그냥 같이 걸어갈 사람들만 있길 바랐던 마음에 그들과 만나서 같이 걸어가면 어떻게든 되겠거니 싶어서 어디서 집합하는지 찾게 되었어.
지금은 많이 안 쓰지만 그때는 다음이라는 포털 사이트에 카페 서비스를 많이 썼는데 거기서 운 좋게 국토 대장정 카페를 찾아 공지 사항을 보게 되었어. 그래서 그들의 일정을 파악했고, 거기에 맞춰 아빠도 가려했지. 당시에 천안역에서 만나 땅끝마을로 가는 코스였었는데, 집합 일정에 천안역으로 갔었는데 아무도 없었어. 아빠는 그들이 먼저 출발했나 싶어 따라잡아야겠다 싶어 쭉 걷기 시작했는데 결국 끝까지 그들과 마주치지 못했고 어찌어찌 걷다가 한 3주 걸려서 해남까지 걷게 되었단다. 중간에 비도 많이 오고 강에서 씻기도 하고 고속도로를 걷다가 순찰대에 걸려서 혼나기도 하고 그랬지.
국도를 맨날 걸으면 많은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 차를 타고 지나가면 도로는 다 똑같아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하지만 내 발로 한 걸음씩 떼며 걷다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단다. 도로 위에 새겨진 타이어 자국, 누군가 파놓은 작은 구덩이, 나무마다 제각각인 옹이 모양들. 삶도 마찬가지야. 삶을 100m 스프린터 선수로 항상 1위, 순위권에 들기 위해 빠르게 뛰기만 하면 골 외엔 나머지는 제대로 못 보고 모두 비슷해 보이고 지루한 삶을 살게 되지만 천천히 여유 있게 끝까지 걷는 것을 목표로 살게 되면 모두의 주목은 받을 수 없어도 매사가 흥미롭고 재미있게 살 수 있게 된단다. 난 네가 인생을 스프린터가 아닌 러너로써 여유 있게 주변을 살펴보며 너만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러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남에 당도하고 나서 너무 힘들어서 돌아올 땐 당연히 버스를 타고 집에 왔어. 집에 와서 다시 그 카페에 들어가 어떻게 된 건지 확인했는데 웬걸... 지난 년도 카페였다는 걸 알고 한 참 어이가 없어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는 것, 아침 일찍 안개 낀 산의 웅대함. 천둥번개의 자연의 거대한 소리들을 정말 한가운데서 느낄 수 있었던 그때의 경험은 아직도 눈 감으면 앞에 생생하게 기억나고 살면서 힘들거나 그랬을 때도 뭐 그때는 더 힘들었는데 뭐..라는 생각에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단다. 다만 아쉬웠던 건 친구랑 함께 가지 못한 것이지만. 그 시간과 돈을 쏟은 걸 결코 후회하지 않는 단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은 너무 고리타분하게 들리겠지만, 이제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역량이란다.
우리는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위에 말한 것처럼 훑은 것과 정말 읽었는가는 달라. 빨리 읽으면 우리가 읽는 고전은 분명 지루할 거야. 왜냐면 거기서 나오는 대부분의 클리셰들은 이미 대부분의 만화, 글 등에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데다가 맥락도 비슷한 것들이 많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단다. 특히 게임의 스토리도 대부분 명작에서 따온 것들이 많아. 예컨대 서유기, 리어왕 같이 동서양의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것들은 이미 수많은 만화책, 게임이 많은 스토리를 차용하고 있어서 아까 말한 것처럼 오히려 읽다 보면 어디서 이런 느낌 느꼈는데.. 하는 기시감을 느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정말 하나하나 읽다 보면 큰 줄기는 같을지언정 안에 디테일은 분명히 차이가 있단다. 부분적으로 가져온 스토리가 따라올 수 없는 명작의 디테일은 반드시 있는 법이지. 그렇다면 왜 책을 훑는 게 아니고 읽어야 할까? 앞으로는 네가 AI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말이나 텍스트로 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우습게 알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일해보면 자신의 생각을 명확한 문장으로 뽑아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단다. 의미 없는 형용사를 남발하거나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는 문장을 쓰는 경우가 허다해. AI에게 "거시기한 느낌으로 좀 해줘"라고 말할 수는 없잖니? 책을 읽으며 단어의 섬세한 차이를 익히고 문장을 구성하는 논리를 배워야만, 너는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제대로 부리는 '지휘자'가 될 수 있단다.
말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란다. 역시 많은 사람들은 본인들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쓸데없는 말이 많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단다. 필요 없는 부사, 형용사들 의미에 맞지 않는 말들을 반복해서 사용할 때가 많아. AI는 지난 챕터에서도 말했지만 네가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함께 해나가야 할 파트너가 될 거야. 그리고 AI에게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 요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단다. 하지만 어휘력은 책을 읽어야 늘어나.
