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필 Nov 13. 2024

취미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

아버지의 바둑과 나의 글쓰기

아버지의 바둑이 내겐 글쓰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밤 10시 32분, 몸은 지쳤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키보드 앞에 앉았다. 왜? 글쓰기와의 약속이 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조금은 즐겁다. 설레는 데이트를 앞둔 것 같다.


아버지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였을때 일이다. 강릉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신다고 해서 아침부터 대청소를 했다. 아내와 함께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지만, 가족이 모인 자리라 행복했다.


동생과 의기투합해서 아버지께 새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어머니는 "멀쩡한 걸 왜 바꾸냐"라고 하셨지만, 아버지 얼굴에 번진 미소를 보니 괜히 뿌듯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짜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연락처부터 사진까지. 모든 걸 옮기는 대작전이 필요했다. 특히 아버지 '최애' 바둑앱은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꽤 오래전부터 바둑과 연애를 하고 계신다. 쉬는 날이면 컴퓨터 앞에서 연신 마우스를 두드리시더니, 스마트폰이 생긴 뒤로는 더 깊은 사랑에 빠지셨다. 퇴근하고, 저녁 먹기 전, 주무시기 전. 틈만 나면 바둑과 데이트하시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어머니께서 "맨날 집에서 바둑만 붙잡고 앉아 있다"며 타박하시지만, 나는 아버지 편이다. 이보다 더 건전하고 예쁜 사랑이 어디 있나? 걔다가 돈도 안 들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솔직히 술, 담배, 도박보다 백만 배는 낫지 않나.


문득 내가 아버지 나이쯤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지금 나의 가장 설레는 상대는 글쓰기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깊은 관계는 아니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누구는 명예를 위해 글을 쓴다지만, 나는 지금 이 설렘 자체가 좋다. 반드시 책을 내거나 유명해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내려놓았다. 마치 게임하듯, 순수하게 즐기고 싶다.


30년 후, 내가 아버지만 한 나이가 되었을 대도 이 설렘이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아버지와 바둑처럼, 나도 글쓰기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 이 연애가 언젠가는 진정한 사랑이 되길 바라면서.




이전 09화 글쓰기한테 이렇게 고백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