아빠가 살아온 시대는 계산이 중요했던 시대였어. 숫자가 중요했고 사람들은 그 숫자가 정확한지 판단해야 했지. 컴퓨터에 정확한 숫자를 넣고, 정확한 공식을 넣어서 올바른 답이 나왔는지 체크하는 것이 미덕이었어 그래서 문과 친구들이 문송하다며 자책하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연산은 AI가 해주니 네가 해야 할 일은 네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컴퓨터에게 설명해 주는 일이야. 때문에 책을 읽고 많은 단어와 표현력을 길러야 한단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책이라도 출판사 별로 읽는 사람도 있단다. 같은 영어 문장을 번역가 별로 전혀 다른 문장으로 풀어내거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첫 문장의 번역을 가지고 수많은 번역가들이 해석한 걸 모아놓은 위키가 있을 정도니까. 이렇게 표현력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이란다.
아빠가 네게 피아노를 계속 권하고, 네가 최근 관심을 가지는 기타를 응원하는 이유는 명확해. 음악은 네 감성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이기 때문이야.
인생이 풍요로워지려면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단다. 글은 자신의 이성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라면 음악과 그림은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란다. 그림도 잘 그리려면 연습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투명 용지를 쓰던 옆에서 보고 베끼던 어떻게라도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악기는 잘 배워두지 않으면 소음만 나올 뿐이지. 하지만 또 그림과 반대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데 그림은 수준이 비교적 높게 요구되는 반면 악기는 어느 정도만 다뤄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감성을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네가 지금 그렇게 싫어해도 피아노를 계속 가르치는 거란다.
최근 네가 기타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아빠도 우쿨렐레로 너와 연습하고자 하는데 네가 부디 기타를 잘 다룰 수 있길 바란다. 나중에 우리 가족이 다 함께 합주를 할 수 있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예전에 네가 유치원 때 가족 합주회가 있어서 네가 노래를 부르고 아빠가 거들었던 게 생각나는구나. 네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용기이기도 하지만 네 마음속에서 표현하는 음악을 네 귀로 들으며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 때 너는 무척이나 단단하고 누군가가 의지하고픈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 외에 취미는 가능한 현실 안에 많은 게 좋다고 생각한다만 남들이 하는 걸 다 따라 하지 말렴. 어차피 네가 하고 있으면 유행처럼 한 번쯤 대세가 올 때가 있는 것 같다. 아빠도 러닝을 몇 년간 뛰었는데 러닝 붐이 결국은 오더구나. 남들을 따라 하기보단 내가 하고 있으면 언젠가 남들도 할 때가 오니 참고 기다려보렴. 그리고 너무 장비병에 걸려서 많은 걸 사지는 마라. 원래 진짜 고수는 도구 탓을 하는 게 아니란다.
우리는 보통 복권에 당첨되거나, 해외여행을 가거나, 근사한 선물을 받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지. 하지만 아빠가 너를 낳고 가정을 꾸리며 깨달은 행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
우리들은 행복이라는 것을 특별한 것이라 여긴단다. 뭔가 행복한 일이 있어야 행복한 것이라 믿지. 하지만 아빠 생각은 다르단다. 그냥 아무 일도 없이 가만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고, 뭔가 일이 생기는 것은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온다고 생각해. 아빠는 결혼 전에만 하더라도 뭔가 일이 있어야 행복한 거라 생각했어. 여행을 가고, 음악을 즐기고 그리고 취미 생활을 할 때. 친구와 재미있는 전시회를 다녀왔을 때. 영화를 볼 때 그런 것들이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이자 행복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네가 생기고 보니 그것들은 행복이 아니었어. 그냥 '사건' 중 하나였을 뿐이야. 여행을 다녀오면 그 순간은 즐겁지만 다녀온 후 여행에 대한 여운이 남고 다시 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단다. 그것을 채우지 못하면 안타까움으로 바뀌게 되지.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고 여러 추억을 만들면 행복하지만 이후에 헤어지게 되면 슬픔으로 바뀌게 된단다. 즉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생기듯 즐거움 뒤에는 분명히 불행이라는 것이 따라온단다. 맛있는 것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반드시 허기가 오는 것과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처럼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저런 사건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불행함 또한 함께 따라오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게 된단다. 실제로 한계 효용의 법칙이라는 용어처럼 사람은 언제나 한 번 어떤 쾌락의 임계점을 맞이하게 되면 그 이상의 더 큰 자극을 바라고 비슷한 수준이거나 낮은 수준에서는 그 쾌락을 맛보지 못한단다. 때문에 담배나 술로 행복을 찾는 것이 정말 위험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쾌락을 좇지 말아야 할까? 그건 아닌 것 같아. 쾌락을 좇는 게 꼭 나쁘다고만 말하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게 행복이라 착각해서는 안돼. 즉, 행복과 쾌락은 반드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단다.
사람은 자극을 원하기 때문에 적절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단다. 연애도 하고 맛있는 것도 찾아다니지. 하지만 그 쾌락을 맛볼 때 우리는 반드시 그 부작용을 생각하고 그것이 행복이 아닌 그저 단순한 자극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단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쾌락을 좇는 데 있어서 더 큰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두려워질 때가 있지. 바로 그 후유증이 무서워서 말이야. 그리고 더 큰 쾌락, 위험을 추구하는 것에 경계를 하고 함부로 삶을 던지지 않는단다.
그러면 행복이란 뭘까? 내가 내 의지대로 집에 갈 수 있고 집에 가면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 이런 평범함이 진정한 의미의 깊은 행복이란다. 행복이 쉽지 않은 건 바로 이런 평범한 일상을 행복이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지. 위에 말한 것처럼 사람은 자극을 추구하니까. 그러니 행복한 것도 내가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단다. 만약 필요하다면 저기에 가족을 넣어서 "가족의 건강함과 함께 웃고 대화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정도의 수식어를 넣어서 내가 행복이라는 것이 뭔지 연습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족 또한 배제하고 나 스스로 살아있고 나의 의지가 있는 것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네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단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단다. 네가 있고 네 엄마가 있고 비바람이 불 때 몸을 피할 수 있는 집이 있고 항상 반복되는 이 삶에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더 큰 것을 바라지 않고 오직 나 스스로를 통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빠 또한 연습하고 있단다.
아들아 아빠가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 중에 '프라이팬 이론' 이라는 것을 설명한 책이 있었단다. 프라이팬이라는 것은 달구는 것이 어렵지 일단 달궈지고나면 계란을 두 개 혹은 그 이상도 넓이만 된다면 한꺼번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이었어. 사람도 역시 처음에 아무리 기세가 좋아도 그건 달궈지지 않은 프라이팬과 같아. 결국 점차 그 기합이 유지되어 달궈지고 났을 때 한꺼번에 몇 가지 일도 해낼 수 있고 충분히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즉, 달궈지기 전까지 그 기세, 기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지.
작심삼일도 10번 반복되면 삼십일이 되고 그게 또 100번 반복되면 삼 백일이 된단다. 처음에 적당한 온도로 달궈지지 않은 상태의 너에게 낙심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충분히 달궈질 때까지 초심만 유지할 수 있다면 너는 뭐든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단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너무 열심히만 하지마. 매번 열심히 하고 잘 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실망할 수도 있는 법이란다. 너무 열심히보다는 아홉심히 정도하며 스스로 점차 달궈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항상 주변을 살펴보고 다니렴. 일전에 너와 함께 책을 읽는다고 너에게 사줬던 '반갑다 논리야' 라는 책을 기억하니? 거기에 나왔단 천자문과 만자문 이야기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아빠는 그 이야기를 어릴 땐 전혀 이해하지 못했단다. 거기에 천자문을 달달 읽었던 친구처럼 도대체 스승의 명을 어기고 나가서 세상을 보고 온 친구가 왜 칭찬을 받는거지? 하는 질문을 정말 수 년간 마음 속 한 구석에 계속 가지고 있었지.
그 의미를 알게 된 게 바로 대학생 때였어. 주로 살았던 지역을 떠나서 여러 곳에서 여러 일을 해나갈 수록 내가 말할 수 있는 주제들, 상대방과 함께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늘어난단다. '지적 대화를 위한 얇고 넓은 지식' 같은 책을 읽지 않아도 너 스스로 보고 들었던 것들을 남들과 함께 대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바로 주변을 볼 수 있는 여유와 관심이란다. 꼭 여유와 관심을 항상 잃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신앙은 네 자유란다.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교를 믿던 포테이토 교를 믿건 오롯이 네 자유란다. 다만 돈 내라는 신앙은 무조건 거짓이니 멀리해라. 또 신앙은 복을 받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함이란다. 기복 신앙을 말하는 것도 거짓이니 믿지 마라.
자기 개발서는 읽지 마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뭔가를 하면 뭔가가 된다라는 식의 인과 형태의 논리는 결국 뭔가를 하지 못하면 자격 미달이 된다는 의미가 되어버리니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순 있어도 그것이 마음의 평안이나 네 삶의 질을 바꿀 수는 없단다. 세상에 쉽고 좋은 길은 단언컨대 없어. 모건이 지은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에도 모든 진보는 지독한 고통과 스트레스 속에서 탄생한다고 했단다. 책 몇 자, 글 몇 줄에 안락을 맡기지 마라.
타인에 대해 절대 평가하지 마라. 높은 확률로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 설사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어도, 그 평가를 들은 사람은 네가 다른 곳에서 자신을 이렇게 평가하겠구나 생각할꺼란다. 타인의 평가는 내뱉지 말렴. 하고 싶으면 아빠나 엄마에겐 해도 좋단다.
개인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면 나쁘지 않다. 악기가 되었던 저글링이나 마술 같은 너만의 개인기 하나쯤 있다면 사는데 딱히 외롭진 않을 거다. 근데 쉽지 않더라. 아빠는 결국 없이 살았는데 뭐 그럭저럭 살아지긴 하더라. 사는데 문제는 없지만 있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